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만나다│길위의 풍경

가을이 내려앉은 바다와 섬 습지와 갈대 그리고 한 줌의 햇살 경기도 대부도, 안산갈대습지공원

저 만치 밀려나 있던 또 한 계절이 서성이면 멀리 여행을 떠났던 새들이 돌아온다. 고단했던 여정, 지친 날개를 접고 하나 둘, 둥지를 틀자 때마침 지평선 너머 바람도 불어온다. 메마른 대지 위를 스치던 바람에 걸린 갈대 잎사귀는 서걱거리고, 꽃술은 춤을 춘다.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딱히 노여워하지 않는다. 그저 무리지어 노래하고, 춤을 춘다. 이 또한 지나가리란 것을 알기이다. 바다와 섬, 습지와 갈대 그리고 한 줌의 햇살. 2014년 마지막 가을, 경기도 안산의 대부도와 갈대습지공원을 다녀왔다.

달이 만든 기적, 시화호 조력발전소

감탄이 나올 만큼 길게 뻗은 방조제 위를 달려 대부도로 향한다. 제방 왼쪽으로는 잔잔한 시화호가 오른쪽으로는 출렁이는 바다가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들이민다. 무려 12.7km에 달하는 방조제를 달려 처음 마주치는 곳은 세계 최대 규모라는 시화호 조력발전소다. 달의 인력으로 생기는 밀물과 썰물의 수위 차이를 이용해 친환경 전기를 생산하는 곳으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조력발전소 옆으로는 문화관과 달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더 바랄 것 없이 바다만 감상하고 싶다면 달전망대로 오르면 된다. 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의 통창문너머 길게 울부짖는 가을바다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연의 자연을 자랑하는 대부도 섬 구경을 원한다면 갈 길이 멀기에 발길을 재촉해야 한다. 시화호 조력발전소

섬이 아닌 섬 그럼에도 섬, 대부도

인공적인 바닷길로 인해 이제는 섬이라 불리기 무색해진 섬. 그럼에도 결국 대부도는 섬이다. 하루에 두 번 곳곳에 속살을 드러내는 너른 갯벌과 뉘엿뉘엿 몸을 누이는 해넘이 풍경 등 섬이 가진 퇴색되지 않은 자연이 아직 그곳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섬 내 무려 74km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7개의 테마 걷기길, 대부해솔길을 품고 있을 만큼 규모가 큰 덕분에 구석구석 볼거리도 가득하다. 대부해솔길

생태테마공원 달전망대 주변으로 조성된 T-라이트 공원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대부바다향기테마파크는 여의도공원의 4배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는 생태테마공원이다. 나무테크로 이어진 공원 입구초입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갈대의 바다다. 바람에 출렁이는 갈대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랑이는 코스모스를 따라 저 멀리 보이는 풍차를 향해 걷는다. 곳곳에 조형물과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연인이나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광활한 갈대밭에 발이 묶인 채 한동안 자리를 지킨다. 때마침 들리는 피아노소리(공원 내 피아노가 자리해 관람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에 까지 귀를 기울이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바닷길이 열린 시간 내 가야할 곳이 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길에 선다.

섬의 반대편을 향해 신나게 달리다 보면 동주염전이란 뜻밖의 이정표와 만나게 된다. 이 계절에 눈처럼 새하얀 소금을 만나기란 어렵다. 하지만 섬 안의 염전은 고즈넉하고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뜻밖의 운치를 자아내니 사진촬영에 욕심이 있다면 둘러볼만하다.

바다 사잇길의 특별한 착각, 누에섬

그리고 드디어 섬 끄트머리 쯤 등대섬으로 향하는 길에 오른다. 조그맣게 웅크린 모양새를 보자니 왜 이 곳의 이름이 누에섬인지 묻지 않아도 알 듯 싶다. 아담한 섬 안 더 자그마한 등대를 품고 있는 이곳의 바닷길은 하루 두 번 열린다. 길이 열렸을 때라면 갯벌 사이로 걸어도 좋고, 물이 차오른 후라면 해지는 풍광 역시 일품이다.

풍력발전기 오늘은 걷기로 한다. 가을바람이라고 만만히 보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낮게 날던 갈매기가 바람에 뒤뚱거린다. 저만치쯤에는 목이 유난히 길고 하얀 풍력발전기가 소란스럽게 제 몸을 돌리고, 꼭꼭 여민 옷깃사이로도 찬바람이 밀려든다. 그럼에도 등대를 향해 걷는다. 목적지가 저 앞인데 예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바다 가운데로 난 길을 걷는 동안 한 쪽에서는 단돈 몇 천원에 허락되는 갯벌체험으로 부산한 이들의 굽은 등과 여전히 바람과 씨름하는 갈매기가 보인다. 사실 등대는 거창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그 등대와 섬을 향해 걷는 그 길이 특별한 것이다. 머리 위로 내려앉은 가을 햇살 한 줌과 사방 피할 곳 없는 망망대해에서 맞이하는 바람 그리고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파도소리. 눈을 감으면 세상 한 가운데 서있는 듯 드는 특별한 착각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행이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는 기억임을 확인케 해줄 것이다.

