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나 지역의 명칭, 도로 이름 등은 주로 그 지역의 특징과 역사, 전설에서 유래된 곳이 많다. 한국도 오랜 역사만큼이나 각 지명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쳐 강제로 지명이 개명되기도 했고, 남한과 북한이 분단된 이후 서로 다른 체제 하에서 70여년 가까이 상이한 역사발전을 거치면서 지명 역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남한은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1특별시 9도의 행정구역에서 출발해 오늘날 1특별시 6광역시 8도 등으로 바뀌어 왔다. 국가발전을 위해 행정지역과 단위를 조정·개편해 온 것이다. 중요한 점은 각 지명을 선정할 때도 자유민주주의체제 특성에 따라, 또는 민족적인 개념을 위주로 적용해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2012년 7월에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가 좋은 예다.
북한 역시 정권 수립 이후 오늘까지 다양한 변화단계에 맞추어 행정구역의 개편을 수십 차례 추진해 왔다. 1945년 해방 당시 강원도 일부지역을 포함한 6도 9시 89군으로 출발하여 수십 차례의 조정과 개편을 거치면서 2014년 현재 1직할시(평양), 2특별시(남포, 라선), 9도(평안남·북도, 황해남·북도, 함경남·북도, 자강도, 강원도, 량강도), 3지구(신의주특별행정지구, 개성공업지구, 금강산관광지구)로 변해 왔다.
주로 특별 및 직할시, 도와 시·군 지역, 리와 읍·구·동으로 구성되는 행정구역체제는 남한과 유사한 구조로 되어있으나, 각 지명의 조정과 개편과정에 추구한 의도 및 목적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바로 김일성일가의 치적 선전과 우상화를 위해 지역 이름을 바꾸고, 사회주의 이념과 성격, 발전상을 지명에 적용해 왔다는 점이다.
먼저 김일성·김정일의 치적 선전과 우상화를 위해 지명을 작명·개명한 예는 다음과 같다.
김일성 가계 인물들의 이름을 부여한 지명들은 주로 북부지역인 량강도에 집중돼 있다, 1980년대 김정일의 주도로 개명된 김형직(김일성 父, 옛 후창)군, 김정숙(김일성 妻, 옛 신파)군, 김형군(김일성 叔父, 옛 풍산)군들이 있으며, ‘김일성·김정일의 고향’이라는 데 의미를 두고 작명한 평양시 만경대구역, 삼지연군 백두밀영구가 있다. 특히 김형직군·김정숙군·김형권군은 소위 광복 전 일제를 반대해 투쟁한 김일성 가계의 업적을 기리는 차원에서 해당 지명의 승격과 함께 각자의 대형 동상과 박물관들을 겸한 성지들로 신성시되고 있다.
함경북도 새별(경원)군과 은덕(경흥)군, 함경남도 낙원(퇴조)군, 영광(오로)군도 모두 김일성의 존칭과 업적 부각 차원에서 개명된 대표적인 지역들이다. 말단단위의 리·동 지역들로서 평안남도 평성시 은정구역, 함경남도 함흥시 은덕동, 황해남도 은률군 은혜리, 황해북도 서흥군 은정리, 강원도 고산군 광명리 등도 동일한 맥락에서 개명됐다. 이외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로서 ‘충신계열’에 속하는 김책, 안길, 김학송의 이름을 부여한 지역들로 함경북도 김책시(성진), 은덕군 안길리(장안), 학송리(아오지)가 있다. 광복직후 ‘애국미 헌납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진 농민 김제원의 이름을 차용한 황해남도 재령군 김제원리와,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된 리수복(평남 순천시 수복동)·리수덕(강원 평강군 리수덕리)·박원진(평북 구성시 원진리)·리보부(평남 개천시 보부리) 등의 지명들도 존재하고 있다.
또한 체제의 이념과 성격, 발전상을 반영한 지명들의 개수와 범위도 다양하다.
