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 탈북청소년들의 대안학교인 ‘두리하나국제학교(서울 방배동 소재)’가 종합병원으로 변신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의료봉사단이 ‘통일맞이 하나-다섯운동’의 일환으로 북한이탈청소년을 위해 체계적인 검진과 진료의 시간을 마련한 것. 민주평통 의료봉사단은 이날 초중고 학생 50여 명과 보호자 등을 대상으로 치과·내과·한방·안과 검진과 진료를 무료로 실시했으며, 학교 측에는 구급약 키트(가정용 상비약 9종)와 치과용품, 안경, 간식 등을 지원했다. 한편, 현경대 수석부의장도 이날 의료지원 현장을 방문해 의료봉사단과 탈북청소년들을 격려했다.
이틀 전인 6월 10일, 두리하나국제학교 학생 전원은 에이치플러스 양지종합병원(이사장 김철수)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했고 김철수 단장은 이날 그 결과를 가지고 와서 진료를 실시했다.
B형 간염보균자인 한 학생에게 김철수 단장은 “부모님 중 간 건강이 좋지 않았던 분이 계시느냐”고 묻자 “북한에 있을 때 아버지는 약을 못 써서 기관지 천식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간복수로 돌아가셨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도 남한에 와서 약을 복용했지만, 돈이 없어 재검진 시기를 놓쳤다고. 뒤늦게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라는 이 학생에게 김 단장은 “이 병이 쉽게 낫는 병은 아니니 나중에 병원에 찾아오면 무료로 정밀검사를 해주겠다”고 약속한 뒤 “배움에는 나이가 따로 없다”고 격려했다.
김철수 단장은 “박근혜 대통령께서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병들어서 서럽지 않고 취업 걱정 없도록 해달라고 민주평통에 부탁하신 것처럼, 아프지 않고 서럽지 않게 해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안경 끼고 싶다~ 안경 쓰면 예쁠 것 같아요. 일부러라도 눈 나쁘다고 할 걸.”
이날 아이들이 가장 갖고 싶어 했던 것은 바로 ‘뿔테 안경’이었다. 8살 난 미연(가명)이는 시력이 좋은 데도 안경을 쓰고 싶다고 계속 졸라댔다. 30여 분 간 주변을 맴돌다가 결국 도수 없는 안경을 획득한 미연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한 인솔 교사는 “애들이 안경을 갖고 싶어 했는데 이렇게 와서 무료로 해주시니까 좋다”며 아이들을 대신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안경지원을 맡은 시호비전그룹에서는 임직원 5명이 나와 봉사활동을 했다. 즉석에서 시력을 측정하고 안경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바로 옆에 놓인 테를 고르도록 해 제작에 들어갔다. 의료봉사단 김태옥 고문(시호비전그룹 회장)은 “한국에 와서 세상을 밝게 보라고 현재 하나원과 MOU를 맺어 북한이탈주민 전원에게 무료로 안경을 제작해주고 있다”며 “오늘 만난 학생들은 MOU체결 전에 먼저 온 것 같은데, 앞으로는 하나원에서부터 안경을 맞춰서 사회에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에 두 번씩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는 장예나 씨는 “처음에는 낯설게 생각했지만 자주 만나보니 좋은 분들이 많다”며 “통일이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금 시릴 거야. 긴장하지 말고. 괜찮아. 조금 시큼시큼해. 참아야 해.”
학교 옆 작은 공원 담벼락에 주차된 이동식 치과병원 버스. 그 안에서 진료를 받고 나온 한 학생에게 물었다. “충치 있대요?” 그러자 “몰라요. 비밀”이라고 답한다. “어디 아픈데 있어요?”라고 했더니 “아친(아침마다) 머리(가 아파요)”라고 답한다. 중국에서 오래 살다 연고도 없이 남한에 와서 그런지 한국말이 서툴렀다.
이동식 치과병원은 40명 아이들의 구강상태를 모두 검진하고 일부 치료까지 해주느라 왼 종일 바빴다. 김세영 부단장(전 대한치과의사협회장)은 “북한이탈주민에게 가장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바로 치과”라며 “잘 못 먹고 구강상태가 좋지 않아 보철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직접 진료를 맡은 김홍석 의사(협회 재무이사)는 “오늘 보니까 치료가 필요한 부분이 많아, 이런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귀가 막 톡 쏘고 머리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아요.”
