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호 >포커스

포커스

박근혜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성과
유라시아 정치·경제 협력 확대 계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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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카자흐스탄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6월 19일 수도 아스타나의 대통령궁에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월 16일부터 5박6일 동안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차례로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순방의 가장 큰 성과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중앙아시아를 상대로 펼쳐온 자원외교를 넘어서서 유라시아 외교를 새롭게 전개하는 중대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고대 로마는 여러 번에 걸쳐 비단 수입 금지령을 내렸다. 중국의 비단을 로마로 운반하던 상인들은 국경을 지날 때마다 통과세를 내야 했고, 도적에게 물건을 뺏기고,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래서 상인들은 이러한 운송 리스크를 상품 가격에 반영해 비단은 초고가 수입상품이 되었고, 금이 대량으로 외국에 유출됨으로써 로마의 재정이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비단 가격의 상승은 특히 실크로드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더욱 심했다.

몽골이 원나라를 세우고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을 때 실크로드는 가장 안전해졌다. 이탈리아의 무역상 마르코 폴로는 원나라 왕실이 발행해준 통행증을 가지고 아시아 대륙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돌아다녔다고 <동방견문록>에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정치·경제적으로 통합될 때 사람과 상품의 이동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대판 실크로드인 아시안 하이웨이를 이용해 유럽에서 베이징까지 이동할 경우 전체 소요시간의 40%를 국경 통과에 소비하게 된다. 그만큼 동서 간의 교역에서 철도와 도로 등의 통합 인프라 못지않게 통합 거버넌스의 구축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한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에는 북한, 아프가니스탄, 이란 같은 ‘불량국가’와 ‘실패국가’가 여럿 있다. 따라서 현대판 실크로드의 건설은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지역 통합이라는 과제와 함께 실행돼야 한다.

현대판 실크로드 건설의 초석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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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근혜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 국빈 방문의 마지막 일정으로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사마르칸트를 방문했다. 고향이 사마르칸트인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이 직접 안내를 맡아 화제가 됐다.

지난해 10월 박근혜정부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구상을 발표했다. 한반도 종단철도를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및 중국 횡단철도(TCR)와 연결해 한국이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관통하는 복합 물류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앙아시아와의 유대를 돈독히 하기 위해 추진된 이번 순방은 더욱 구체적인 의미를 가진다.

박 대통령은 5박6일 동안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차례로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과 은근히 경쟁하고 있는 관계여서 박 대통령이 첫 번째로 자국을 방문한 데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고, 카리모프 대통령은 공항까지 직접 나와 박 대통령을 영접하고 사마르칸트 방문까지 동행하는 성의를 보였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한국의 최대 교역 및 투자국이다. 우즈베키스탄 가전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점유율이 80%를 웃돌고, 나보이 공단에는 섬유와 정보기술(IT) 분야의 한국 기업이 대거 진출해 있어서 양국 간의 협력 전망이 매우 밝다. 이러한 관계를 더욱 격상시키기 위해 이번 방문에서 양국 간 비자 면제협정이 체결됐다. 상호 간에 입국 비자를 면제한다는 것은 양국 국민에게 자유로운 왕래를 허용함과 동시에 이제 서로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고, 풍부한 자원을 개발해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최근 카자흐스탄은 ‘국가 발전 2050’ 계획을 발표하고 경제의 현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 계획은 에너지 산업만 발달된 단순한 경제구조를 다각화하여 다양한 산업의 발전을 촉진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우리로서는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할 수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 4위인 중앙아시아 신흥 경제국이며, 1992년 양국 수교 이후 한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방문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최근 들어 투르크메니스탄에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이번 방문으로 양국 간의 경제 협력을 위한 여건이 더욱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공감 외교로 중앙아시아 3국을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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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월 20일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 대통령궁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협정 서명식을 마치고 악수를 하고 있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국 방문은 여러모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다.
첫째, 중앙아시아 외교에서 자원외교에 더해 과학기술외교를 추가했다. 중앙아시아는 자원이 풍부해 자본과 기술을 가진 한국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고, 이를 활용해 상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 순방에서 박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 때 체결된 거대 협력사업의 원활한 이행을 요청했고, 우즈베키스탄의 ‘수르길 가스전 개발 및 가스·화학 플랜트 건설’ 사업, 카자흐스탄의 ‘발하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 투르크메니스탄의 ‘갈키니시 가스 탈황시설 건설’ 사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번 순방에서 박 대통령은 자원과 기술을 결합하는 기존의 협력 방식에 더해 ‘지식 공유’라는 새로운 협력 방식을 추가했다. 그리하여 카자흐스탄과 공동 투자펀드를 조성해 첨단 기술연구센터를 설치하기로 했고, 우즈베키스탄에는 전자정부 시스템을 전수함으로써 한국의 지식 기반 사회 발전의 경험을 공유하기로 했다.

