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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수교 49주년… 불신의 벽에 갇힌 한일관계 해법

수교 49주년… 불신의 벽에 갇힌 한일관계 해법
불통·대립 넘어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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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근혜 대통령이 3월 26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3자 정상회담에 참석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나란히 앉아 모두발언을 마친 뒤 웃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는 2015년은 양국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함께 출발하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위안부, 독도, 집단적 자위권, 야스쿠니, 역사교과서 등 이슈마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일관계의 해법을 ‘소통’의 관점에서 찾아보았다.

일본 내각부가 1978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친근감 조사를 보면, 2013년 시점에서 한국의 대해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일본인이 전체의 58%에 달해 ‘친근감을 느낀다’는 비율(40.7%)을 크게 앞섰다. 이러한 경향은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비호감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증폭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비호감이 호감을 압도하는 현상은 과거 1990년대에나 나타나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최근 2, 3년 사이에 급격히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지난 20여 년 동안 한일 양국이 꾸준히 쌓아온 관계 축적의 결실로만 여겼던 ‘신뢰’라는 것이 실은 얼마나 허약하고 무색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우리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본의 특정 비영리법인 ‘언론NPO’와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이 올해 7월에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갖고 있다’는 한국인은 70.9%로 한국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갖고 있는 일본인의 비율(54.4%)을 크게 상회한다. 같은 현상은 요미우리신문과 한국일보 공동 여론조사(요미우리신문 2014년 6월 9일자 보도)에서도 나타나는데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일본인이 전체 응답자의 73%였던 데 반해, ‘일본을 신뢰할 수 없다’고 답한 한국인의 비율은 83%로 나타나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불신은 양적, 질적인 면에서 일관되게 일본을 능가하고 있다.

서로가 자신의 타당성만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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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 3월 16일 도쿄에서 벌어진 반한(反韓) 시위 모습. 한 시위자가 ‘이상한 민족주의, 끝없는 반일운동, 세계 굴지의 반일국가, 바로 한국’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국민감정의 악화가 역사인식과 영토를 둘러싼 의견 대립 등 정치적 갈등에 대부분 기인하고 있음에도, 양국 정부가 이를 신속히 개선해야 할 과제로서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로가 자신의 타당성만 주장하며 상대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이데올로기적 대결 구도로 치닫는 현실을 오랫동안 방치해왔다.

앞서 언급한 언론NPO와 동아시아연구원의 2014년 공동 여론조사에서도 서로가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된 이유로 일본 측이 ‘역사 문제 (73.9%), 다케시마 문제 (41.9%), 한국 정치가의 발언 (30.0%)’을 꼽았고, 한국 측 역시 ‘역사 문제 (76.8%), 독도 문제 (71.6%), 일본 정치가의 발언 (22.9%)’ 순이었다. 이처럼 국민여론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일본 내에선 혐한론과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방관하고, 한국 내에서는 친일과 반일이라는 이분법적인 척도로 우리의 근현대사를 인식하려는 풍조가 정당화되고 있다. 소통의 부재, 즉 불통의 방치는 상황을 잠시 쉬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악화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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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월 20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140차 정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오른쪽)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정치학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의 부상에 따른 역학구도의 변화가 지역 국가들의 내셔널리즘 혹은 민족주의적 경향을 강화시켰다고 분석한다. 또한 경제학적인 면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따른 글로벌리즘의 확산이 국내의 취약계층을 양산함으로써 그러한 경제적 약자들의 불만이 대외적인 우경화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원인 분석은 동시에 다양한 해법의 제시로도 이어지고 있는데, 2009년에 발족한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의 2013년 보고서에서는 21세기 동아시아 정세를 ‘복합화의 시대’로 규정하고 이에 걸맞은 한일 양국의 관계 구축을 위한 ‘7가지 핵심적 과제’를 제시했다. 구체적인 협력 분야로는 안보, 경제, 과학기술 등과 함께 ‘문화, 지식, 언론의 교류촉진’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러한 교류를 통해서 ‘보편적 사고와 문화를 공유하는 인식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소통의 구조적인 문제, 특히 그 주체자로서 언론의 역할과 국경을 넘나드는 정보의 수용 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자각이 우선돼야 한다. 오늘날 한일 양국의 언론 정보가 상대국가에서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으로 규정되면서 국민감정의 악화로 이어지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원인을 오늘날의 양국 간 소통의 측면에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의제 설정의 비대칭 현상

