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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 북한의 계획경제와 북한 주민들의 삶

북한의 계획경제와 북한 주민들의 삶
수령의 시장 개입이 아파트 붕괴와 같은 ‘무책임’ 양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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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북한 고위 간부(가운데)가 평양에서 아파트 붕괴 사고 희생자 가족들과 현지 주민들 앞에서 사고에 대해 사과하면서 경례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5월 17일 공개한 사진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5월 18일 이례적으로 평양의 23층 아파트 붕괴 사실과 함께 고위간부가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는 장면을 보도했다. 사고 발생 5일 만의 일이지만 그만큼 북한 주민들의 불만과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북한 계획경제의 실태와 문제점에 대해 알아본다.

북한에서 23층 아파트의 붕괴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도 북한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계층이 모여 사는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동에 소재한 아파트이고, 북한이 내부 치안 유지와 주민 통제를 담당하는 인민보안부(한국의 경찰청 격)에서 건설한 간부용 집이라고 한다.

준공이 되지 않았음에도 많은 주민들이 미리 입주해 살고 있었고, 붕괴 시간이 가구주들이 퇴근하기 전인 오후 5시경이어서 가장의 퇴근을 기다리며 저녁식사 준비를 하던 부인들, 놀이터에서 돌아온 어린이들, 공부를 마치고 귀가한 학생들,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노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망자가 500여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번 사태만큼은 조용히 덮을 수 없어서인지, 아니면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남한 정부를 험하게 비난한 체면을 못 이겨선지 북한 당국은 유례없이 이 사실을 공개했고, 노동신문에는 인민보안부장이 주민들에게 사과하는 사진도 실었다. 이런 걸 보고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화는 쌍으로 온다고나 할까. 남과 북에 대형사고, 인재가 거의 동시에 터졌고, 북한 정권이나 건설을 담당한 인민보안부 입장에서는 장성택 숙청이라는 권력형 인재에 이은 또 다른 대형 불상사라 하겠다.

이번 사건이 과연 북한 주민들의 생각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들은 당국의 전례 없는 사과와 위로를 받고 안도했을까? 그리고 세상이 좀 바뀌고 변해 조금만 더 참으면 살 만한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을까? 아니면 세상이 하도 어수선해 이제는 북한 당국도 어쩔 수 없이 사과해야 하는 지경에 왔구나 하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이번 사건은 북한 경제와 체제, 주민들 삶의 축소판이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북한 체제도 부실한 건축물이 무게를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붕괴되듯이 결국 무너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까?

자유세계에서처럼 북한 내 여론조사가 불가능하니 이번 사고가 어떤 원인으로 터졌고, 북한의 현 경제 시스템과 형편은 어떠하며, 이것이 앞으로 북한 주민들의 삶에 어떻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지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북한주민들의 생각, 그들의 삶의 미래를 간접적으로 진단해보도록 한다.

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수령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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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정은 집권 3년차를 맞은 평양 시내의 모습. 고층빌딩이 즐비하지만 극심한 빈부 격차와 날림 공사에 따른 붕괴 위험 등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소유의 주체가 모두인 것처럼 모두가 건설에 참여한다. 농장에서는 개인들이 알아서 자기의 살림집을 짓고, 기관과 기업소들에서는 알아서 자체로 혁명역사 연구실, 기숙사, 직원들 집을 짓는다. 군에서는 군인들이 병실, 군관들의 사택, 강당을 짓는다. 평양시 광복거리 건설, 창광거리 건설에는 군, 보안기관을 포함해 거의 모든 중앙기관들이 건설 주체로 동원됐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국가가 다 맡아서 할 수 없기 때문이고, 건설에 동원되는 기관과 인력이 다양하기 때문이며, 많은 기관과 사람들이 이미 이에 숙련돼 있고, 어떤 의미에서 간단한 건설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계와 감독, 준공 등 건설과 관련된 시스템은 있으나 모두 국가 재산, 국가 기구이므로 서로 편의를 제공하기에 용이하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문제도 발생한다. 일단 건설 주체에 따라 안전도가 천차만별이다. 중앙당 8국, 1여단은 최고의 자재로 김 부자 저택, 별장을 짓기 때문에 안전도는 최상으로 보장된다. 그러나 시공 및 자재 보장 능력이 부실한 기관들이 짓는 건물은 취약하기 그지없다. 인민보안부같이 힘 있는 기관이라도 짓고 있는 건설 대상물이 많으면 이번과 같은 사고를 피할 길이 없다.

