96호 > 글로벌 평통

글로벌 평통 / 해외 자문위원 5인이 들려주는 통일 운동

해외 자문위원 5인이 들려주는 통일 운동

한류 바람이 지구촌 곳곳으로 퍼지면서 민주평통 해외 자문위원들의 활동도 탄력을 받고 있다.
쿠바에 한인후손문화원을 여는 중미·카리브협의회, 차세대의 정체성 교육에 힘을 쏟는 남미서부협의회, K-Pop 대회를 통해 통일의 불씨를 퍼뜨리는 키르기스스탄지회, 인터넷 카페를 활용해 똘똘 뭉친 서남아협의회, 1만 고려인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지회의 활동 소식을 자문위원들에게서 직접 들었다.

아리랑 함께 부르며 쿠바에 한인후손문화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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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병문 중미·카리브협의회 회장

멕시코시티에 거주하는 오병문(50) 중미·카리브협의회 회장은 15기에 자문위원 활동을 시작해 16기에 협의회 회장이 된 뒤 조직 개편부터 했다. 멕시코를 1지역,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한 6개국을 2지역, 콜롬비아를 중심으로 한 6개국을 3지역으로 묶어 각각 부회장을 두고 서로 소통하게 했다. 그리고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을 계획했다. 바로 쿠바에 한인후손문화원을 건립하는 것이었다.

“현재 쿠바에는 한인 후손 3.5~4세대가 1200명 정도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초기 멕시코 이주 한인, 이른바 ‘애니깽’ 후손과 같은 뿌리예요. 1905년 1033명의 한국인이 멕시코로 떠났는데 계약기간이 끝난 뒤 294명이 쿠바로 재이민을 해 정착했고, 그 후손이 지금의 쿠바 한인이니까요. 저희 자문위원들이 매년 쿠바에서 8·15 광복절 행사를 갖고 라면, 초코파이, 고추장, 된장 등을 선물했어요. 이들이 아리랑을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지요.”

지난해 광복절 행사 때 쿠바 한인들은 자신들이 한국어도 잊어버리고 한국에 대해 잘 모르니 한인후손문화원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문화원 설립을 위해 쿠바 고위 공직자를 서너 차례 만나 취지를 설명했더니 방법을 귀띔해줬다.

“쿠바에서는 한국을 직접 내세우면 곤란하니 명칭을 ‘호세 마르티 한·쿠바 문화클럽’으로 하라더군요. 호세 마르티는 쿠바의 사상적 지주와 같은 인물로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문화원이 클럽 형태로 전 세계에 퍼져 있어요. 또 재원은 한국 정부가 아닌 민간 교류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죠. 그래서 자문위원 61명이 4만7000달러를 모으고 재외동포재단에서 1만8000달러를 지원해서 오는 8월 광복절에 문화원을 개원합니다.”

오 회장은 1999년 (주)대우의 멕시코 주재원으로 근무한 것을 계기로 2002년부터 보안솔루션 사업을 시작해 현재 연매출 5000만 달러의 회사로 키워낸 성공한 기업인이다.

“통일 운동! 한국인으로 태어나 가장 가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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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방종석 남미서부협의회 회장

지난해 3월 아르헨티나 한인 1.5세 형제가 대한민국 육군에 동반 자원입대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방형식(31)·태현(30) 씨는 1998년 부모를 따라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국외 영주권자이지만 “대한민국 남자임을 인정받고 싶어 입대를 결심했다”고 당당히 밝혔다.

두 형제가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와 태극기를 잊지 않은 것은 아버지 방종석(58) 남미서부협의회 회장의 남다른 교육 덕분이다. 한국에서 은행에 다니던 방 회장은 외환위기가 닥치자 과감히 사표를 내고 아르헨티나행을 택했다. 대부분의 아르헨티나 교민들처럼 의류업에 뛰어들어 어느 정도 사업의 기반이 닦이자 그는 민주평통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11기 자문위원으로 들어가자마자 간사를 맡았고 12, 13, 14기까지 연임한 뒤 15기에 남미서부협의회 회장을 맡아 16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민주평통 자문위원 활동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이만큼 가치 있고 해볼 만한 일도 없다”고 말한다.

