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길지 않다 한들 어둡지 않은 밤이 있으랴. 그리고 제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 할지라도 언제고 날은 밝아 온다. 그러니, 어리고 연한 꽃잎들이 한껏 옹그린 채 밤을 지새우는 까닭 역시 더 곱게, 만개(滿開)하기 위함이라고 해두자.
어스름한 새벽 하늘아래 켜켜이 꽃잎을 포갠 모양새가 퍽 조신해 보여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투두둑, 툭. 퍽퍽. 참한 생김새와 달리 한바탕 팝콘이라도 튀기듯 요란하게도 꽃망울을 터트린다. 오죽하면 그 소리에 놀란 아침이 저 멀리서부터 잰 걸음으로 쫓아올까. 그래서 유독 이곳 궁남지의 아침은 이르다.
‘마를 캐며 생활하던 소년이 신라의 공주를 신부로 맞이했다’는 내용의 설화 서동요. 그 옛 이야기의 주인공인 백제 30대 왕, 무왕은 아들 의자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전 마지막으로 궁궐의 동쪽에 연못을 만들었다. 바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못, 궁남지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선화공주를 위해 만들었다는 로맨틱한 이야기의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내심 수긍하게 될 만큼 궁남지의 풍경은 더 없이 아름답다.
건드리면 그대로 물이 들 것 같은 쾌청한 하늘아래 둥그런 모양의 거대한 연못이 있다. 그리고 그 연못 한 가운데에는 임금이 쉬어갔다는 아담한 정자가 자리한다. 정자로 향하는 나무다리 아래로는 한가로이 물고기 떼가 노닐고, 연못 주변으로는 한껏 늘어진 수양버들이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제 몸을 못 이긴 채 휘청인다. 어떤 미사여구를 보태지 않아도 보는 그대로 여름의 절경이다.
그리고 그 여름이 절정에 이를 쯤, 연못 주변 10만 여 평의 평지에 연꽃이 핀다. 백련, 홍련, 황금련을 비롯해 수련과 가시연, 왜개연 그리고 물양귀비 등의 수생식물과 색색의 야생화들. 손대기 미안할 정도로 단아한 자태의 연꽃 너머로는 해사한 얼굴의 해바라기가 목을 길게 빼고 객을 맞이한다. 이외에도 연꽃단지 너머 화지산 아랫자락에 다다르면, 황산벌전투에서 전사한 계백장군과 백제 오천결사대의 기백이 살아있는 오천결사대 충혼탑도 만날 수 있다.
해외문물 교류와 개척, 소통에 관심이 많았던 옛 백제인들에게 백마강은 해양강국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발판이었다. 그래서 옛 백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역시 백마강이다. 그리고 그 백마강 굽이굽이에는 물자와 소식을 실어 나르던 나루터가 즐비했다. 그 중에서 구드래 나루터는 백제 사비성(부여)의 해상관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황포돛대에 오르면 삼천 명의 어여쁜 생명들이 떨어져 내렸다는 부소산성 내 낙화암까지 조금 수월하게 갈 수 있다. 나당연합군이 침입하던 날,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목숨을 내던진 삼천궁녀의 이야기가 과장됐다 하더라도 자존심 드높던 백제인들이 죽음으로 백제의 넋을 지키고자 애썼던 것은 사실. 그래서 그네들의 목숨을 가여워한 한 시인은 이곳을 낙화암이라 불렀다. 꽃잎이 떨어진 곳이란 의미에서다.
강바람이 불자, 때 이르게 피어난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다 꽃잎을 떨군다. 그리고 그 중의 얼마는 저 멀리 강물을 가르며 다가오는 황포돛대를 향해 날아간다. 어쩌면 언젠가 꽃비가 떨어지던 날에도 이리 붉게 돛을 물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4번 국도를 따라 공주에서 부여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부여의 관문을 상징하는 사비문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사비문 한쪽 자그마한 공원에는 죽어서도 이 땅을 지키고 있는 순국선열들의 넋이 잠들어 있다. 조국의 평화와 인류의 자유 수호를 위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순군선열들의 이름, 석자가 가득 새겨진 ‘6.25 베트남 참전탑’은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하지만 마치 이 땅을 지키다 사라져간 그 분들의 마음처럼 단단한 모습으로 오늘도 옛 백제 땅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자신들의 이름을 잊는다, 탓하기보다 그렇게 지켜 낸 이 땅의 평화에 기뻐할 분들이기에, 눈부시게 찬란한 이 여름날이 눈물겹다.
돌이켜보면 역사란 언제나 서글프다. 화려했던 영광도, 치열했던 다툼도, 위대한 업적도. 이제는 지나가 버린 과거이기 때문이다. 백제는 우리 역사 속에서도 온전히 흔적을 찾기 어려운 이름이다. 그래서 백제의 후손들은 언제나 옛 선조들의 영광과 흔적을 찾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부여시 외곽에 위치한 백제문화단지에 들르면 사비궁을 시작으로 왕실사찰 능사, 백제인들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는 생할문화마을과 고분 등 웅장했던 백제의 옛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다. 특히 드넓은 대지 위 바닥의 돌 한 장에도 연꽃을 새겨 넣었던 백제문화의 우아한 아름다움과 앞선 기술력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연꽃은 그 아름다운 자태만큼 쓰임새도 많은 약재이기도 하다. 특히 연잎은 성인병 예방은 물론 갈증과 몸 안 습기를 제거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어, 예로부터 여름이면 차로 다려 마시거나 연잎밥을 자주 해먹었다. 연꽃이 만개한 궁남지 인근 역시 연잎밥으로 이름난 식당이 여럿 있다. 발길 닿는 대로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는 연잎밥을 주문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연잎 밥이 밥상에 오른다.
보기 좋은 모양새에 작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아직 뜨거운 연잎을 조심스럽게 풀어 헤치자 견과류를 넣고 지은 찰밥이 윤기 좌르르 흐르는 자태로 입맛을 돋운다. 제철 채소로 정성스레 만든 삼삼한 밑반찬과 함께 천천히 밥알을 씹으면 쫀득한 식감과 함께 입 안 가득 은은한 연꽃 향과 단맛이 퍼진다. 여기에, 자작하게 끓여 낸 된장찌개 한 수저를 더 하면 집 나간 여름 입맛이 뉘집 애기인가 싶어진다.
<글. 권혜리 / 사진. 나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