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통일 | 투데이남북
한국은 게임열풍,
북한의 게임문화는 어디까지 왔을까?
▲ 김정은 위원장이 능라인민유원지 유희장에 있는 전자 오락관을 돌고 있다
“얘, 여기 와보니까 사람들 전부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아?”, “그래 나도 방금 그 생각을 했어, 정말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이 북한에 비하면 ‘게임중독’이라고 말할 정도인 것 같아” 지하철을 타고 가는 말투가 투박한 두 여성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옆에 앉아 있는 나에게까지 들렸다. 용기를 내 그들에게 인사를 한 후 북한의 컴퓨터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민족문화 유산인 고전소설이나 역사적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들을 활용한 북한의 게임 산업을 파헤쳐본다.
역사, 고전소설 소재로 한 북한 게임소프트웨어
최근 북한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들에서는 전자 오락관이 성행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청년학생들이 게임과 전자오락에 푹 빠져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언젠가 북한 내부 주민이 전한 소식에서도 부유층 자녀들 속에서 DVD 및 컴퓨터 내장용 게임이 크게 유행하면서 하루 종일 게임에만 몰두하는 중독 증세까지 보이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말 컴퓨터 보급과 함께 게임소프트웨어가 등장했다. 주로 역사나 고전소설을 소재로 한 게임들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으로는 ‘조선협객전’과 ‘삼국통일:대륙을 꿈꾸며’가 있다. ‘조선협객전’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왜란이 일어난 원인을 찾아 없애는 MUG(Multi User Graphic)방식의 게임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 정벌을 명분으로 조선을 침범하려고 하자 조선 협격들이 검사, 궁사, 승려, 도사 등과 힘을 키워 싸워나간다는 내용이다.
▲ 북한 스마트폰 151에는 게임 프로그램들인 주패놀이, 현대탱크전, 탁구배우기, 조선장기 등
20여 가지의 게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삼국통일: 대륙을 꿈구며’는 배틀 서버를 활용한 인터넷 멀티플레이 게임이다. 삼국시대가 배경인데, 게임 옵션으로 사투리를 지정할 수 있고 처용, 도깨비, 청룡, 주작, 현무 등의 유닛을 설정할 수 있다. 게임을 하는 본인의 취향이나 성격에 맞춰 자신들이 좋아하는 언어를 선택하고 설정된 양을 자유롭게 재설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북한 게임마니아들이 시간을 쪼개가면서 게임에 빠져들게 되는 것 아닐까싶다.
고전적인 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고객들의 심리를 파악, 고전소석을 소재로 한 게임도 내놨다. 바로 ‘홍길동전’인데, 이 게임은 최초의 IBM PC 소프트웨어 기반의 게임으로 한글 대화가 이뤄졌으며 1998년에는 업그레이드 된 버전이 출시됐다. 홍길동과 탐관오리에 의해 부모를 잃고 불량배가 된 차돌바위가 의형제를 맺고, 금강산 곱단이와 사악한 마법사 골반도사와 대결하는 내용이다. 이 버전에서는 홍길동이 좌우로 움직이고 앉거나 점프하며 칼이나 표창(鏢槍), 장풍 등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겨울방학 핫 아이템, ‘오락팔’ 연결한 DVD게임
북한의 게임 산업은 최근 스마트 폰의 확산으로 더 활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 공업도시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방학을 며칠 앞두고 일부 학부모들 속에서는 ‘여름 같으면 강이나 산에 놀러가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겠지만 겨울방학은 집에 있는 날이 많아서 게임과 씨름할 것이 빤하다’는 걱정 한 가지가 더 늘게 생겼다”며 “이번 겨울방학에도 아이들 방학숙제 해주게 생겼다”고 말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지 북한 주민들의 주장에 따르면 평소에는 한두 시간 게임을 하던 아이들이 방학이 시작되면 게임에 몰두하는 시간이 크게 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두뇌 발달에 좋다는 말만 믿고 게임 충전용 배터리까지 구입해 줬던 일부 부모들은 이제 와서 후회가 막심하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 북한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게임은 과거 소형 오락기용이 아니라고 한다. 최근 DVD 재생기나 노트북에 게임 프로그램이 담긴 DVD를 넣고 오락팔(조이스틱)을 연결해 즐기는 전투형 게임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전투형 게임은 주로 중국에서 수입되는데 ‘탱크 전쟁, 로봇 총쏘기, 비행기 쏴 떨구기, 말 따라잡기’ 등이다.
