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대장은 지난 7월 19일부터 8월 3일까지 15박 16일 동안 ‘2014 DMZ 평화통일대장정’을 직접 주관해 다녀왔다. 지난해 이어 두 번째다. 그는 올해 110명의 대학생들과 함께 고성 통일 전망대를 시작으로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까지 휴전선 155마일을 도보로 완주했다. 긴 시간, 먼 거리만큼이나 쉽지 않았을 ‘평화통일대장정’을 다녀오게 된 이유를 물었다.
“지난해가 6.25 한국전쟁 60주년이었잖아요. 이를 기념해 우리의 미래인 젊은 청년들, 특히 대학생 155명과 함께 DMZ 155마일을 걸으며 6.25전쟁으로 인한 분단 조국의 역사적 교훈을 함께하고, 히말라야 고봉 16좌 등정에서 얻은 도전정신을 공유하기 위해 평화대장정을 실시했어요. 작년에 행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져 올해 엄홍길휴먼재단의 대표 사업으로 2회째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DMZ 평화통일대장정은 참가학생들에게 비용을 받지 않고 일체 무상으로 이뤄졌다. 다만 도보 1km 당 100원씩 3만5,000 원씩을 걷어서 이 돈을 전액 물망초 재단에 기부했다. 기부금은 북한이탈청소년들을 돕는데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요즘 청소년들이 갇힌 공간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삭막해져가고, 육체적으로는 너무 나약해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엄홍길 대장. 공동체생활에서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학생들을 자연으로 끌어들여 체험을 통해 스스로를 이겨내게 하고 싶었어요. 이런 프로그램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도전정신과 기상, 인내력도 기르면서 자아계발도 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배려심과 남을 위한 이타적인 마음을 심어주는 것은 기본이고요.”
무엇보다 DMZ 휴전선 155마일을 완주하는 일은 역사인식을 투철히 하고 국민으로서 갖춰야 할 안보의식을 높이며 이를 바탕으로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 엄 대장의 설명이다.
여름 무더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대장정 기간, 평화통일대장정은 그 안에 담긴 높은 뜻만큼이나 고통도 매우 컸을 것 같았다.
“산길이 아니라 아스팔트길을 계속 걸으니까 발에 피로도가 굉장히 심하지요. 엄청난 아스팔트 열기에 발이 익어요. 저는 오른쪽 발목에 장애가 있어요. 내가 이런 다리를 가지고도 걷고 있지 않느냐, 너희들은 멀쩡한 두 다리로 걷는 것이니까 이정도 가지고 고통스럽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타일렀어요.”
엄홍길 대장은 안나푸르나에 네 번째 도전하던 중 오른쪽 발목이 180도로 돌아가는 큰 사고를 당해 다리에 쇠 핀을 박았다.
DMZ평화통일대장정에서는 150명이나 되는 대부대가 단체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쉬고 싶을 때 제대로 쉬지도 못했지만,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강한 의지를 발휘해 완주에 성공했다. 엄홍길 대장은 대원들에게 ‘나를 생각하기 전에 상대방을, 그리고 우리를 생각하라’고 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
“학생들에게 말했어요. ‘여러분 인생에서 아마 가장 큰 도전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도전을 통해서 많은 시련과 고통, 후회와 싸우며 눈물을 흘리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 순간을 되돌아보면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는 인생에 큰 경험이 됐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요.”
엄홍길 대장은 ‘평화통일의 길’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통일도 노력하지 않으면, 관심 갖고 신경 쓰지 않으면 절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거든요.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히거나 시행착오가 발생한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남과 북이 평화적인 합의하에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대장정에 참여한 학생들은 충분히 이해했을 것입니다.”
사실 엄홍길 대장을 만나 ‘통일’ 이야기만 듣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자원봉사차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온 지 채 사흘이 되지 않아 초췌한 모습의 엄 대장이었지만, 히말라야 등반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심이 났다. 거대한 절벽에서 낙석이 총알처럼 날아다닌다는 히말라야의 겨울, 눈으로 가려진 크레바스들, 등반 과정에서 생과 사의 기로를 수도 없이 만났을 텐데, 두렵진 않았는지, 어떻게 재도전을 거듭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산에 막 들어섰을 때부터, 정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시도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어요. 산에는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눈사태, 낙석, 낙빙 등은 사전에 예고 없이 오잖아요. 두려움이라는 것은 말도 못해요. 하지만 그걸 이겨내지 못하면 단 5미터도 나아갈 수 없어요. 두려움을 이겨내야지만 5천, 6천, 7천, 그리고 8천미터 정상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을 얼마만큼 빨리 슬기롭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지요.”
엄홍길 대장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 16개를 정복했지만 그 기록 이면에는 절반의 실패가 있었다. 특히 초기 3년간은 두 번 실패 후에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고, 이후 여섯 번 내리 실패하기도 했다. 엄홍길 대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어떤 목표를 세우면 반드시 행동에 옮기세요. 그 과정이 항상 본인의 계획대로 되진 않을 겁니다. 누구나 다 이런 시련과 고통, 실패를 겪습니다. 문제는 이를 얼마나 빨리 극복하고 슬기롭게 이겨내느냐입니다.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좌절의 순간에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긍정적인 사고, 신념으로 ‘나는 할 수 있다.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도전하세요.”
16좌 완등을 성공한 뒤 엄홍길 대장은 22년간 자신에게 은혜와 혜택을 베풀어준 히말라야의 가르침대로 나누고 봉사하는 삶을 선택했다. 산 아래의 삶을 내려다보며 그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 부모의 가난을 이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는 엄 대장은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들에게 학교를 설립해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2008년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 엄홍길 1호 학교를 에베레스트 4000m 부근에 지은 이후 매년 1개씩 학교를 세워나갔다. 현재 11개의 학교가 지어졌으며 16개의 학교를 설립할 때까지 계속할 예정이다. 그밖에 엄홍길휴먼재단을 통해 국내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사업과 등반 중 사망한 산악인 유가족 지원사업 등도 실시하고 있다.
엄홍길 대장의 또 다른 목표는 남북한 산악인이 하나 되어 평화원정대를 꾸리는 것이다.
“저는 북한의 금강산에도 가봤고 묘향산 백두산도 가봤어요. 북한과 통일이 된다면 백두대간을 종주해보고 싶습니다. 또 한걸음 더 나가서 통일이 되면 남한과 북한 산악인들이 하나가 되어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의 평화원정대를 만든 후 레이스에 도전해서 성공하는 것이 저의 또 다른 꿈입니다.”
<글. 기자희 / 사진. 엄홍길휴먼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