정보화 시대라 불리는 21세기에 걸맞게 급속도로 보급된 인터넷망을 통해서 개인 간의 자유로운 정보 교류가 가능해졌다고는 하나, 일상에서 접하는 외국 관련 정보의 일차적인 발신자가 신문과 방송 같은 대중매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일본 총무성의 정보통신정책연구소가 2012년에 발간한 ‘정보통신 매체의 이용시간과 정보행동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90% 이상이 시사 정보를 얻기 위해 TV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신문 구독은 72%),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60%의 응답자들 역시 대부분이 신문 또는 TV 뉴스를 인터넷을 통해 보는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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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조사 결과가 한국의 경우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신문과 방송이 상대국에 대한 일차적 정보원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한일 양국 대중매체의 보도가 소통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문제의식의 공유’에서 출발하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아래에서는 양국관계의 현안이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언론의 보도 내용 분석 결과를 중심으로 한일 간 쟁점의 차이가 소통의 부재와 상호 불신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대중매체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고전적 이론 중에 ‘의제설정이론(Agenda Setting Theory)’이 있다. 1972년에 처음으로 제시된 이 이론은 언론매체의 정보가 대중의 현실의식을 구성한다는 ‘의사환경론’의 계보를 이어가면서도 그러한 정보 환경의 구성 방식(의제 설정 방식)이 사회의 중요 쟁점에 대한 대중의 합의 도출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밝혀낸 이론이다. 또한 이 이론은 언론의 의제 설정이 대중의 지각과 인식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민주사회에서 형성된 여론이 해당 국가의 정치 지도자와 정책 결정권자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도를 포괄적으로 상정하고 있다(오카다, 1992)’는 점에서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 문제를 둘러싼 갈등 구조를 설명하는 데에도 유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의제설정이론에 입각해 일본의 5대 일간지가 1990년 1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신문기사 총 3322건을 보도 시기별로 정리해보았다.

여기에서 추론되는 것은, 적어도 2000년대 이후에는 위안부 문제가 일본 사회 스스로 직시해야 할 역사 문제로서가 아니라 한일 간의 역사 인식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의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현저하다는 점이다. 그 근거로 이 문제가 한일 간의 현안으로 대두됐던 1991년을 기점으로 1992~98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보도된 이후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다시 2007년과 2012년 이후에 집중적인 보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은 모두 아베 내각의 집권 시기와 일치하며, 한일 간의 역사 인식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재현된 시기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2005년과 2011년에 보도가 미세하게 증가하는 시점 역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고이즈미 정권 및 노다 정권과 한국 정부 간의 마찰이 고조되던 시기와 일치한다.

다음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간의 쟁점을 정리해 그 쟁점들이 일본 언론에서는 어떻게 다뤄져왔는지를 살펴보면 일정한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문제의식의 유형은 선행연구 등을 통해서 크게 4가지로 분류돼왔으며, 그것은 (1)일본 정부의 공식적 견해 및 입장 문제 (2)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 문제 (3)한일 간의 외교적 문제 (4)전후 보상 문제 (5)보편적 여성의 인권 문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분석한 전체적인 기사 내용의 의제 설정 유형을 보면 위안부 문제를 한일 양국의 외교적 갈등 요인으로 다룬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37.9%), 역사적 사실의 문제(32.5%)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문제(24.2%) 순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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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내용을 분석해보면 ‘한일 간의 외교적 갈등’의 경우 한국과 미국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 및 기림비 문제가 반복적으로 다루어지는 등 ‘한일 간의 해결 과제’라는 문제의식에서 ‘국제사회 속에서의 한일 갈등’으로 초점이 옮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 역시 과거에는 고노 담화의 계승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이 최근에는 고노 담화의 타당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으로 변질되고 있으며, 2007년과 2012년 이후에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쟁점 또한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이 존재하였는가?’와 같이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 주로 설정되는 의제인 ‘보편적인 여성의 인권 문제’라는 관점은 4.9%에 불과하며, ‘전후 보상 문제’로서의 의제 설정 역시 1990년대에 집중되고 있어 2000년대 이후에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기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소통에 장애가 되고 있는 양국 언론

이상의 결과를 정리해보면 한일 양국의 방송, 신문 등의 대중언론이 그동안 주장하고 호소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의는 결국 대결 아닌 대결로, 논쟁 아닌 논쟁으로 귀결되면서 서로의 국내적 관심과 감정에 매몰됐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보도자료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부족한 상황에서 섣불리 일망타진식의 결론을 내릴 수는 없겠으나, 의제 설정의 비대칭성 때문에 생기는 문제의식의 불일치가 결국에는 소통의 부재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비단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야스쿠니와 역사교과서 문제, 집단적 자위권 문제, 독도 문제 등 한일 간의 모든 정치적 현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를 바로잡고 논의의 쟁점화와 구체화의 방향을 제시해야 할 정치권 역시 이러한 국내 언론의 의제 설정 프레임에 갇혀버린다면 정치권이 내놓는 발언 또한 외교적 메시지로서의 동력을 상실한 우물 안 개구리의 일방적 독백에 그치고 만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의 소통을 우리는 종종 ‘전쟁의 은유’로 인식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전략적인 진영 논리와 비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상대방에게 전달조차 되지 않는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현실에서는 한일 양국의 언론이 오히려 소통의 장애가 되고 있음을 자성해야 한다. 소통이란 함께 건물을 쌓아가는 공동 작업이요, 긴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와의 협력 과정임을 상기하면서 공통 언어로서의 의제 설정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 절실한 때다.

 

photo 김경주 일본 도카이대 국제학과 부교수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사회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한일 불교문학 학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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