북한에 있을 때부터 계속 두통으로 고생했다는 한 남성이 김영수병원의 김도형 원장에게 통증을 호소했다. 김 원장은 어깨의 근육을 살펴보며 “목이나 어깨가 경직돼서 머리로 통증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 뒤, 올바른 자세와 스트레칭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김영수병원에서는 이날 진료와는 별도로 스트레칭 밴드를 한 상자 가져와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김 원장은 “근처에 중학교가 있는데 허리가 휘어서 병원을 찾는 학생이 많은데, 여자 아이들은 가슴이 발육되면서, 또 남자아이들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 등으로 자세가 나빠지는 것”이라며 “지금 이 친구들에게는 정자세와 올바른 스트레칭 방법을 가르쳐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완수 수석부회장(대한한의사협회)의 한방 진료소는 아이들의 보호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처음 진료를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기념사진을 촬영하기 직전까지 자리 한 번 뜨지 않고 쉴 새 없이 진료를 했다.
정형외과 진료를 맡은 백성길 부단장(대한중소병원협회 회장)은 어린 아이나 청소년들의 경우 정형외과 측면에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활동을 많이 하다 보면 찰과상 같은 게 생길 텐데, 이번에 기증한 구급함키트가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고. 백 부단장은 “북한이탈주민들을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하고 충분히 교육받을 권리를 누리게 해줘야 하며, 취업 기회를 제대로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관심과 열정으로 참여하고 많이 베풀 줄 아는 마음 자세를 가지면 북한이탈주민들이 소외감 없이 동화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있잖아요. 물을 먹으면 이상하게 다시 입에서 물이 나와요. 많이는 안 먹는데 토하는 것처럼 막 나와요.”
의사 선생님보다 간호 선생님이 편했는지 한 아이가 와서 하소연을 했다. 양지병원 김아름 선생님은 “넘어져 생긴 상처에 연고도 발라주고 감기로 기침하는 환자들, 소화가 잘 안되고 설사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약을 챙겨줬다”며 “외형상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아무래도 문화적 차이가 있으니까 사회에 적응을 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명숙 부단장(대한간호협회 명예회장)은 “신체적 건강은 대체로 양호해보이지만,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심리ㆍ정서적으로 잘 보살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옥수 대한간호협회장은 “이분들이 건강해야 남북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활동이 많이 홍보되어 의료계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두리하나국제학교 천기원 담임목사는 “결핵이 많고 간염이 있는 친구도 있는 데다 안과의 경우 의료보험의 혜택을 못 받는데 좋은 일을 해주셨다”며 고마워했다. 천 목사는 처음 남한에 왔을 때 몸무게가 13kg에 불과했던 11살 해송이가 지금 13살이 되었고 몸무게도 36kg로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또래 아이들보다 25cm가 작다며 영양 결핍에 따른 왜소한 체형을 걱정했다. 그러나 “민주평통 등 많은 기관에서 관심을 가져주셔서 아이들이 자신감을 얻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철수 단장은 이날 “북한이탈청소년이 잘 자라서 뒷받침이 돼야 우리나라가 잘 되고 통일을 빨리 이룰 수 있다”며 “두리하나국제학교 외에도 약 10개 대안학교를 대상으로 7월 말까지 무료 진료활동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지원사업은 민주평통이 올해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통일맞이 하나-다섯 운동’의 일환으로 의료인 출신 제16기 자문위원 17명을 대상으로 중앙단을 구성하고, 지난 2월 25일 ‘민주평통 의료봉사단’의 출범식을 가졌다. 의료봉사단은 단장인 김철수 대한병원협회 명예회장(에이치플러스 양지종합병원 이사장)을 중심으로, 분야별 국내 최고 수준의 의료진으로 구성됐으며, 이번 ‘민주평통 의료봉사단’ 활동은 대한치과협회·대한한의사협회(진료지원)와 한국제약협회(구급상자 및 의료구급약품), 시호비전그룹(안과 검진 및 안경)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