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속도’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50년대 ‘천리마 운동’ 시기이다. 북한은 1956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는 구호를 제시하고 빠른 속도와 높은 질을 담보하는 ‘천리마 운동’과 함께 ‘천리마 속도’를 제시하였다. 이후 ‘속도’를 통한 노력경쟁운동은 1950년대 6.25 전쟁 이후 평양시 복구건설 과정에서 등장한 ‘평양 속도’를 거쳐, 1960년대에는 흥남 비날론 공장의 ‘비날론 속도’와 강선제강소의 ‘강선 속도’로 나타났다.
그리고 1970년대의 김책제철소에서 시작된 ‘충성의 속도’와 ‘70일 전투 속도’를 거쳐, 1980~1990년대에는 ‘80년대 속도’, ‘90년대 속도’로 나타났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속도’의 강조는 지속되었으며, 김정일 시대 희천발전소의 ‘희천 속도’와 함께 최근 김정은 시대 마식령 스키장의 ‘마식령 속도’와 수산사업소 건설 경험을 토대로 한 ‘조선 속도’에 이르기까지 ‘속도’가 북한의 경제발전을 지배해 왔다.
‘천리마 속도’에서 ‘마식령 속도’에 이르기까지 ‘○○ 속도’가 ‘속도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속도’는 어느 한 생산부문에서의 높은 성과를 모범으로 삼아 이를 전 사회에 전파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속도전은 이러한 모범사례 전파를 넘어 전 사회의 작동원리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하며, 어느 한 분야만이 아니라 북한 전 사회의 모든 사업에서 이루어지는 사업방식을 의미한다.
북한에서 ‘속도전’은 김정일에 의해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1970년 김정일의 지도아래 혁명가극 ‘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1년은 족히 걸릴 작업을 40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했다면서 이를 속도전의 효시이자 본보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속도전’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4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이다. 이 회의에서 김일성은 6개년계획(1971∼1976년)을 당 창건 30주년(1975. 10. 10)까지 조기완수할 것을 촉구하면서 “당조직들은 대중의 지혜와 창조적 열의를 적극 발양시켜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속도전을 힘 있게 벌여 대진군 운동의 전진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북한의 속도전은 1974년 공식적으로 등장하였으며, 이후 시작된 ‘70일 전투’와 함께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다.
북한은 당시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10대 전망목표’를 제시하였으나 성과가 없자, 1974년 10월에 ‘70일 전투’를 실시했고, 이후 제2차 7개년 계획(1978~1984년)이 시작된 1978년, 그 해의 목표를 앞당겨 달성하자며 ‘100일 전투’를 전개하였다. 1980년대 북한의 속도전은 제6차 당 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100일 전투’로 나타났다. 그 이후 1988년 2월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위한 건설기간 단축을 위해 ‘200일 전투’가 시작되었으며, 제1차 200일 전투가 끝난 직후인 1988년 9월 ‘제2차 200일 전투’가 진행되었다.
1990년대 북한의 속도전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1998년 ‘200일 전투’를 통해 지속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05년 당 창건 60돌을 준비하기 위한 ‘100일 전투’에 이어, 2009년 ‘강성대국건설의 역사적 분수령’을 이루기 위한 ‘150일 전투’, 그리고 연이어 ‘100일 전투’를 전개하였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도 북한의 속도전은 지속되고 있으며, 최근 36년 만에 개최되는 7차 당대회를 앞두고 성과 창출을 위한 ‘70일 전투’가 전개되고 있다.
북한에서 ‘속도전’은 일상화된 용어지만 당국에게는 ‘경제성과’를 주민들에게는 ‘고통’을 의미하는 상반된 의미로 사용된다. 북한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전을 통해 기적과 같은 놀라운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자재와 장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속도’의 강조는 필연적으로 ‘부실’과 ‘인명피해’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속도전의 부작용들이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부실공사로는 2014년 5월 붕괴된 평양 23층 고층아파트와 최룡해의 낙마를 가져온 백두산발전소 부실공사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북한판 타워팰리스’라 불리는 미래과학자거리 53층 아파트 역시 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급하게 완성되어 부실공사가 염려되고 있다.
속도전은 또한 주민들의 지나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기술, 장비, 물자의 부족을 노동시장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로 대체하는 방식이기에, 최근 열악한 작업환경과 무리한 속도전으로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인간다리’까지 등장시키며 주민들의 동원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당국이 자랑하고 있는 ‘마식령 속도’를 ‘탄식령 속도’라고 부르면서 속도전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속도전은 향후 북한 경제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속도전은 생산자원을 특정부문에 집중해 단기적으로 생산량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다 보니 건설과 경공업, 그리고 농축산에 자원이 집중되고 있으며, 장기적인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제조업과 인프라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마도 속도전은 북한 경제의 어두운 이면을 가리는 전시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북한 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바이러스로 작용할 것이다.
<사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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