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붉은 피로 물들었던 DMZ(비무장지대) 능선 위에 울긋불긋한 단풍이 곱게 내려앉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가을바람에 흔들리던 길섶 야생화도 무서리에 덮이고, 인적 없는 대지 위에는 두껍게 눈이 쌓일 것이다. 또 들판을 누비던 사향노루와 하늘다람쥐는 먹이를 찾아 시린 눈밭을 헤매며 퀭한 눈으로 혹한을 견딜 것이다.

DMZ와 민통선 지역은 항상 고요와 적막감이 감돈다. 1953년 여름 어느 날, 고지를 지키던 병사들이 하나 둘 총을 내려놓고 바다의 군함과 하늘의 전투기들이 조용히 기지로 귀환한 이후 이곳의 시계는 멈추었다. 그러나 이 고요함은 결코 평화를 뜻하지 않는다. 드높은 남측 철책선과 북측 고압선이 말해주듯 지난 60년간 DMZ 안에서는 소리 없는 전쟁이 계속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DMZ가 통일의 전진기지이자 생태계의 보고, 그리고 관광과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DMZ의 역사와 생태, 그리고 최근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DMZ 세계평화공원 사업에 대해 알아보자.
잘 알려진 것처럼 DMZ는 ‘De-Militarized Zone’의 약자로 군사적 비무장지대를 뜻한다. 대한민국의 DMZ는 서해안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248㎞ 길이의 군사분계선(휴전선, MDL)을 중심으로 남북 각각 2㎞에 이른다.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7월 27일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하 정전 협정)’에 의해 정해졌으며, 이 협정에 따라 DMZ에는 군대가 주둔하거나 무기를 배치할 수 없다. DMZ라는 이름만 놓고 보면 세상 그 어느 지역보다 평화로워야 하지만, 그 안에는 당장이라도 포화를 뿜어낼 수 있는 무기와 군인들이 집중돼 있어 사실상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으로 여겨져 왔다.

DMZ의 생성과정을 알려면 남북이 분단된 이유,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한다.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 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한민국은 일제에서 해방 됐지만, 바로 자주 독립국가를 건국할 수 없었다. 미국과 소련이 일본군의 항복접수와 무장해제를 위한 작전 분계선 으로 한반도에 38선을 획정한 뒤 남한에는 미군이, 북한에는 소련이 상주하여 분할점령하게 된 것. 이후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면서 오랫동안 군정기를 가졌다. 통일정부수립을 향한 우리 국민들의 열망에도 불구 하고, 미국과 소련은 각자 자국의 이익에 유리한 정권이 수립되도록 지원했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갈등 과 반목이 심해졌다. 그러던 중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불법 남침을 감행했고 3일 만에 서울을, 수개월 만에 부산 등 경상남도 일부를 제외한 전 지역을 점령했다. UN은 북한의 불법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UN군을 창설,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했다. 결국 한국전쟁은 3년 1개월 동안 계속되다가 1953년 정전협정을 맞게 됐다.

휴전 직후 군사분계선을 에둘러 1,292개의 표식판이 설치되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남북을 가르고 있는 것은 나무울타리였다. 그래서 영화 JSA(공동경비 구역)에 나오는 것처럼 남북한 군인은 담배나 맥주, 인삼주, 과자 등을 가져가 함께 나누며 라디오를 함께 듣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1968년 김신조 청와대 공격사건을 계기로 남북간 불신과 대립의 골이 깊어졌고 결국 철책선을 동원해 벽을 쌓기 시작했다. 특히 1976년에 발생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은 DMZ 안의 충돌이 전쟁 일촉즉발 상황까지 불러온 대표적인 사례다. 다행히 전쟁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DMZ를 가르는 철책은 지난 60년 간 계속 높아져만 갔다.

한국전쟁 당시 DMZ는 수많은 고지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특히 강원도 철원의 백마고지와 양구 해안면 일대의 펀치볼, 도솔산, 가칠봉 전투 등은 잊을 수 없는 잔혹한 상채기를 냈다(DMZ 일대 주요 전투사 자세히 보기). 백마고지의 경우 1952년 10월 고지의 주인이 24차례나 바뀌었고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해안면의 펀치볼은 피의 능선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도솔산 전투, 가칠봉 전투 등을 치르면서 폭격과 전투로 철저히 파괴됐다. 고지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시신들이 생겨났다. 아군 3,700명, 적군 15,000명이 희생된 피의 능선 전투 현장에서는 현재 전사자 유해발굴이 진행 중이다. 서로를 끓어 안은 채 60년을 보낸 이 젊은 주검들은 대부분 매장되지 못하고 자연 퇴적에 의해서 덮인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2013년 현재 DMZ 철책 곁에는 각종 화기로 무장한 초소가 있고, 이곳에서 남북한 젊은이들은 불철주야 보초를 서며 60년간 가파른 등성이를 지키고 있다. 현재 북한측 GP는 158개, 남한는 GP는 87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전협정 당시는 남북이 군사분계선에서 2㎞씩 뒤로 물러나기로 했지만, 그런 곳은 몇 군데 되지 않고, 심지어 최전방 오성산 일대는 350m 안에서 남과 북의 GP가 마주보고 서있다. 우리 군인들이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DMZ에 들어가 작전을 펼치면, 북한측 병사들 역시 무장한 채 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색로 주변에는 수많은 지뢰도 묻혀있다. 평화로워야 할 DMZ 공간에서 맴도는 긴장감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그 수위가 높다.
사람들이 흔히 자주 혼동하는 것은 DMZ와 민간인통제선(이하 민통선)이다. 민통선은 군사분계선 남쪽 5~20㎞ 구간의 지역으로, 1954년 2월 미군 제8군단 사령관에 의해 설정됐다. 군사시설 보호와 보안유지를 위해 민간인 통제가 필요했던 것. 당시에는 민간인 의 귀농(歸農)을 규제하는 귀농선을 설정하고, 그 북방에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이후 휴전선 방어 임무를 한국군이 담당하면서 1958년 군 작전과 보안에 지장이 없는 범위 에서 출입영농과 입주영농이 허가되었고, 귀농선은 민통선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민통선 통제권이 한국군에게 이양된 후에는 정책적 필요에 따라 1959년부터 99개의 자립안정촌을 건설했고, 1968∼1973년에는 12개의 재건촌을 설립했으며 1973년 2개의 통일촌을 건설했다. 이보다 앞선 1953년에는 정전협정 부칙에 따라 DMZ 안 거주지인 대성동 마을(자유의 마을)이 설치됐다. 이들 마을은 체제 경쟁이 맹렬했던 당시, 서로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촌으로 이용됐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이러한 개념은 없어졌고, 일부 민통선 북방 마을이 그 이남으로 편입되면서 숫자와 면적도 줄어들었다.
60년간 인간의 발길이 끊기면서 DMZ 안에는 오래전 사라진 생명과 천연기념물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시베 리아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몽골 고원에서 독수리가 찾아왔으며, 멸종된 줄 알았던 산양 떼가 버젓이 활보를 한다. 밀렵과 각종 개발 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야생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가 된 것. 때문에 DMZ 일원은 세계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라고 불린다. 실제로 이곳에는 146여종의 희귀동물과 2,800여 종의 생명이 살아가고 있으며 대암산 용늪은 국내 최초로 람사르 습지에 등록되기도 했다.