망망대해

<비어 있음>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누에섬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오는 길은 한결 수월하다. 바람의 방향이 슬그머니 등을 밀어주기 때문이다. 뭍에 올라오면 배를 닮은 모양새의 안산어촌민속박물관이 있고, 다시 그 옆으로 는 탄도항이 위치한다. 한쪽으로는 새하얀 요트들이 정박해 있고 반대편으로 갯벌이 펼쳐진 이 소박한 항구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원래 시화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배로 닿는 외딴섬이었던 곳으로 수원시에서 부천으로 다시 인천에 편입됐다가 1996년이 돼서야 안산시에 겨우 정착했다. 낚시터와 갯벌체험으로도 제법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곳이긴 하지만 이곳의 가장 큰 진가는 해질 무렵에 발휘된다. 특히 이 계절처럼 일교차가 클 때면 더 붉은 낙조를 만날 수 있다.

해산물칼국수 그리고 이쯤에서 배를 채워도 좋을 것이다. 이 근방의 먹거리 중 손꼽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지나는 음식점 간판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마 몰라도 열에 여덟은 해물칼국수라고 쓰여있을 것이다. 사실 탄도항은 규모가 작은 항구라 굳이 이 근처까지 찾아와 칼국수 집을 찾을 필요는 없다. 섬 내 어느 음식점에 가도 넉넉한 바지락과 새우 운이 좋다면 낙지 한 마리쯤은 통으로 들어있는 칼국수 한 그릇을 받아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 갯바람에 얼었던 몸을 녹이기엔 시원한 칼국수 국물만한 것도 없다.

가을, 갈대 위에 몸을 뉘이다, 안산갈대습지공원

늦가을 안산여행의 백미는 역시 갈대밭이고, 안산에서 갈대를 보기 위해 달려갈 곳이라면 갈대습지공원이다. 자연을 정화하기 위해 사람 손으로 만들었지만 결국 자연이 품어 키우고 있는 안산갈대습지공원은 갈대와 철새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큰 걸음으로 다가온 바람이 갈대밭 사이를 지날 때면 그 발자국 소리가 서걱거린다. 서로 몸을 부비는 갈대의 잎사귀에서 나는 소리다. 얼핏 파도소리와도 닮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눈을 뜨자 제 흥에 못이긴 꽃술이 춤을 추고 멀찍이 철새가 날아든다. 지금 멈춰 선 이곳이 바로 가을이다. 안산갈대습지공원 안산에 이처럼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이 자리한 이유는 사실 공장지대에서 흘러나온 폐수를 시화호로 흘러가기 전 정화하기 위함이다. 그 시작이 사람의 이기에서 시작됐기에 가을 햇살이 넉넉히 내려앉은 갈대밭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고 또 애틋하다. 이곳은 또 사계절 철새들이 먼 길 찾아와 쉬었다 돌아가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습지의 주인은 엄연히 자연인 셈이다. 혹여 갈대나 철새를 관람할 때는 손님의 예의를 지켜 큰 소리를 내거나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길, 최용신 기념관과 원곡공원 현충탑

원곡공원 현충탑 잠시 자연 속에 오롯이 멈춰서 있던 몸을 일으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 길을 나서다 보이는 이정표 중에는 눈에 익은 이름이 몇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최용신 선생이다. 학창시절 읽었던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 일제강점기 농촌 계몽을 펼쳤던 그녀의 일생을 모아 놓은 기념관과 묘소가 바로 지척이니 한번쯤 발길을 옮겨도 좋다.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상처는 아물어야 하고 아문 상처에는 흉터가 생겨야 한다. 그래야 좀 더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씩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는, 다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도심 전체를 한 눈에 담고 싶은 욕심에 인근의 공원에 올랐다. 다문화지역답게 중국식 간판이 가득한 거리 한 귀퉁이를 지나 오른 공원의 이름은 원곡이었다. 안산지역이 한 눈에 들어오는 그 곳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과 순국선열의 넋을 기르기 위한 현충탑을 비롯해 6.25 참전국와 용사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어느덧 도심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시간, 재잘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아파트 창문들을 바라보자 탑 아래 새겨진 오래전 이 나라를 지켰듯 이 도시를 지켜달라는 문구가 입안에 맴돈다. 다시 찾은 이 일상의 평온함이 지켜지길. 이 나라 안 모든 이들의 오늘이 안녕하길.

<글. 권혜리 / 사진. 나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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