이번 평천구역 23층 아파트 붕괴 사고는 무책임의 산물이다. 설계사의 무책임, 건설 감독관의 무책임, 건설자의 무책임, ‘조선 속도’를 앞세워 빨리빨리 건설로 내몬 김정은과 보안부 간부들의 무책임의 합작품이다. 무책임은 무(無)주인의식, 즉 자기 것이 아닌 데서부터 발생한다. 다시 말해서 아파트 건설을 실제 그곳에서 거주할 사람들이 했다면, 그리고 그 아파트가 이들의 개인 소유물이라면 이런 사고가 생길 리 없다.

북한 사회에 만연한 무책임성은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안고 있는 본성적 특징인 생산수단에 대한 전 인민적 소유, 개인들의 소유권 박탈에 근거하고 있다. 즉, 모두의 것은 결국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되며, ‘무임승차’의 본성을 지닌 사람들은 주인의식까지 결여돼 아무것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게 된다.

무책임성은 저생산성, 낭비까지 초래한다. 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고,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으며,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원을 마음껏 낭비한다. 부족의 ‘천국’에서 북한만큼 심하게 낭비하는 나라는 또 없을 것이다. 한 예로 평양시에서 공급하는 수돗물의 30% 이상은 관이 낡아 도처에서 유실된다. 난방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누구의 것도 아닌 북한의 모든 것은 곧 수령, 김정은의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이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경제적 이권을 배분하고, 가장 좋은 것은 자기가 다 차지하며, 제멋대로 경제에 개입한다.

이는 더 나쁜 것을 가장 나쁘게 만드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국가와 당의 간섭에 이어 수령의 절대적 ‘시장(경제)’ 개입이 악수를 부르는 것이다. 부하들은 최대한 일을 적게 하고, 보신주의로 최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김정은의 방침, 말씀만 붙들고 늘어지면 된다.

이러한 무책임성이 북한 경제를 좀 먹고 인민의 생활을 파괴하더니 지금은 북한의 권력계층, 엘리트계층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번 아파트 붕괴 사고가 바로 그 결과다. 좀 있으면 김정은 궁전이 무너지고, 김정은이 멋따기(실속 없이 멋이나 부림)를 부리며 타고 다니는 전용기가 추락할지도 모른다.

무한한 평등 뒤에 숨어 있는 노예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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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북한의 평양 평천구역 아파트 붕괴 사고 희생자 가족들이 북한 당국자의 사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확한 희생자 규모는 발표되지 않았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마라. 하지만 일한 만큼도 먹지 마라. 고로 수령은 원하는 만큼 먹는다.’

소유에 이어 북한 계획경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분배, 인센티브의 문제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무한한’ 평등을 제창하지만 그렇다고 일하지 않는 자에게도 평등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원론적으론 그렇다는 말이다. 이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마라’의 슬로건과 원칙으로 대변된다. 이를 근거로 누구나 각종 직장노동, 사회노동, 국가노동에 동원된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분배 원칙이 슬쩍 끼어드는 데 있다. 즉, 물질적 자극보다 정치적 자극이 더 중요하고, 물질보다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원리이다. 다시 말해 월급보다 훈장이 더 중요하고, 물질적 보상보다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 사회와 집단에 대한 헌신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때론 이를 명분으로 화폐교환을 통해 개인들의 현금자산도 모두 몰수되고, 국가가 발행한 국채도 어느 날 갑자기 휴지 조각이 된다. 결국 일한 만큼 다 주면 남는 게 없다는 원리로 노예노동이 강요되는 셈이다.

또 있다. 아무리 부족한 재화이지만 수령이 어찌 백성들과 똑같은 침대에서 자고, 똑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랴. 그리고 빨치산 계급, 당 간부들이 어찌 백성들과 똑같은 차를 타고, 똑같은 약을 먹을 수 있으랴. 그래서 수령을 위한 8호, 9호 제품이 나왔고, 간부들을 위한 특별공급소, 병원 ‘진료과’가 생겼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마라. 하지만 조국과 나라가 어려운데 우리가 어찌 일한 만큼 다 먹으리오. 이렇게 남긴 나머지는 모두 수령 몫이요, 수령은 자기가 예쁘게 본 측근들을 챙긴다. 필요하다면 수령은 먹고 싶은 만큼 무제한 먹을 수도 있다.’ 이것이 북한 계획경제의 진짜 분배 구조다.