둘째, 중앙아시아 외교에서 박근혜정부의 강점인 공감 외교를 적극 활용했다. 박 대통령이 과거 중국을 방문할 때 인문학적 유대를 활용한 것처럼, 이번 중앙아시아 방문에서 문화적 연대와 역사적 동질성을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실크로드의 중심도시인 사마르칸트를 방문해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사신도를 관람했고, 카자흐스탄에서는 10만 고려인의 모범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셋째, 중앙아시아 외교에서 경제 협력에 더해 정치 협력을 추가했다. 박 대통령이 집권 초반에는 중국, 미국, 유럽, 러시아 등 강대국 방문 외교에 주력했다면, 이번 중앙아시아 순방은 새로운 시장 확대를 꾀하는 세일즈 외교에 더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장을 지지해줄 새로운 우군을 확보하는 노력을 경주했다.

그리하여 박근혜정부의 기본 외교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을 중앙아시아 정상들에게 이해시키고 지지를 이끌어낸 점은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정치 협력의 강조를 통해 그동안 중앙아시아를 상대로 펼쳐온 자원외교를 유라시아 외교로 변환하는 중대한 계기를 마련했다.

박근혜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 협력 외교는 유럽과 아시아의 지역 간 협력을 목표로 한다. 지역 간 협력이란 지역과 지역이 협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량으로서 북부에는 러시아, 남부에는 중앙아시아가 있고, 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방문은 남부 교량의 현지 탐방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지역적으로 통합된 유럽과 지역 간 협력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아시아가 통합돼야 할 것이며, 여기에서 한국이 지역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 각 지역에서 지역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국제질서의 다자지역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자지역화란 국가 이외에 지역도 국제정치의 중요한 행위자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미 유럽연합은 회원국 전체를 대표하여 교역 협상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G20의 일원이며 G7 회의와 핵안보 정상회의에도 참가한다. 이러한 유럽연합은 지역 통합의 경험을 확산하는 데에 적극적이고, 지역 대 지역 외교를 선호한다. 따라서 한국이 동북아 지역 통합을 위해 노력할 경우 유럽연합의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지역 간 협력의 일환으로서 유라시아 협력 외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먼저 동북아 통합이 선행돼야 하고,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이를 실현하는 정책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북아 통합에 북한의 참여가 필요한 만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적극 가동해 북한과의 신뢰 구축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후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연결고리 격인 중앙아시아가 유럽과 동북아를 잇는 교량의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박근혜정부의 기본 외교정책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 영토를 유라시아로 확장하는 기회

오늘날 지정학이 부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센가쿠 갈등 등은 지리적 요인이 국제정치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정학이란 국가의 국제적 위상은 영토의 크기와 위치 등과 같은 지리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인식 개념이다. 중앙아시아가 한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남부 통로로서 안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면 한국의 지정학적인 위상은 크게 바뀔 것이다.

한국은 수천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영토가 축소되는 역사를 가졌다. 만주 벌판까지 확대된 대륙국가에서 반도국가로, 그리고 이젠 섬이 아닌 섬나라가 되는 영토 위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라시아와의 협력은 이러한 한국의 지정학적 역사를 뒤바꾸는 반환점을 제공할 것이고, 한국의 역사 발전에 대륙의 방향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정학적 혁신을 가져오는 힘은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력이어야 한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한국의 경제 영토를 유라시아로 확장한다는 의미를 띠며, 한국은 유라시아와의 협력을 추진함으로써 극동이라는 주변부적 위치에서 벗어나 유럽과 아시아가 연결된 협력 공간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동부 터미널의 위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브뤼셀과 서울이 유럽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양극이 되고, 중앙아시아가 철도, 고속도로, 에너지망을 제공하는 교량의 역할을 하게 될 때, 한국의 지정학적 위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박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에서 고구려 사신도를 보고 1400년에 걸친 양국 간 교류의 역사를 강조했다. 이번 순방은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의 잃어버린 교류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며, 끊겨진 실크로드를 되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과거 몽골이 유라시아를 정치·경제적으로 통합해 자유로운 이동과 교역을 보장하고 동서양 문명의 교류에 기여하였듯이, 우리는 유라시아의 지역 통합에 앞장서서 북한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이 통합의 이득을 얻기 위해 동참하게 만들 역사적 과제 앞에 서 있다고 하겠다.

 

photo 고상두 연세대학교 지역학 협동과정 교수.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정치학 박사, 연세-SERI EU센터 소장과 한국슬라브학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세계정치학회 연구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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