전투적인 성격을 반영한 선봉군(라선시), 개선동(평양·원산), 승리동(원산), 봉화리(강동군), 전우동(평양시), 승전동(개성), 전승동(평양)은 항일투쟁과 6.25전쟁업적을 함의하고 있다. 혁명성과 사회주의 발전상을 추구한 지명들로서 남포시 천리마구역, 평양시 보통강구역 붉은거리 1~3동·봉화동, 자강도 장강군의 혁신리, 함경남도 금야군, 평안남도 청남구의 검은금동, 황해남도 신천군 새날·새길리, 함경북도 김책시 풍년리·제강1~2동 등이 있다.
그 중에는 김일성의 발기에 의해,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향으로 알려진 영흥군을 ‘검은금(黑金, 석탄)’과 ‘넓은 들(野)’을 합성어인 금야군으로 바꾼 사례도 있다. 또한 1950년대 ‘천리마운동’의 진원지이자 강선제강소가 위치한 평안남도 대안시를 남포시 천리마구역으로, 농업협동화와 사회주의 건설을 선도해나가라는 의미에서 황해남도 신천군의 두 개 단위를 새날·새길리로 개명한 사례들도 전해지고 있다.
그밖에 행정구역들의 변천사례들을 보면, 정권 수립이후 일제잔재 청산과 봉건적인 민족풍습을 차별하는 차원에서 조정·개편단계를 선행시킨 부분들도 있다. 그러나 김일성의 유일통치구도가 고착되고 김정일로 세습되는 권력승계의 역사 속에서 독재체제의 근원적인 속성과 특성은 국가 행정구역 지명들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왔다. 특히 동일한 민족과 국토에서 분단된 이후 행정구역들의 변천사를 통해서도 극명하게 대치되는 남북한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방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외 비록 행정구역명은 아니지만 사상과 제도를 규제하고 각 분야와 단위, 단체와 기관들의 명칭들을 적용하는 데서도 북한정권의 속성과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민족자체를 김일성태양민족으로 자칭하며 체제의 이념자체를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명명했다. 국가헌법은 김일성헌법으로 공식화했으며 국가수훈제도는 김일성 상·훈장, 김정일 표창 등의 상위 순위로 제정했다. 청년단체조직은 김일성사회의주의 청년동맹으로 개칭했으며 이하 체제 전반에 걸쳐 김일성 가계의 이름과 존칭을 남발했다.
대표적으로 군부단위 김일성군사종합대학, 김일성정치대학, 김정일정치군사대학, 김정숙 해군대학, 김형직(김일성 父)군의대학, 김철주(김일성 同生)포병군관학교, 만경대혁명학원·강반석(김일성 母)유자녀학원들이 있다. 사회분야의 김일성고급당학교, 금성정치대학·학원(김일성 애명), 김정숙 사범대학, 김정숙 교원대학, 김정숙 탁아소, 김보현(김일성 釣父)농업대학, 정일봉 중학교, 김기송중학교(김정숙 同生)와 경제단위로서 김정숙 편직·제사공장 등이 있다.
이와는 별개로 김일성 부자의 시신을 안치한 장소를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명하고 북한 전역에 대형동상과 석상, 영생탑 수천 개를 건립하였다. 농촌리를 포함한 전국의 모든 지역들과 각 분야, 단위들에는 김일성·김정일·김정숙을 지칭한 3대장군혁명역사연구실을 일괄 설치해 김일성 일가의 성역화를 정치·제도적으로 공인시켰다. 기타 3대 명산으로 일컫는 백두산·금강산·묘향산 등의 크고 작은 바위마다에 새겨 넣은 각종 우상화 구호들과 압록강·두만강에 붙은 수식어들까지 아우르면 북한의 전 국토와 주민, 제도와 구성 전체가 김일성 일가의 영역으로 고착된 셈이다. 무릇 김정일이 생전에 즐겨 애창하며 모두가 부르도록 독려한 노래 ‘내나라 제일로 좋아’가 극도로 괴리된 북한의 현실을 역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진제공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