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미 ▶ 작년에 엄홍길 산악대장님과 DMZ를 걸었는데, 좋은 경험이긴 했지만 남한 학생에 비해 북한 출신 청년들의 숫자가 적어 아쉬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올해는 60명 중 거의 절반이 탈북학생이었죠. 남북한 청년들이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단 생각에서 참가하게 됐고 실제로 ‘통일’이란 주제를 놓고 다 같이 고민하고 의견을 공유한다는 게 좋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지역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드린 일과 여학생 대표로 태극기를 게양했을 때예요. 북한에선 인공기 한 번 만져본 적 없는데, 태극기를 제 손으로 게양해보니 뭔가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았어요.
최종부 ▶ 저는 ‘통일’을 위해서라기보다 이제 곧 서른이 된다는 생각에 국토종주를 해보고 싶었어요. 50년 동안 민간인에게 개방하지 않았던 두타연 코스가 있었는데 이곳을 자전거로 달렸을 때는 너무 푸르고 아름다워서 선글라스를 쓰기가 아까울 정도였어요. 또 처음 가 본 고성 통일전망대 길이 너무 넓고 깨끗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금강산 육로 관광길이래요. 그 길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웠어요.
이성일▶ DMZ종주 코스에서 2시간만 차로 달리면 고향에 갈 수 있는 거리여서 더 의미가 깊었던 것 같아요. ‘통일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각오를 되새기는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여학생들이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 웃음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따라와준 걸 보고 대단하단 생각도 들었어요. 통일로 가는 힘든 여정도 이처럼 참고 이겨낸다면 가까운 미래에 남북한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소현▶ 여군이 되고 싶어 3군사관학교 시험준비를 했다가 합격하지 못하고 낙담해 있던 중 군사과 교수이신 아빠와 친구의 권유로 참가했는데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프로그램도 좋았지만 북한에서 온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대화를 나눴던 게 가장 특별했어요.
올리비에▶ 스탭이긴 하지만 저도 30대 중반이니 좀 더 나이 들기 전에 종주를 해보고 싶었어요. 꼭 해보고 싶던 태극기 기수도 해봤고 자전거 타기, 군부대 텐트 숙박 등 재미있는 경험이 많았어요. 하지만 휴대폰 사용으로 어머니가 붙잡혀가셨다는 한 탈북학생의 이야기는 너무 슬펐어요. 그래서 북한의 인권탄압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통일 또한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죠.
최종부▶ 올리비에 형 이야기에 공감해요. 저도 북한인권에 관심이 많아서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1인 피켓 시위도 했어요. 북한인권에 대해서라면 올리비에 형이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아요.
올리비에▶ 저는 프랑스에서 학부 재학 중 TV에서 북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너무 놀랐어요. 꽃제비들의 실상이 참혹했고 김일성 동상을 봤을 땐 국가가 마치 종교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음날 도서관에 가서 찾아봤는데 북한 관련 책이 하나도 없는데다 북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겠다고 했더니 교수님들이 말리시더라고요. 그럴수록 더 몰입하게 됐고 직접 북한에 다녀와 논문을 써냈어요. 북한의 결혼식이나 제사, 무당 등 전통문화에 대해서 연구했죠. 논문은 높은 점수를 받았고 덕분에 좋은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저는 공부보다는 북한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2007년 한국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인턴십을 했어요. 동시에 토요일 마다 인사동에서 북한군인 옷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며 북송반대 시위도 했고요. 나중엔 취업비자가 없으면 안된다고 해서 대우건설에 취직해 4년 반 동안 근무하기도 했답니다.
최종부▶ 통일발걸음 행사에서 탈북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끼는 게 많았어요. 기존 상식과 너무 다르단 생각을 했고 통일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영미, 이성일 학생에게) 그런데 남한사회에 와서 적응하기가 쉽진 않았죠?
오영미▶ 2009년 당시에는 탈북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만은 않아서 상처를 받다보니 중학교를 대안학교로 진학하고 싶었어요. 북한에선 공부도 잘했고 자신감도 높았는데 남한에 와서 자존감도 낮아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대안학교에 진학하진 않았어요. 또 다른 작은 북한사회, 김정은이 없는 북한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발표를 잘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기억이 나요.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딱 1번만 손들면 돼’라고 자꾸 스스로를 다독이다 보니 이젠 어디 가서 손들고 발표하는 게 버릇이 됐어요. 적극적으로 바뀐 성격 덕분에 대학에 입학해서도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알고 지내고 있고, 특히 남북한청년들로 구성된 봉사단을 통해 외로운 어르신들을 돕거나 말벗이 되어드리는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어요.