그렇다고 북한 주민들 모두가 진짜 바보인 것은 아니다. 김정일이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입니다’라는 말로 노예임을 자신했지만, 북한 경제가 망가지고 나라의 꼴이 이 지경이 된 것 자체가 인민들이 노예노동을 하기 싫어한다는 방증이다. 결국 나쁜 체제는 나쁜 노동 강요, 나쁜 분배 구조, 나쁜 노동 참여, 나쁜 소득의 악순환을 지속하고 있다. 23층 아파트 붕괴가 바로 이 나쁜 경제 구조의 축소판이다.

한 손에는 핵·미사일, 다른 한손에는 ‘쪽빡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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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부일 북한 인민보안부장이 5월 13일 발생한 평양시 평천구역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에서 희생자 유가족 등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

23층 아파트 붕괴 사고 소식을 듣고 의아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왜 준공도 안 된 아파트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살고 있었을까. 주민들이 준공 전 아파트에 미리 들어가 살게 된 것도 지속적으로 약화된 북한 계획경제와 인민 생활의 하락 때문이다. 국가와 기관의 건설물자 공급 능력,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해 아파트 몇 가구를 팔아 건설자금을 충당하거나, 입주민들에게 알아서 마무리 건설 작업을 하라고 하니 미리 입주할 수밖에 없다. 일부 경제력이 있는 가구들은 나중에 집수리를 하기보다 미리 입주해서 더 좋은 자재나 마감재로 집을 꾸미는 쪽을 선호한다.

건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혼재돼 있는 난맥상과 혼란상은 북한 지도부의 국가전략, 경제전략 선택과도 관련된다. 수령과 엘리트가 국가 자원을 독식하고 나라의 경제, 인민 생활이 나빠질수록 당국에는 이를 잠재울 수 있는 구실, 긴장, 적이 필요하다. 그래서 남북 대결, 대미 대결은 체제 유지의 ‘필요악’이다. 이를 위해 핵과 미사일 개발이 필요하고, 외부의 자본주의 노란 물 유입 차단과 폐쇄가 필요하며, 자력갱생이 필요하다.

결국 자구책으로 선택한 것이 서로 상충하는 핵·경제 병진노선이다. 핵을 선택하면 경제를 포기해야 하고, 경제를 살리자면 핵과 체제를 포기해야 하니, 범의 꼬리를 놓을 수도, 영원히 잡고 달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범의 꼬리에서 떨어져 잡혀먹든지, 범의 잔등에 매달려 굶어죽든지 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번 아파트 붕괴 사고를 겪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이 사건이 앞으로 북한의 계획경제, 인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물론 주민들은 지금까지 없었던 당국의 공개 조치, 김정은의 직접적 개입, 그에 따르는 늘어난 피해 보상 등으로 당분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단기적인 보여주기식 처방,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북한 계획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소유·분배 구조와 국가전략의 모순, 그로부터 초래되는 무책임, 저생산성, 낭비, 지속적인 경제의 파괴와 인민 생활 저하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럴수록 김정은은 군부에 더 기대고 그들에게 더 많은 이권의 미끼를 흔드는 선군정치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총칼에 의존한 강권통치, 독재통치의 모순을 증대시킬 것이다. 이미 그는 자기 선대에서도 하지 않은 가장 가까운 가족의 피를 집권 2년도 안 돼 손에 묻혔다. 그리고 아버지가 구축해준 후계 권력구도를 제 손으로 모두 허물어버렸다.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주민들도 선택해야 한다. 과거 조국과 수령에 대한 충성이 지금은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무관심으로, 이것도 어려우면 당국에 대한 불만과 항거의 선택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정치보다는 경제, 당보다는 외화벌이가 우선이 되었다. 흔히 북한의 선군(先軍)정치를 이야기하지만 이미 군보다 돈이 우선인 ‘선돈’ 세상이다. 북한 체제의 전환은 시간문제다.

 

photo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북한의 싱가포르 동북아시아은행 대표를 지냈고, 2003년 남한에 정착했다.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이자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객원연구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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