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광복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올해를 ‘통일의 원년’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통일준비의 구심체를 자부해온 민주평통이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팔을 걷어부친 것이다. 이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란 민주평통의 소명의식에 국민 모두의 염원이 어우러진 결과라 볼 수 있다. 또 보다 많은 국민이 참여하고 활동하는 통일준비의 실질적인 추진 조직으로서 민주평통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민주평통 의장인 박근혜 대통령 뿐 아니라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가 통일한국에 대해 그 어느 때 보다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뒷심을 더해가고 있는 상황도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2015년을 통일원년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 어느 때 보다 강한 의지와 실천력이 요구된다. 또 국민여론이 적극 반영된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청사진과 실천계획이 제시돼야 효율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거대담론보다는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어젠다의 제시다. 그 동안의 통일논의나 준비는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개괄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다보니 정작 남북통일 과정에서 맞닥뜨릴 여러 문제에 대한 연구나 해법은 미흡했다. 이젠 통일을 위해서는 정말 꼼꼼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할 국민공감형 로드맵이 요구된다. 예를 들면 서로 다른 통신체계와 기기를 쓰는 남북한 핸드폰은 어떻게 통하게 할 수 있고, 컴퓨터·핸드폰 자판은 통합을 어찌할지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둘째, 구호나 말보다는 행동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야 한다. 중장기적인 구상이나 대책 없이 일회성 이벤트나 캠페인에 머무는 통일준비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손에 잡히는 통일준비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셋째, 남북관계나 대북문제를 둘러싼 남남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의 마련이 요구된다. 남북 간 화해와 교류협력이 지속가능한 상황으로 이어지려면 우리 사회 내부에서의 화합과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 주도의 통일노력에 대해 수세적으로 방어하면서, 대남 선전선동을 통해 남남갈등을 꾀하는 상황에서 이런 노력은 더욱 절실하다.
통일원년을 위한 구체적인 과제도 꼼꼼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 사회의 통일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공감대를 확산시키려는 노력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남북 통일의 당위성을 넘어선 실질적 편익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는 측면에서다. 사실 탈냉전 이후 통일이란 용어는 높은 비용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부정적 이미지로 잘못 받아들여졌다. 그러다보니 통일준비에 대한 무관심이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다음으로는 통일 미래세대라 할 수 있는 청소년·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통일교육과 다양한 관련 체험활동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세대 간 통일인식의 격차를 줄여나가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통일문제와 관련한 세대 간의 이념과 가치관 격차를 줄여나가고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청년층과 노장년층이 어우러질 세대공감 통일교육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도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파와 이념·세대 등을 뛰어넘는 국민통합의 징검다리 역할을 자부해온 민주평통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구상 기자회견에서 “70년 전, 우리 민족 모두는 하나된 마음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고, 함께 광복을 맞이했다”며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통일의 길로 나가자고 제안했다. 진정한 광복은 분단의 종식에 있다는 취지로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올해를 통일한국 원년으로 삼아 구체적인 채비를 해나가야 하겠다는 민주평통의 구상도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처럼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마음 속에 통일준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분단 70년은 우리 민족에게 많은 고통과 비용을 강요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국민 염원에도 불구하고 통일실현은 요원한 듯 보였고, 일각에서는 자칫 분단이 고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나 시장경제의 도입을 곧 체제붕괴로 인식하고 있는 북한 김정은 체제와 통일문제를 논의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 것도 사실이다. 특히 남북관계에서 대치국면이 장기화 되고 북한의 도발과 위협이 이어질 때면 ‘정말 통일이 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통일과정에서 국가지도자의 각별한 리더십과 국민들의 성원이 핵심요소라는 점은 독일통일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폰 바이체커 독일 대통령은 동서독 시절 분단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門)을 거론하며 “브란덴부르크문이 닫혀 있는 한 독일문제는 열린 채로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열정과 통일에 대한 집념은 독일통일의 토대가 됐다. 분단 70년, 광복 70년을 맞은 올해를 통일원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곱씹어볼만한 말이다.
<사진. 청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