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범죄는 끊임없이 진화하게 마련이다.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 같은 것은 불과 몇 년 전엔 듣도 보도 못한 사기수법이다. 또 사기범은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서 교묘하게 다가가기 때문에, 평소 신중한 사람이라 해도 방심하는 사이 걸려들기 십상이다. 남한 사람들도 이럴 진대, 하물며 시장경제에 익숙지 않은 북한이탈주민들은 오죽할까 싶다. 이번 호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파란만장 자본주의 적응기’를 들어보자.
A씨는 2007년에 북한을 떠나 잠깐 중국에 머물다가 남한으로 왔다. ‘직행’인 셈.
“북한에서 남조선이라 하믄, ‘자본주의 돈 만능의 세계’고,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비뚫어져 있다는 주입을 항상 받아왔어요.”
하지만 입국할 때 공항에서 ‘시꺼멓고 덕지(덩치) 좋은’ 사람들마저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아버린 A씨. 하나원 등에서 ‘사기 예방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왔지만, A씨는 이후 사기와 주식, 대출, 보이스피싱 등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적응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렇다면 A씨가 처음 대한민국에 와서 당한 사기는 무엇일까?
“동갑내기 직원 한 명이 ‘자기가 누구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그 사람이 안 갚는다며 언제까지 갚는다고 했으니까 니가 좀 있으면 해줘라’ 해서 빌려줬어요.”
A씨는 이미 한국에 오기 위해 브로커비를 냈기 때문에 돈이 별로 없었지만, 곧 준다는 말만 믿고 덜컥 빌려줬다. 하지만 동료는 돈을 돌려주지 않았고, 돌려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내가 돈을 받고 싶어도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한 개도 없었어요. 이 사람이 아이라면(잡아떼면) 아인 거예요. 대한민국 법 참 말도 안 된다 했지요.”
A씨가 더 억울해 하는 건 ‘잘못한 사람을 혼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돈 달라고 ‘목다심(멱살)을 잡을라치면’ 오히려 피해자인데도 가해자가 돼버린다는 것.
“북한에서는 각서 받고 도장 찍고 안 해도 그 사람이 돈을 안 갚으면 경찰들이 ‘어 이놈 나쁜 놈이네’ 하지, ‘네가 왜 목다심을 잡냐’고 안 그래요. 적어도 ‘이놈이 목다심을 잡힐 일을 했구나’ 이렇게는 해요.”
‘대한민국의 법은 진실한 사람의 편에 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자기를 ‘홀래 먹은’ 사람이 뻔뻔하게 활보하고 다니는 것에 속이 상한 A씨. 그 과정에서 차용증이나 계약서 작성과 같이 신중하게 돈 거래를 해야 한다는 건 배웠지만,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하필 뛰어든 곳이 ‘주식’이다.
“우리는 돈 좀 만들어서 북한에도 보내고 이런 심성이니까, 제가 주식이라는 거를 했어요.”
1년 동안 일해 꼬박 모은 돈에다가 정부에서 준 보조금까지 ‘탈탈’ 털어 넣었다.
“첨엔 겁나니까 100만 원 정도 넣었는데, 하루에 7만 원을 번 거예요. 컴퓨터로 손을 까닥했을 뿐인데 노가다 일당보다 많기에 아, 이거 괜찮네 했지요.”
‘오늘 100만 원을 넣어서 7만 원을 벌었으니 2천만 원을 넣으면 140만 원을 벌지 않을까’란 생각에 다음날 2천만 원 가까운 돈을 ‘올인’ 했다. 하지만 주식은 곧바로 휴지조각이 됐다.
“컴퓨터를 딱 키니까 아예 화면이 하얀 거예요. 알고 보니까 상장실질심사라는 거를 들어가서 주식거래를 못하게 딱 증권사에서 막아놓은 거래요.”
‘참 꼬라지 같은 내 인생이네’라고 한탄하며 죽을 결심을 했던 A씨.
“그런데 TV를 보면 회사가 부도나서 사장님들이 막 고생을 하다가 다시 회사를 재건하고 이런 게 많잖아요. 가만 보니까 사람이 생각하기에 매인 것 같애. 살아야 겠다 생각했지요.”
