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집권 하반기 구상과 함께 의미 있는 대북, 대일 메시지를 천명했다. 북한과 일본에 대해 경축사 곳곳에서 “미래”와 “관계 개선”을 강조함으로써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의지를 피력했다는 점에서 대통령 경축사는 향후 우리정부의 진로를 시사한다고 하겠다. 통일외교에 관련된 박 대통령의 경축사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일본에 대해서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는 표현으로 아쉬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
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목은 아베 총리의 담화에 대해 감정을 자제하면서도 미래지향적 관계개선의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북한에 대해서는 “확고한 원칙과 유연한 대응으로 통일시대의 문을 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대화·협력은 지속하겠다는 ‘투 트랙 기조’를 재확인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서도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는 동시에 미래의 관계개선 비전을 내세웠다. 최근 발생한 북한의 지뢰 도발에 대한 비판은 최소한으로 언급하면서 남북 화해협력과 통일 비전 등은 비교적 상세히 언급했다. 특히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해선 “우리는 6만여 명의 남한 이산가족 명단을 북한 측에 전달할 것”이라고 한 뒤 “북한도 동참해 남북 이산가족 명단 교환을 연내에 실현할 수 있기 바란다”고 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대화에 응하지 않는 김정은 체제를 포기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대화와 협력의 장으로 끌고 가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이자 의지”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미래지향적 대북·대일 관계를 강조한 데 대해 경축사 작성에 관여한 한 핵심 참모는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이 지남에 따라 남은 시간 동안 대북·대일 관계를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해진 것 같다”고도 말했다.
예상했던대로 아베 수상의 담화는 마음이 담기지 않은 진정성 없는 담화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식민제국주의로 나갔다는 내용을 ‘과거형’ 사과로 제3인칭 시점에서 담담하게 서술하면서 다양한 반성, 사죄 표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생략했다. 또한 과거 담화의 의미를 희석하는 장황하고 복잡한 논리와 애매, 불명확한 화법으로 담화의 의미를 축소시켰다. 일본 정부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2005년 고이즈미 담화를 통해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명확하게 표명했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의 표현을 가져다 쓰면서도 교묘한 방식으로 진정성 있는 사죄를 피하려고 한 흔적이 담화 곳곳에서 드러났다.
담화 이후 미국 정부는 환영 입장과 긍정적 평가를 내놓은 반면, 한국과 중국은 정부 차원의 비판은 신중히 절제하는 가운데 향후 일본의 구체적인 행동 및 실천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우리 정부는 앞으로도 정부는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 분명하게 대응하되, 북핵·경제·사회문화 등 호혜적 분야에서의 협력과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역내 협력은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간다는 기조를 견지해 나갈 것임을 밝혀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취했다.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다. 8월 16일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그 무슨 ‘8.15 경축사’라는 데서 우리를 악랄하게 걸고드는 악담을 늘어놓아 만 사람의 경악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며, 우리 정부와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그러면서 “북남관계를 극단적인 지경에로 몰아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지금 비무장지대 ‘평화공원’ 조성이니, 철도와 도로 연결이니, ‘이산가족상봉’이니 하는 것을 들고 나온 것은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기만의 극치”라고 주장했다.
해방 70년을 맞는 한국은 과거 2차대전 종전, 해방, 6.25전쟁, 세계 최빈국 시절을 거쳐 OECD DAC (경제협력개발기구 산하 개발원조위원회로 개도국을 돕는 선진국 원조국가들의 모임. 한국은 2009년 24번째 회원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회원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온갖 역경 속에서도 우리의 국체와 자긍심을 지켜왔다. 국민적 단결을 통해 국난을 극복하는 한민족의 특성이 오늘의 한국을 만든 밑거름이다. 그러한 성취에 대한 국민적 자긍심을 평가하고 향후에도 국가적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기대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동안 숨가쁘게 달려왔던 한국의 국가발전 여정을 되돌아보고 성장 일변도로 달려왔던 상황에서 이제는 한국이 모든 면에서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제2의 건국, 새로운 한국 건설에 매진할 때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는 박근혜 정부에게 커다란 도전으로 남아 있다. 향후 북한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결단을 촉구하는 동시에 우리의 포용적 자세도 제시해야 한다. 한반도가 당면한 앞으로의 70년 속에는 통일도 포함돼 있다. 남북한은 대결의 상대가 아니라 통일한국을 함께 건설해가는 동반자라는 메시지를 발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방향으로 가려면 남북관계의 정상화가 시급한 바, 북한은 더 이상 고립과 위기조성 전략에 머물지 말고 국제사회의 무대로 나와야 한다. 통일은 남과 북이 함께 이뤄가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천명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비전에 이제는 평양이 화답할 차례다. 분단 70년이 단절과 대결을 극복하는 진정한 해방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진제공 : 청와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