“제가 은행에서 전산 업무를 맡았는데 컴퓨터의 최종 사용자를 ‘엔드 유저(End-user)’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통일의 엔드 유저는 바로 나 자신인 거예요. 통일이 되면 혜택을 누리는 것은 바로 나와 가족, 우리 교민이라고 생각하니까 통일 운동에 더 의욕이 생기더군요.”

남미서부협의회는 파라과이, 칠레, 페루, 볼리비아, 우루과이 등 6개국이 모인 다국가 협의회임에도 정기 월례회의를 할 만큼 활발하게 활동한다. 남미서부협의회는 15기에 우수 협의회로 선정돼 의장(대통령) 단체표창을 받았다. 요즘 남미서부협의회가 주력하는 분야는 차세대 육성이다.

“이제 국적은 의미가 없어요. 어디에 사는가도 중요하지 않아요. 내 몸에 어떤 피가 흐르느냐, 그 피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것이 글로벌 시대의 정체성 교육입니다.”

“중앙아시아에 퍼지는 한류는 통일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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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상중 키르기스스탄 지회장

올해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K-Pop 대회에는 292개 팀 500명이 참가 신청을 해 지난해(191개 팀, 300명)보다 더 달아오른 한류 열풍을 실감케 했다. 5월 23일, 예선을 거쳐 15개 팀이 경연을 벌이는 본선 행사가 열린 키르기스스탄의 필하르모니 국립극장은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좌석은 1200석인데 2000여 명이 몰려든 것.

“2년 전 키르기스스탄에 ‘구준표와 결혼하는 법’이라는 영화가 개봉돼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현지인이 감독, 주연까지 한 영화인데 저는 ‘구준표’가 한국 배우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한국 드라마 속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무릎을 쳤죠. 한류의 힘이 무섭구나! 하고요.”

KBS에서 스포츠 캐스터로 일한 경험이 있는 전상중(63) 회장의 머릿속에 ‘문화의 힘’을 활용한 통일 운동이 떠올랐다. 주키르기스스탄 한국대사관과 민주평통 키르기스스탄지회가 함께 주관한 제1회 K-Pop 대회는 이렇게 탄생했다.

“외국인이 무대 위에서 한국 노래를 부르려면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겠습니까.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참가자들에게 저희가 고맙더라고요. 올해는 한국에서 트로피를 제작해 참가자 전원에게 나눠줬어요. 그것이 집집마다 놓이면 보는 사람마다 한국이란 나라를 기억하겠죠. 참가자를 응원하러 온 가족들에게는 경품 추첨을 통해 휴대전화, 화장품, 도자기, 라면 등 한국 브랜드 제품을 골고루 나눠드렸어요.”

지난해에는 문화관광부가 제공한 한국 관광 안내 책자 2000부를 대회 현장에서 배포했고, 올해는 통일정책 자료집 2000부를 배포했다. 식전행사로 남북한의 현실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시청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이곳에는 고려인이 2만 명가량 있는데 이들이 남북한의 실상을 잘 몰라요. 요덕수용소의 인권 탄압 사례를 보여주는 사진전을 열었더니 거짓말이라며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것이 진짜 한류인 거죠.”

전 회장은 14년 전 한국을 떠나 카자흐스탄에서 호텔 사업을 하다 키르기스스탄에 정착해 무역업을 하고 있다. 사업이 자리를 잡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통일 운동이다. “아내는 왜 그 누군가가 하필 당신이냐고 해요. 하지만 한국을 벗어나 살다 보면 조국의 중요성을 더 깨닫게 되고 조금이라도 힘이 될까 해서 자꾸 월급 없는 직함만 늘어납니다.”

지난해 말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 ‘구미공원’이 생긴 것도 전 회장이 소매를 걷어붙여 성사시킨 일이다.