주식을 할 때 모 캐피탈에서 높은 금리의 이자로 돈도 빌려 쓰고 있었던 A씨는 연장 작업을 하면 일반 회사보다 돈도 더 받을 수 있기에 일용직 현장을 주로 다니며 ‘미친 듯이’ 일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갚고 갚아도 대출금 일부가 남아있던 차에 문자를 한 통 받았다. 대출 스팸문자로 한 때 유명세를 탔던 ‘김미영 팀장’에게서 였다.
“핸드폰에 막 문자가 오잖아요. 김 누구 팀장? 맞아요. 김미영 팀장. 그게 대한민국 이름 공통이대? 신용 불량이어도 오케이고 아무 때나 전화를 주시라고.”
하지만 막상 전화를 해보니 대출을 해 주지도 않았다.
“막 다다미로… 말하자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막 다구리로 (문자를) 보낸 것 같아요. 이름 대라 주민번호 대라 해서 조회를 하더니만 채무가 있어서 안 된다는 거예요. 불합격을 맞고, 다른 데다 전화하니까 며칠 전에 신용조회를 해봤기 때문에 신용등급이 떨어졌다고 해요.”
그렇다면 ‘경품에 당첨됐다’는 전화도 받아본 적 있느냐는 물음에 전화사기는 당할 뻔했었다고 말한다.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중앙검찰청인데 내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사용된다는 거예요. 빨리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물어보는 대로 대답하라고요.”
다행히 동료직원에게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듣고 잘 대처해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당하니까 ‘이게 보이스피싱이구나’ 이런 생각이 아이 든다니까요.”
북한에서는 이런 일 없겠지요?’하고 물었더니 북한에서는 통장 자체를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답한다.
“돈이 은행에 들어가면 언제 찾겠어요, 그 돈의 절반을 뇌물로 받쳐야 찾을 런지….”
이렇게 불신이 쌓일 만큼 쌓인 A씨지만, 자신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며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직장에 다닐 수 있도록 해 준 사업주도 만났다. 동대문에서 원사를 파는 가게의 점원으로 근무했을 때다.
“처음에 동대문 시장이 놀라웠던 게, 같은 물건 파는 집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거예요. 북한에선 못 보던 큰 시장이니까, 이 사람들이 다 어떻게 먹고 사는가 했어요. 단추 가게만 해도 한 층을 뒤짚어 엎고… 이 사람도 실 팔고 저 사람도 실 팔고, 앞집 옆집 지하1층 다 실을 파는 거라예.”
‘우리 사장님은 얼마를 벌어야 내 월급도 주고 가게세도 내는지’ 이해가 안 갔다는 A씨.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내가 북한에서 왔잖아요. 그런데 가게하고 창고, 공장 열쇠 3개를 내가 다 맡았단 말예요.”
A씨는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공장에서 물건을 가져다 창고에 채워 넣고, 가게에 나와 셔터를 연 뒤 물건들을 진열해 놓는 일을 맡았다. A씨 말에 따르면, 동대문 가게에는 1억 원 가량의 실이 진열돼 있고, 창고에는 2~3억 원어치의 물건이, 또 뚝섬에 위치한 실공장에도 5~6억 원 어치 등 총 10억여 원 가량의 물건이 쌓여있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지만, ‘이거 하룻밤 차 가져가서 물건 싹 실어가면 어떻게 하려고?’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에서 창고를 지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밤에 몰래 ‘돕바(훔쳐)’가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
“물동량도 엄청 많은데, 번호 키도 내가 다 갖고 있었거든요. 사장님이 나를 믿고 맡기는 거니까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요.”
비록 한국에 와서 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에 순탄한 길을 걷진 못했지만 A씨는 현재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에 다니면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 수급자라는 대접을 받는다는 게 창피스러웠어요. 저는 회사를 구하기 전까지 딱 2달만 수급자 생계비를 탔어요. 생계비라는 게 국가에 돈을 달라고 손 내미는 거잖아요. 노인도 아니고 몸이 불편해서 노동 능력을 상실한 것도 아닌데, 젊은 사람이 창피하잖아요. 비록 주식으로 싹 다 날려먹긴 했지만 지금은 열심히 잘 살고 있습니다.”
<글.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