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아래’는 진미라는 8살 아이가 조선소년단에 가입해 ‘태양절’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예요. 오랫동안 유럽 독립영화를 수입배급해 오다 보니, 좋은 영화가 있으면 항상 먼저 보내주는데, 1년 전 독일에서 보내온 영화가 바로 ‘태양 아래’였어요. 처음 영화를 봤을 때 큰 충격을 받았고 겁도 좀 났어요. 그 전에도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는 여러 편 있었지만, 이 영화만큼 평양 시내를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준 영화는 없었거든요. 북한이 단순히 ‘헐벗고 굶주린 곳’이 아니라, 철저하게 통제되고 감시받는 거대한 세트장 같다는 느낌을 주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봐야 할 의미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러시아와 북한의 요청으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들어갔는데, 막상 가보니 북한 당국이 모든 시나리오를 각색하고 왜곡하며 검열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왜곡된 모습, 그 이면을 보여주는 쪽으로 제작방향을 선회했어요. 고발다큐멘터리로 바뀐 거죠. 북한 당국이 최신 디지털 메커니즘을 잘 몰랐기 때문에 의도한 장면을 몰래 촬영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었죠. 무섭고 불안했을 겁니다. 그래서 혹시나 들이닥칠까 봐, 항상 문을 소파로 막아놓고 잤다고 해요. 어떻게 영상을 북한 밖으로 반출했는지는 절대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촬영팀을 도왔던 내부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인 듯해요.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진미의 눈물을 이야기해요. 저도 클로즈업된 화면에서 진미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꼈어요. ‘울지 말고 대신 좋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말에 ‘잘 모른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아는 시를 외워보라’고 하니까 소년단 가입 선서를 기계적으로 외우는 장면에선 서늘한 공포심마저 일더라고요. 훈장을 주렁주렁 단 노병이 초등학교에서 ‘놈’이라는 말을 써 가며 사상교육을 하는 장면도 충격이었고요. 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말처럼 ‘현재의 삶 외에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하고, 평생 그런 자유를 가져본 적도 없는 이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보는 건, 백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에 대한 해외영화제의 반응은 매우 좋아요. 빌뉴스 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 지라바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심사위원상, 최고상 등을 수상했고 이달부터는 미국에서 상업영화로도 개봉해, 미국과 캐나다 15~30개 도시에서 상영될 예정이예요. 러시아를 제외한 동유럽권 역시 많은 나라들의 국민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됐고요.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바로 해외 여론이에요. 이번 노동당대회에서 주인공 진미를 ‘화동’으로 불러 세운 것도 이런 해외 여론이 두려웠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가 세계인들에게 많이 소개될수록 진미와 그 가족들은 더욱 안전해질 수 있어요.
현재 태양 아래 국내 관객수는 3만2천 명 정도로, 다큐멘터리 장르치고 나쁜 성적은 아니에요. 히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UN 대북제재 등 이슈가 많은 상황에서 언론에 영화가 자주 오르내렸는데도, 정작 극장에서는 상영관을 내주지 않다 보니 시사 프로그램을 즐겨보시는 분들 외에는 이 영화를 잘 모르시더라고요. 아주 잘 알거나 전혀 모르거나 둘 중 하나인 거죠. 공포물이나 성인영화도 아닌데 심야와 이른 아침, 두 타임에 영화를 걸면 어떻게 청소년들이 볼 수 있겠어요?
장르가 장르이니만큼 흥행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의식 있는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북한과 통일에 관심이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의 손을 이끌어 극장에 데리고 와주길 바랐죠. 영화계 사람들은 IP TV를 통해 공급하거나 DVD로 출시하면 어느 정도 큰 수익은 남길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저는 극장상영을 계속 고집하고 있어요. 마지막 클로즈업 화면인 진미의 눈물은 큰 스크린에서 봐야 그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 영화를 일반국민, 특히 학생들이 꼭 보길 바래요. 얼마 전 충북 음성의 한 중학교 선생님이 이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예산이 없다고 하기에 무료로 보여드린 적이 있어요. 나중에 선생님에게 메일이 왔더라고요.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학생들이 북한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고요.
개봉한 지 한 달 보름가량 됐는데도 주목도 대비 관객수가 많지 않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의미는 있지만 어렵고 재미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단점들을 보완해 해설판을 제작했어요. 통일MC 김희영 씨가 내레이션을 입혔는데 지루한 느낌이 사라지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예를 들어 영화 말미에 나오는 ‘발걸음’이라는 노래는 왜 만들어졌으며, 왜 아이들이 불러야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죠. 국내 거주 외국인들도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 영어 자막판도 상영할 계획입니다.
가끔 어떻게 해야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까 묻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영화 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자신이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큰 행운인지, 왜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영화가 말해주거든요. 딱딱한 교육보다는 영화와 같은 문화매개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통일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문화는 힘이 세니까요. 제2, 제3의 진미가 눈물 속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더욱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글.사진 /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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