이성일▶ 처음 인천공항에 왔을 때 가로등이 쫙 켜져 있는 걸 보고, 자동차에 라이트가 있는데 왜 가로등 켜놓았을까, 이 전력들을 북한에 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했어요.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자동차학과에 입학했다가 중공업 회사에서 연수를 받은 뒤 학교로 돌아와 졸업했지만 남한으로 오기 위해 이미 너무 많은 돈을 썼기 때문에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이 커졌고 떡볶이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다 폐업했어요. 이후 제철소에서 근무하면서 군고구마 장사도 했고 전산회계를 자격증을 취득해 사무직으로 근무도 했는데, 현장에서 근무하다보니 학업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되어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올리비에▶ 북한 정권 때문에 통일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통일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데이터 등을 갖고 준비를 해야 해요. 이 순간에도 인권침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요.
이성일▶ 북한 주민들의 생각이 잘 안 바뀌는 이유는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교육을 받다보니 생각을 전환하기 어려워서입니다. 영화 '트루먼 쇼'와 같이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곳이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 정권이 이야기하는 것을 주민들은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거죠. 따라서 북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 나쁜 게 아니다, 정권의 문제다’라고 구분해서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오영미▶ 북한 사람은 남한이 나쁘다고 이야기 안 해요. 총 쏘는 게임을 해도 그 타겟이 남한사람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남한 사람은 불쌍하니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갑자기 남한의 도움을 받으라고 하면 혼란이 올 거예요.
이소현▶ 차인표 주연의 ‘크로싱’이란 영화를 보면 북한이탈주민이 대한민국 땅을 밟았을 때의 충격이 잘 나타나 있어요. 남한이 잘 못사는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책이나 영상 등을 많이 접하게 해서 우리나라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소현▶ 저희가 지도를 그릴 때 그 안에 철책선을 그린다든가 남한 모양만 따로 그리진 안잖아요. 태극기도 빨간색, 파란색만 그리는 게 아닌 것처럼요. 즉 우린 그냥 하나인 거예요. 게다가 통일이 되면 남북한의 장점이 시너지효과를 일으켜 더욱 경쟁력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배웠는데, 통일이 돼서 발전될 수 있다면 당연히 통일을 외쳐야죠.
최종부▶ 대한민국이 진정한 광복을 맞으려면 통일이 되어야 해요. 통일을 이뤄서 남북이 하나 된 통일한국을 기대해 봅니다.
오영미▶ 북한에 있을 때 소련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다보니 거길 한 번 가보고 싶어요. 경제적, 사회적으론 잘 몰라도 청년 스스로 내가 해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통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성일▶ 남한에서 기술을 배운 뒤 나중에 북한에 가면 통일차를 만들겠단 꿈을 갖고 있었어요. 처음 남한에 와서 자동차학과를 전공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지금 경영학과를 다니고 있지만 졸업하면 반드시 자동차회사에 취업하고 싶어요.
최종부▶ 제 꿈은 시장경제나 자유주의에 대해 연구하고 강연하는 사람이 되는 건데 안보교육도 같이 하고 싶어요. 남한에 와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민들에게도 알기 쉽게 강의해주고 통일이 된 이후엔 북한에 가서도 이런 활동을 하고 싶어요.
올리비에▶ 저는 원래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려 했으니 통일 되면 북한에 가서 전통문화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조사하고 이를 잘 보존해주고 싶어요. 전통문화는 남한과 공통분모잖아요. 통일 이후 통합이 성공하려면 이와 같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전통문화를 발굴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영미▶ 남과 북이 통일을 이룬다면 가장 필요한 게 법과 제도일 것 같은데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회계나 세금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요. 또한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 통일 공감대 확산을 위해 노력하려고 해요. 이번 통일발걸음을 마치고 그런 생각이 더 커졌어요. 저희 팀원 하나가 탈북민인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제 편이 되어주겠다고 했어요. 그 이야길 들으면서 나와 공감하는 사람이 또 한 명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했죠. 안보교육도 좋지만 통일발걸음 같은 프로그램 참여 기회가 늘어나 제3의 영미, 제4의 영미가 많아지면 통일이 더 빨리 이뤄질 거라 생각해요.
<글/사진.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