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한국어에서 읍니다와 습니다와 합니다의 차이가 뭐예요? 왜 그런 거예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한글문법을 가르치고 있는 스물세 살의 고려인 3세 우한나 씨. 문법이란 그렇게 언어를 쓰기로 한 일종의 규칙인데, 학생들은 ‘왜 그렇게 쓰는지 이유를 알려 달라’며 졸라 대서 난처해질 때가 있단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CIS(독립 국가 연합)지역 수강생들이 늘어난 요즘, 오프라인 강의는 물론 온라인에서도 한국어교육과 한국문화 소개를 활발히 이어가고 있는 우한나 씨를 만났다.
현재 우크라이나 ‘비전센터 한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자원봉사중인 우한나 씨(키예프대학원 한국어 석사과정)는 지난 6월 재외동포재단의 ‘CIS 한국어 교사 초청연수’로 한국에 왔고, 9월 초까지 이화여대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한국문화 집중 교육을 받았다. 유튜브에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지속적으로 게재하고 있는 그녀는 CIS 지역의 한류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유튜버’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블로그를 운영하며 고려인과 우크라이나, 러시아 사람들의 한국어 학습을 돕고 드라마나 케이팝과 같은 한국문화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고려인’인 우한나 씨가 한국어를 하고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그녀의 가정에서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없었다. 우한나 씨는 고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여섯 살 이후로 아버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러시아 정세가 불안정했을 때 아버지와 연락이 두절된 이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고, 엄마와 우 씨는 사할린을 떠나 우크라이나로 이사했다고 한다. 키예프에서도 우씨는 고려인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고려인들이 주로 친 러시아 성향을 가진 남부 크림 지역에 밀집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 힘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우한나 씨가 본격적으로 한국문화를 접한 건 2014년,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오면서 부터다. 오자마자 한국문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그녀는 어떻게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유튜브를 개설했다. 한국음식을 맛보고 여행하고 각종 문화를 체험하면서 이를 러시아어로 재미있게 소개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특히 한 과자제품을 모티프로 한 영상은 빠르게 조회수가 올라가더니 현재 19만 건을 넘어섰고 댓글만 300개가 넘게 달렸다. 이에 영상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하면서, 블로그도 개설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CIS 지역 청년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 블로그 회원 역시 4만 명에 이른다. 교육 블로그를 운영할 때는 주로 CIS 사람들이 좋아하는 케이팝과 드라마를 소재로 활용하는데, 이를 구독하는 CIS사람들은 ‘한국에 가고 싶어요. 서울은 제 꿈이다. 한국어 더 공부하고 싶어요. 한국에 어떻게 갈 수 있나요?’ 등의 피드백을 보내오곤 한다.
키예프에서는 한류의 영향에 힘입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우한나 씨는 현재 초급 한국어 문법을 가르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인들은 어릴 적부터 자국의 언어 외에도 러시아어, 영어 등을 함께 배우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외국어를 습득하긴 하지만, 한국어 문법만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문법을 어려워해요. 예를 들어 ‘합니다 읍니다 습니다’의 차이점을 설명하면 학생들은 ‘왜요?’라고 물어봐요. 왜라니요? 그걸 어떻게 설명해요? ‘원래 그래’라고 말할 수밖에요.(웃음)”
또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드라마가 방영된 다음 날엔 드라마 장면 속에서 본 것들을 질문해오는 바람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우한나 씨는 우크라이나에 사는 고려인들의 경우 오히려 CIS사람들보다 더 한국문화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고려인 3~4세들은 ‘우크라이나어와 영어 러시아어만 해도 성공하는데 문제가 없고, 부모님 세대도 못하는 한국말을 왜 내가 한국말을 배워야 하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며, 고려인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아예 상실하지 않으려면 한국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이 더욱 많아져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고려인들 역시 한국인들과 똑같은 민족이잖아요. 아직 차세대 고려인들은 그 나라에 적응하기 바쁘다 보니 오히려 현지인들보다 한국에 더 관심이 적은데 한국에서도 이들을 활용하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우한나 씨는 특히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은 크림반도의 농촌지역에 주로 거주하다 보니 지역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튜브나 블로그, 온라인 기사와 같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한국 관련 정보를 제공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 같다고 제안했다. 그녀 역시 실제로는 고려인들을 거의 만나본 적이 없지만, 유튜브를 통해서는 정말 많은 고려인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한반도에서 남북한이 서로 대치상태인 것처럼, 우크라이나 고려인들 역시 친유럽과 친러시아로 갈등하는 크림반도에서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반군 분리주의자간에 내전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현재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반도를 되찾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움직임이 계속되면서 또다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우한나 씨는 “가장 중요한 건 한반도나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생하지 않고 평화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북한은 한민족인만큼 지금 당장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왕래만큼은 언제든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어 선생님 자격으로 한국에 온 우한나 씨의 각오는 2년 전 서울대 교환학생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 전에는 한국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익히는 데 열중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한국어 교습 수준을 높일 수 있을지 진지한 태도로 배우며 익히고 있었다. 우한나 씨는 앞으로 한국교육 봉사활동을 계속하면서도, 졸업 후 공무원이 되어 우크라이나와 한국을 문화적, 경제적으로 잇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시에 자국의 고려인들에게도 보탬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글.사진 /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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