그러나 DMZ는 들짐승이나 산짐승이 살 만한 터전이 적잖이 훼손됐고, 그 안의 야생동물들은 양 철책선 사이 에 갇혀서 때로는 지뢰에 희생되기도 한다. 국제단체에 따르면 한반도의 1,300여 곳, 약 32㎢ 면적에 지뢰가 매설돼 있고, 그 대부분이 DMZ 인근에 집중 배치돼 있다고 한다. 또한 군사 작전상 필요에 의해서 수행해 지는 ‘불모지 작업(DMZ 감시를 위해 시야 장애물을 제거하는 작업)’도 이들의 생활터전을 위협한다. 게다가 2000년 이후 시계를 확보를 위해 DMZ 내에 불을 놓는 화공작전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매년 2회 이상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68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DMZ에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할 것을 북한에 제의했다. 박 대통령은 “비무장지대를 평화의 지대로 만듦으로써 전쟁의 기억과 도발의 위협을 제거하고, 한반도를 신뢰와 화합, 협력의 공간으로 만드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박 대통령은 5월 8일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과 7월 27일 유엔군 참전ㆍ정전 60주년 기념사를 통해서도 DMZ평화공원 조성의 의지를 거듭 강조 했으며, 반기문 UN사무총장도 지난 8월 방한해 지원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DMZ에서부터 무기가 사라지고, 평화와 신뢰가 자라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정전협정을 맺은 당사국들이 함께 국제적인 규범과 절차, 그리고 합의에 따라 평화공원을 만든다면 그곳이 바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DMZ 세계평화공원은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공간이 될 것이며,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진정한’ 비무장 지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를 세계평화공원 조성 사업기간으로 정하고 내년도 예산을 402억 원가량 편성해 이를 준비하고 있다.
평화와 통일은 ‘정치·군사적’ 측면과 ‘경제·사회·문화적’ 측면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 이 중에서도 특히 문화적 측면은 통일로 가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단축시킬 수 있다. 문화는 사람들의 머리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DMZ와 관련한 많은 문화행사가 치러졌다. DMZ 국제 심포지엄(7월), DMZ 광고 공모전(6~7월), 정전60년 평화통일 마라톤 대회(10월), DMZ 세계평화 콘서트(8월), DMZ 60년 사진전(5~12월), 평화누리길 자전거 대회와 청소년 탐험대(5월, 8월), ‘나는 DMZ로 간다’ 팸투어(6~11월),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10월) 등 크고 작은 지자체 및 단체의 행사까지 포함하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10월 17일부터 7일 간 열린 제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다. 38개국 119편의 다큐멘터리영화들이 출품된 이번 행사에서는 영화제 외에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돼 일반 관객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자리매김하면서 DMZ의 중요성을 국내외에 알렸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도 지난 11월 1~2일 강원도 철원군 일원의 비무장지대(DMZ) 안에서 평화통일 한마음 축제 행사를 개최했다. 또 오는 17일에는 민간인통제구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 DMZ자전거투어도 열린다.

생태 보전 차원에서 ‘이견’은 있지만 민통선 내 생태관광도 붐이 일고 있다. DMZ 일원의 다양한 생태자원이나 지역에 독특한 문화를 체험하고 이 지역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DMZ는 많은 역사와 유물이 파헤쳐지지 않은 채 잠들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삼국시대 한강 지역을 둘러싸고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고자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후삼국시대 궁예의 태봉국 도성지가 DMZ 한 가운데 놓여있다. 경기도에서는 DMZ 일원을 안보관광, 역사문화유적, 자연생태, 여가휴식으로 나눠 평화누리길 코스를 마련해놓고 있다. (자세히 보기)

강원도 철원 한탄강에는 ‘승일교’라는 이름의 남북 합작 다리가 있다. 시인 신경림은 승일교를 이렇게 노래했다.

이 시처럼 DMZ가 교류의 장소, 평화의 상징, 협력의 공간으로 탈바꿈해 남과 북이 반반씩 휴전선을 허물 수 있는 날이 빨리 앞당겨지길 기대해 본다.

<글. 기자희 / 사진. 연합뉴스, 경기도, 국방부유해발굴감시단>
2013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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