컴퓨터로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북한 게임마니아들은 어디서 무엇으로 게임을 할까? 한국의 곳곳에는 PC방이 있고 대부분 개인 가정에는 외국영화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DVD 재생기가 있기 때문에, 소위 오락팔과 게임 프로그램용 DVD 구입하면 게임을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전력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는데 지금은 태양열광판의 덕으로 전기에 대한 걱정은 어느 정도 가셔진 셈이어서 게임기 사용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말이다.
당 간부, 신흥 부유층 자제들의 게임중독 현상
▲ 북한 아리랑 151에 기재되어 있는 여러 스포츠게임
이렇게 게임기와 충전용 배터리까지 보유한 청소년은 일반 학생들에게 우상이나 다름없다. 주로 당 간부와 신흥 부유층 자제들은 노트북을 이용해 게임을 하면서 또래의 부러움을 사지만, DVD 재생기도 없어 게임에 접근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이러한 유행에서 소외되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데도 아이들의 게임 프로그램 구입 성화에 형편이 어려운 가정들도 적잖게 곤란한 입장이라고 한다.
양강도 혜산 주민은 “국수를 팔거나 감자떡을 해서 시장에 내다파는 장사꾼들도 자녀들이 따돌림 당할까 전전긍긍하면서 푼돈을 모아 녹화기와 게임이 들어있는 DVD를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런 게임 열풍은 아이들의 생활문화를 완전히 바꿔놨다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말이다.
이와 관련 국경지역 거주 한 주민은 “아이들이 게임을 하느라 밥도 제때 먹지 못하는 때가 많고 어쩌다 제 시간에 먹는다고 해도 녹화기 앞에서 게임을 하면서 먹는다, 게임에 너무 빠져들어 숙제도 내팽개친 아이들이 있어 부모가 대신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게임에 빠져들고 있는 모습은 한국의 젊은 층들의 모습을 방불케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북한 전역에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유입되기 시작했고 일부 영화 드라마들에서 게임과 관련한 장면들이 입소문을 타고 주민들 속에 퍼지게 되면서 중국을 통해 게임기가 유행하게 됐다는 것, 이렇듯 북한에서 청소년들의 유행이 한류에 이어 게임까지 우리 청소년들과 매우 흡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류 영화나 드라마 시청은 부모와 자식이 함께하는 취미활동이었지만 게임은 청소년들의 전유물이라 가족 간 단절이나 갈등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최근에는 북한에서도 중국 범죄영화를 모방한 폭력사건까지 발생하고 있어 이러한 게임 중독이 북한 청소년의 폭력성을 증가시킬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 북한 평양시내의 전자오락 시설, 전자총으로 사격을 할 수 있는 시설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2012년 처음으로 PC게임 ‘평양레이서’를 자체 제작했다. 이 게임은 북한 전문 여행사인 고려투어와 IT아웃소싱 전문회사 노소텍이 제작한 레이싱 게임이다. 최근에는 핸드폰에 게임이 탑재돼 청소년들이 부모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경우도 많다. 북한 스마트 폰 아리랑 151에는 ‘자동차경주, 바둑수풀이, 실매듭풀기, 달 따라잡기, 새맞히기, 조선장기, 어린 원숭이의 모험, 오토바이 경주’등 다양한 스포츠 게임 프로그램도 내장되어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서는 능라인민유원지 전자오락관에서 전자게임을 즐기는 어린이들과 성인들의 모습을 이따금씩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말처럼 유일하게 정치성을 띠지 않는 것이 게임프로그램이라면 아이들이나 성인들도 편한 마음으로 잠시의 여유를 만끽하면서 게임에 열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자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