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순 간사는 돈을 많이 버는 사업가도 아니고 이름난 기업이나 기관의 임원도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가 왔다 가면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는다. 그녀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맞춤형 복지’다. 호적상 부양가족이 있지만 홀몸인 독거 어르신을 찾아 수급혜택을 받게 하는 일은 이우순 간사의 ‘특기’이자 ‘전공’이다.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 일부러 취득했다.
이우순 간사가 북한이탈주민과 인연을 맺게 된 건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 전부터다. 2006년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다 이경숙(가명), 박태순 씨를 만나게 됐고 가끔 안부를 교환하며 만나온 것이 벌써 10년. 게다가 지난해에는 민주평통 ‘어깨동무하기 멘토링’을 통해 동근이와 향심이, 그리고 다른 탈북민의 자녀인 춘심이까지 3명을 멘토링했으며, 박태순 씨의 쌍둥이 아이들도 손주처럼 아낀다. 작년 말 새로 대전 동구에 둥지를 튼 설이 양도 예쁜 인연이 되었다.
탈북여성들은 이우순 간사와 일상 이야기도 나누고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해 오기도 했는데 그러는 사이 큰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이경숙 씨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마련해줬지만, 딸아이의 건강 때문에 결근을 자주 했고 갑자기 그만뒀다는 얘길 들었어요. 얼마 안있어 제가 위암 수술을 받게 돼 연락을 못 했는데 나중에 이경숙 씨가 연락을 해왔더라고요. 제가 그 일로 실망해서 연락을 끊었다고 생각했나 봐요. 저는 아파서였지 그녀가 미웠던 건 아니었다고 말해줬어요.”
이우순 간사는 먼저 다가와 준 이경숙 씨가 고맙기도 했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더 큰 보람을 느끼게 됐다. 시장에 갈 때마다 시간이 되면 집에 들러 이야기도 나누면서 정이 더 깊어졌다.
“새로 휴대폰을 바꿨을 때도 제일 먼저 저에게 번호를 알려주기 위해 전화했다면서 안부를 물어왔어요.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제가 전화를 걸면 꼭 받으시는 것만 봐도 유대관계를 잘 맺었단 생각이 들어요.”
또 다른 탈북여성인 박태순 씨는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 ‘사례관리’를 하러 갔다가 만났다. 주민센터에서는 방문을 싫어하니까 조심해달라고 당부했지만 막상 만나 보니 듣던 것과 많이 달랐다. 박 씨는 남한에 와서 적극적으로 취업문을 두드렸고 노력한 결과 남부럽지 않은 살림을 꾸리고 있었다.
“지금은 지원금을 받지 않아요. 그런데도 탈북자가 정부지원금을 받으며 사치스럽게 산다고 말할까봐 두려웠어요. 그래서 처음에 간사님이 집에 오신다고 했을 때 조금 꺼렸던 거예요.”
만남이 반복되면서 박태순 씨는 차츰 이우순 간사를 친정엄마처럼 생각했다. 탈북 후 중국에서 남편을 만나 임신을 했는데 북송돼서 아이를 유산했고 응급처치도 못 받았던 박 씨는 두 번의 북송 끝에 한국에 왔고 시험관 아기 시술로 얻은 쌍둥이를 3일간의 진통 끝에 낳았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손 내밀 데도 없고 손 잡아준 사람도 없었죠. 그런데 이우순 간사님은 항상 저를 챙겨주시는 게 참 감사했어요. 새터민 2천 명 중 저 하나 쯤 빼먹어도 되는데, 늘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세요.”
박태순 씨는 함께 자리한 쌍둥이 아이들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어깨동무멘토링’에서 이우순 간사의 멘티였던 향심이도 지금은 엄마처럼 따른다. 향심이는 북한에서 겪었던 일, 탈북과 북송 과정, 그리고 남한에 와서 어엿한 대학생으로 자라기까지의 성장통을 이우순 간사에게 속시원하게 다 이야기했다. 차별받고 싶지 않아 북한에서 왔단 걸 밝히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대전 동구협의회 추천으로 올해 민주평통재단 장학생이 된 후부터 좀 더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하게 됐다.
축구를 하는 데다 생활비를 직접 버느라 향심이가 바빠서 멘토링 기간동안 자주는 만나지 못했지만 연말에 케이크를 직접 만들었던 음식나눔행사는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 진로나 취업을 두고도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반면 동근이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계속 동근이와의 만남을 늦추던 엄마, 그리고 밤 줍기 체험을 갔을 때 동근이가 밤을 잘 줍지 못하던 모습, 리조트 수영장에 데려갔을 때 수영복을 받고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고 여겨 물어보니 동근이는 실제 18살인데 지능지수가 7살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우순 간사는 천진난만한 동근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주변을 맴돌며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고 있다.
동근이는 또 다른 멘티인 춘심이와 함께 현재 하나센터에서 운영 중인 공부방에 다니고 있다. 며칠 전 미숫가루도 전달하고 화장실도 청소해주려고 다른 자문위원들과 같이 가서 만났다. 대전 동구협의회는 이 아이들 중 시간이 되는 학생들을 데리고 여름방학 멘토멘티 캠프도 다녀올 계획이라고 했다.
이우순 간사는 탈북민들에게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갖게 해주고 싶다. 아직은 받는 것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이 만약 남한 사람들에게 3개를 받았다면 그 증 1개는 나눠줄 줄 알아야 한다고 당부하곤 한다.
또한 남한의 아이들이 탈북민 친구들을 편견 없이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17기에는 남북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통일교육을 시키기 위해 교육감과 직접 만나 의논하고 자매결연도 맺을 계획이다. 새로 임명된 남진근 협의회장 역시 청소년 통일교육 위주로 사업을 펼쳐 나가겠다고 약속해 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고. 17기 간사로 이제 다시 출발하는 이우순 간사는 “물질적으로 충분하게 도움을 줄 형편은 아니지만 탈북민 아이들의 멘토링도 열심히 해서 남한 어린이들 마냥 밝게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