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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감 | 좌충우돌 남한 적응기

연예인 사인은 돈 받고 파는 건가요?

무더위와 함께 찾아온 기말고사 시험. 탈북 대학생들은 익숙지 않은 전공용어, 낯선 분위기 속에서도 학점관리를 위해 여느 남한 학생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2008년 말 남한으로 와서 현재 법학과에 진학 중인 영아는 얼마 전 치른 기말고사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며 미소를 한가득 머금는다. 초등학교 검정고시에서부터 시작, 아르바이트는 물론 엄마의 병간호까지 혼자 도맡아 하면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 만큼은 그 어떤 청년보다 강한 
스물네 살 영아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풀어본다.

연예인 사인을 팔면 뭘로 팔면 바꿔서 먹을 수 있나?

영아는 열일곱 살에 무연고로 남한에 왔다. 항상 웃는 얼굴에 밝고 씩씩한 영아에게 주변에서는 공부를 시작할 것을 권했지만 영아는 ‘무조건 돈부터 벌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엄마와 탈북했다가 혼자 남한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엄마를 모셔 오기 위한 돈이 필요했던 것. 무연고 탈북청소년을 돌보는 한 시설의 수녀님은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며 영아에게 아르바이트를 주선해 줬다.

일러스트 이미지그렇게 시작된 식당 알바. 영아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은 방송국 근처 연예인들이 자주 들르는 음식점이었는데, 연예인이 올 때마다 함께 일하는 직원이 ‘가서 사인을 받으라’며 영아의 등을 콕콕 찔렀다. 하지만 ‘연예인’이 뭔지도 몰랐던 영아는 유명한 남자 가수이자 탤런트인 L씨가 매장에 들어섰을 때 동료 직원에게 물었다.
“사인을 받아서 뭐해요? 그거 팔 수 있는 건가요?”
“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아. 유명한 사람이니까 사인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냐?”
궁금한 것 투성이였지만 결국 등 떠밀려서 사인을 받으러 간 영아. 가수 L씨는 둘 간의 대화를 들었는지 그녀가 내민 종이를 받아들며 말했다.
“설마 저를 못 알아봤어요? 일부러 그런 거죠? 그렇죠?”

일러스트 이미지 당황한 영아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 ‘연예인’, ‘탤런트’란 단어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찾아보긴 했지만, 그래도 연예인이란 게 묘기나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정치도 하고 사업도 하고 다방면으로 잘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에선 배우나 가수들의 인기가 그 정도까진 아니거든요. 사인은 파는 게 아니라고들 했지만, 말은 저렇게 해도 사인을 가져가면 팔 수도 있고 그걸로 뭘 바꿔서 먹을 수도 있나보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영아는 당시 숙식을 제공하던 시설의 수녀님에게 물었다.
“솔직히 얘기해 주세요. 그거(사인) 파는 거 맞죠?”
그러자 수녀님은 한참을 큰 소리로 웃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파는 게 아니라 간직하는 거지. 너도 곧 좋아하는 연예인도 생기고 남들과 똑같아질 테니 걱정 마. 넌 하나도 안 이상해.”

수녀님 말씀처럼, 영아는 얼마 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여 가수 P씨를 보자마자 ‘아 연예인!’ 하며 금방 알아봤고, 사인을 받으러 쪼르르~ 달려가기도 했단다. ‘저거 뭐 값어치 있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거 보면, 이젠 확실히 남한 문화에 적응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 가지 더, 영아는 친구들이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누구와 누가 예전에 드라마를 찍다가 서로 사귀었고 이젠 헤어졌다든가, 어디 어디를 성형했다는 소문들을 듣게 돼요. 전 정말 신기했거든요. 그걸 어떻게 알았지? 친구들이 그 연예인이랑 개인적으로 아나?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오픈북’으로 시험 보는 건 부정행위?

북한에서 거의 공부를 해본 적이 없던 영아는 엄마가 남한에 도착하자, 초등학교 과정부터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늦깎이 어르신들과 함께 공부를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남한 사람들이 70~80년대에는 어떻게 살았고, 요즘에는 어떻게 사는지 일상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시기도 했고, 어르신들끼리 대화하는 내용도 자주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남한적응 공부였던 것 같아요.”

일러스트 이미지영아는 이후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법학과에 진학했고 비교적 높은 학점을 유지하고 있다. 탈북학생은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한다 해도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졸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논술방식으로만 시험을 치는 학과에서 영아가 이처럼 높은 학점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영아가 들려준 ‘오픈북’ 사건은 경쟁사회에 금세 적응한 영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탈북민에 대한 우리의 배려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2학년 기말고사 시험장. 영아는 교수님 강의를 녹음해 수차례 반복해서 듣고, 책을 달달 외워 시험장에 나왔다. 하지만 몇몇 문제는 아무리 애써도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앉은 학생이 교재를 턱-하니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시험을 치르는 게 아닌가. “책을 들이대고(?) 보는 건 부정행위잖아요.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갔죠. ‘저는 열심히 외워도 이것 밖에 못써서 제출했는데, 옆 학생이 교재를 보는 건 부정행위라고 생각합니다’라고요.”

그런데 영아의 말에 교수님은 오히려 ‘오픈북이라고 한 말을 못 들었나? 중간고사도 책 없이 본 건가?’ 하고 물으셨다. 고개를 끄덕이는 영아를 보고 교수님은 무척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어디서 왔냐고, 외국인이냐고 물으시기에 북한에서 왔다고 했더니, 탈북학생은 처음 보신대요. ‘교재를 봐도 좋습니다’라고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남한 사람에게는 오픈북이라는 말이 익숙해 있다 보니까 미처 생각을 못했다고 하시면서, 앞으로는 참고하겠다고 얘기해 주셨어요.”

일러스트 이미지다행히도 영아는 교수님의 배려로 시험을 다시 치렀고 A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영아는 자신이 일러바친 학생의 시선도 좋지 않은 것 같고,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지만 적극적인 태도 덕분에 남북 간 언어 차이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아도 됐다.

영아가 학점관리를 잘한 건 그녀만의 특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밤새도록 컴퓨터로 과제물을 하다가 저장하지 않아 싹 날려 먹기도 했고, 모두 주관식인 법대 전공시험공부를 준비하기 위해 혼자 화장실에서 미친 사람처럼 중얼대며 공부한 적도 있다. 많은 내용을 빨리 암기하기 위해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다. “수업 전후에 제가 친구들에게 좀 황당한 걸 질문하곤 하는데, 친구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면 ‘난 북한에서 와서 잘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해요. 그러면 친구들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일단 사정을 알고 나면 친절하게 잘 알려주더라고요. 사실 리포트 하나만 해도 남들 1~2시간이면 쓰는 걸, 저는 7~8시간 써도 원하는 만큼 안 나와요.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한답니다.”

<글.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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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례에서 소개된 북한의 문화는 북한이탈주민 개인의 경험에 의한 것으로 현재 북한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역과 탈북 연도를 참조해주세요. <나의 살던 고향은>은 북한이탈주민에게 듣는 내고향 이야기입니다.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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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전체 기사 보기 기사발행 : 2016-07-15 /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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