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반 민간인통제구역 안쪽으로 들어가는 버스에 탑승하기 전, 모두들 잔뜩 흐린 하늘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급기야 제3사단 수색대 연병장에 도착했을 때는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늘 걷기대회를 무사히 잘 끝낼 수 있을까’ 우려가 커지던 상황. 그러나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침착하게 우비를 나눠 입거나 우산을 함께 쓴 채 행사에 임했다. 국민의례가 시작되었고 이어 현경대 수석부의장의 개회사와 김춘만 철원군 협의회장의 인사말, 조동용 강원 부의장의 축사가 있었다.

현경대 수석부의장은 “오늘 빗속에서 통일의 염원을 다지는 청년위원들의 뜨거운 열정과 마음이 우리의 통일을 빨리 앞당길 것으로 확신한다”며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빗속에 우리들의 열기를 하나로 모으는 뜻있는 행사가 통일을 향한 장정의 첫 발걸음이 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춘만 회장은 “청년자문위원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라며 “여기 모인 마음과 정성을 한곳으로 모아서 매진할 때 대한민국의 통일은 빨리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민족의 허리를 자리는 휴전선 걷어내기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걷기대회의 출발지점에 설치된 철조망, 즉 휴전선을 절단하는 행사였다.

주요 참가자들과 2030자문위원이 힘을 모아 휴전선을 잘라냈고, 참가자 전원은 이 절단된 휴전선 조각을 30cm 길이의 투명한 박스에 넣어 하나씩 든 채, 통일의 문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연병장을 빠져나와 걷기 시작했을 때, 농악대가 대열 앞에 서서 흥겨운 가락을 선보이며 걷기대회의 순조로운 출발을 축하해주었다. 통일 걷기대회는 철원읍 정연리 육군 3사단 수색대 연병장에서 유곡리 통일촌에 이르는 4km 구간에서 진행됐다.

농악대 행렬도 사라지고 본격적인 걷기에 돌입.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굵어졌다를 반복했지만 한순간도 멈추지는 않았다. 바람에 날리는 우비자락을 여미며 한걸음 한걸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이날 가장 신이 난 건 아이들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철원지역 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씩씩한 모습으로 걷기대회에 임했다. 선생님과 함께 왔다는 문혜초등학교 혁이(우측 세 번째 사진)는 걷기대회가 재미있다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신철원 중학교에서 온 남희는 “통일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통일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친구들과 함께 갈 길을 재촉했다.

이틀째 이어지는 행사에도 불구하고 전혀 피곤한 내색 하나 없이 힘찬 발걸음으로 걷기 대회에 참석하고 있는 자문위원들.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걷는 길이지만 ‘앞으로 우리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해 나갈 것인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대화의 길’이 되어준 것 같았다.

가끔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자녀 두 명, 아내와 동행한 이상민 씨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이 아닌 철원 지역민이다. “통일 염원 걷기대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기념으로 남기려고 함께 왔다”는 이 씨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좀 투덜거리긴 했지만, 지금은 오길 잘 했다며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도군에서 5시간을 달려 왔다는 이근숙 씨 가족은 취재팀 카메라에 따로 따로 포착됐는데 알고 보니 한 가족이다. 이 씨는 “처음 와봤는데 멀긴 멀지만, 그래도 통일전망대와 땅굴도 구경하고 부대에서 근무하시는 분들 노고도 새삼스럽게 알게 됐다”며 “여러 가지로 뜻 깊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안개비가 내리는 가운데 자문위원들의 행렬 왼편으로 철책선이 보인다. 철책선에서 2km만 더 나아가면 군사분계선이고 또 더 2km를 나아가면 북한 땅이다.

어디선가 수많은 철새 떼가 날아와 들판 위를 잠시 비행하며 화려한 군무를 선보였다. 아주 짧은 시간 이었지만 도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DMZ 천연 생태계가 주는 깜짝 선물인 것 같았다.

2030 청년자문위원 못지 않은 체력을 자랑하며 완주중인 현경대 수석부의장과 박찬봉 사무처장. 현 수석부의장은 걷는 중간 중간 “통일이 되는 것은 축복이고 통일비용이 분단관리비용보다 훨씬 이익” 이라는 내용으로 TV 방송사 촬영팀과 인터뷰도 하고 함께 걷는 청년 자문위원들과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멀리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얼마 안 있어 마을이 나타났다. 바로 민통선 안에 있는 유곡리 통일촌 마을이었다. 거의 끝 지점까지 왔지만 전혀 지치지 않은 듬직한 청년들의 모습을 보니 통일 대한민국을 향한 길도 이처럼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내 걷기대회를 완주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태극기를 펼쳐 들고 선두에 서서 걷던 김준호 대구 2030청년자문위원 회장은 “태극기를 가지고 우리가 갈 수 있는 최북단 한계선까지 온다는 것 자체가 젊은 층에게 새로운 경험”이라며 “30대 마지막을 달리고 있는 나이라 후배들을 잘 이끌어서 통일이 왜 중요한지 알리는 가교역할을 확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도착한 참가자들은 북한의 청년과 지도자 및 친구들에게 평화통일을 촉구하는 엽서를 써서 통일우체통에 넣었다. 현재영 자문위원(우측)은 “제 또래에게 한국에 와서 같이 살자고 엽서에 썼다”며 웃었다.
또한 출발지점에서부터 갖고 온 철책선 조각을 모아 평화의 나무를 만들었다. 이 평화의 나무와 통일우체통은 관광객이 많이 왕래하는 고석정에 설치되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이 우체통 에서 매 분기 1회씩 편지를 수거해 우수작을 선발, 기념품을 증정할 계획이다.
이날 철원군 쌀전업농중앙연합회 회원들은 커다란 솥에 1,200명분의 식사를 마련했다. 솥 아래 눌어붙은 누룽지는 아이들의 맛좋은 간식이 되었다.
식사 후 통일촌 광장에서는 통일음악제가 열렸다. 춤다움 무용단의 ‘통일의 북소리’ 공연과 평양예술단, 6인조 남성중창단, 철원소년소녀합창단의 공연이 이어졌으며, 특히 ‘휘파람’ 등의 노래와 함께 아코디언 연주를 들려준 평양예술단의 인기가 높았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박수를 치거나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어 고영찬·박진여 자문위원 등을 대표로 한 평화통일메시지 선포식과 평화통일기원문 낭독이 진행됐다. 청년 자문위원들은 평화통일메시지에서 국민화합을 실현하기로 하고, 통일공감대 형성의 불씨가 될 것을 결의했으며 청년 자문위원 특유의 창의성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통일활동을 활성화시키는 데 앞장 설 것을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박찬봉 사무처장의 감사 인사말이 있었다. 박찬봉 사무처장은 “오늘 행사를 통해 우리가 지키는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가,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느꼈을 것”이라며 “이러한 화합의 의지가 철원지역뿐 아니라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메아리 쳐서 그 함성이 휴전선 너머까지 연결이 됨으로써, 8천만 한민족이 통일을 하루라도 앞당겨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의 대미는 빗속에서 다 함께 손을 잡고 부르는 ‘우리의 소원’ 노래였다. 악천후 속에서 모두 함께 어려운 길을 헤쳐왔던 터라, 서로 맞잡은 손에서 따뜻한 온기와 강한 통일의 열망이 전해져왔다. ‘민주평통 청년위원! 통일의 문을 열다’라는 이번 대회의 슬로건처럼 청년자문위원들이 미래세대 통일의 주역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서 굳게 닫힌 통일의 문을 힘차게 열 그날을 기대해 본다.
<글/사진. 기자희>


2013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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