“공원의 가로등 점등식 때 고려인협회 회장이 나와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하더군요. 1937년 강제 이주를 당한 뒤 나라 없이 떠돌아다녔는데 우리 이름으로 된 공원이 생기다니 감격스럽다고 했습니다. 밤이 되면 유난히 밝게 불을 켠 구미공원을 보면 뿌듯합니다.”

전 회장은 13기부터 민주평통 자문위원 활동을 해왔고, 16기에 키르기스스탄지회가 설립돼 지회장직을 맡았다.

“인터넷으로 소통하고 9개국 순회하며 똘똘 뭉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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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엄경호 서남아협의회 부회장, 스리랑카 지회장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2차 해외지역회의에 서남아협의회 소속 자문위원 75명 중 62명이 참석해 80%가 넘는 출석률을 자랑했다. 그중 스리랑카지회는 자문위원 10명이 전원 참석했다. 인도, 태국, 스리랑카,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네팔 등 9개국이 모인 서남아협의회가 이처럼 똘똘 뭉친 데에는 엄경호(61) 부회장 겸 스리랑카 지회장의 역할이 컸다.

“과거에는 서울에서 해외지역회의가 열리면 얼굴을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정도였죠. 그래서 인터넷 다음카페를 만들고 지난 2월에는 인도 첸나이에서 9개국 자문위원 70여 명이 모였어요. 그 자리에서 앞으로는 각국을 돌아가면서 모임을 갖기로 했죠. 또 5년 전 서남아협의회와 경기도 양주시협의회가 자매결연을 했는데 지난해 양주시 자문위원들이 스리랑카를 방문했고, 올해는 저희가 양주시를 방문해 1박2일로 워크숍을 했습니다. 요즘은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서로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예요.”

엄 부회장은 14기부터 서남아협의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16기에는 스리랑카분회를 지회로 승격시켰다. 1985년 유엔 식량농업기구 소속으로 처음 스리랑카에 온 엄 부회장은 이듬해 농사를 짓겠다며 사표를 내고 온 가족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1989년 스리랑카 내전으로 사업이 망하자 1991년 ‘한국관’이라는 식당을 열어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식당은 아내에게 맡기고 2003년 ‘한성 코알라’라는 실 염색공장을 차려 스리랑카의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내년이면 스리랑카 거주 30년이 되는 엄 회장은 이제 민주평통의 통일 운동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교민들만을 대상으로 통일 운동을 했다면 이제는 주재국 사람들을 위한 통일 운동을 해서 우리의 통일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고려인이 중심이 돼 남북한 문화예술 교류 추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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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인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회장

최인나(41)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 동방학부 한국어문학과 교수를 만나면 두 번 놀라게 된다. 먼저 그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했다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정착한 고려인 후손(이민 4세대)인 그는 대학에 가서 처음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어머니가 의사이셔서 저도 당연히 의대 진학을 목표로 했어요. 그런데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러시아에 한국 유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저희 집에서도 하숙을 쳤는데 하숙생 한 분이 제게 한국어학과에 가서 한국어를 배워두면 앞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했어요. 그때까지 저는 한국어를 전혀 못 했거든요. 92학번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 한국어문학과에 들어가 러시아인 교수님께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차츰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돼 결국 ‘김동인 단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로 놀라운 것은 남북한 문제와 통일에 대한 최 교수의 깊은 이해다. 14기부터 16기까지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고려인이자 한국인, 그리고 러시아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통일 운동에 큰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만 고려인이 1만 명 정도 살고 있어요. 이들은 남한이나 북한에 친인척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활용하면 남북한의 거리를 좁힐 수 있죠.”

최 교수는 남북한이 직접 왕래할 수 없다면 제3국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소통의 장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했다. 이곳에서 남북한과 러시아가 함께 공연, 전시회, 학술회의 등을 열면서 소통하면 그것이 곧 통일 기반을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한류가 일시적인 바람으로 그치지 않게 하려면 이곳 사람들이 한국의 전통문화와 통일 문제에도 관심을 갖도록 이끄는 노력이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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