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티 기자는 지난 2009년부터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의 서울 특파원으로 5년간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동아시아와 남북한 이야기를 기사로 작성해 프랑스로 송출하고 있다. 지난 2012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태평양의 한 섬’이라는 제목의 독도 방문 르포기사를 통해 ‘한국인에게 독도는 끝나지 않은 과거사의 상징’이라고 보도해 독도 문제를 유럽인들에게 알렸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을 앞둔 지난 10월 30일에는 청와대에서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팔레티 기자는 서울에 오기 전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로폴리틱’ 기자로 일했다.
“유럽에서 오래 있다 보니 아시아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마침 한국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서 서울에 오게 됐어요. 당시만 해도 한국이 유럽매체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비한 느낌이 들어서 한국행을 택했는데, 그때 내린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팔레티 기자의 말처럼 아직 유럽에서 한국은 경제적 발전이나 첨단 IT기술 외에는 잘 알려진 나라가 아니었다. 때문에 서울에 상주하는 유럽 국가들의 특파원 숫자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유럽에서 남한과 북한의 분단 문제는 의외로 관심이 높다고 했다.

“이웃 나라인 독일이 오랜 분단 상황 하에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경우 구 소련 붕괴 이후 통일이 되었지만, 한국의 분단 문제는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잖아요. 비록 분단의 원인이나 현재 상황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하더라도, 북한이 상당히 ‘미스테리한’ 국가여서 아마 더 흥미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팔레티 기자와 김은주 씨가 공동 집필한 ‘열한 살의 유서’는 북한의 식량난이 극에 달했던 1997년, 영양실조로 아버지를 여읜 김은주 씨가 어머니, 언니와 함께 탈북한 뒤 중국, 몽골을 거쳐 2006년 한국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프랑스에서는 ‘북한, 지옥탈출 9년(COREE DU NORD 9 ANS POUR FUIR L’ENFER)’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렇다면 이 책은 왜 한국이 아닌 프랑스나 노르웨이에서 먼저 출간되었을까?

이유는 프랑스 최대 출판사 중 하나인 ‘미셸라퐁’에서 팔레티 기자에게 북한이탈주민에 관한 책을 펴내고 싶다고 요청해와 쓰여졌기 때문. 또한 파리에서 이 책이 출간되고 나자 노르웨이 출판사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고, 프랑스어를 노르웨이어로 번역하는 것이 한국어보다 더 쉬웠기 때문에 한국어판 발간이 약간 미뤄졌던 것이다. 내용도 한국어판과 유럽판은 약간 다르다. 유럽에서는 북한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배경설명이 필요했던 반면, 한국어판은 이런 부가적인 설명을 빼고 감정적인 요소들을 조금 덧입히는 과정을 거쳤다.

파리와 노르웨이에서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프랑스에서 1주일동안 머물면서 프로모션을 했는데, 프랑스 언론이 큰 관심을 보였어요. 일간지는 물론 잡지, TV 등 각종 언론을 통해 다방면으로 인터뷰를 많이 했고 영국 BBC의 프랑스 지사에서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심지어는 제 친구 기자들까지 와서 북한 사람들에 대해 질문할 정도로 호기심이 많았어요.”
노르웨이에서는 ‘잉글리시 맨 인 뉴욕’,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 등 히트곡을 통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영국 가수 스팅의 덕을 봤다. 팔레티와 은주 씨가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쇼에 출연했는데 그 프로그램에 스팅이 함께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감동을 주었고 인기가 상승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팔레티 기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정치적인 이야기나 김정은 체제를 비하하는 내용보다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11살의 나이에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간 엄마와 언니를 기다리며 굶주림에 지쳐 유서를 썼던 은주 씨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또한 초등학교 때 공개처형 장면을 목격해야 했던 경험, 어렵게 두만강을 건넜지만 다시 북송됐던 경험들도 인상 깊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북한의 포로수용소와 같은 이야기 보다는 오롯이 휴먼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는 책으로 엮어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은주 씨를 마치 이웃에 사는 평범한 여동생처럼 친숙하게 느끼길 원해요. 무거운 주제보다는 그녀의 삶을 통해서 북한의 인권 피해상황을 자연스럽게 알게 하고 싶었고 남북한 사람들의 공통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팔레티는 출판사에서 제의를 받고 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은주 씨를 만나기 전, 다른 많은 북한이탈주민들과 면담을 했는데, 그때마다 동행한 통역자들은 대부분이 상당히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
“통역자들이 처음에는 북한이탈주민을 다른 행성에서 온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며 안심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북한문제 전문 기자인 팔레티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지금은 남북한이 거의 접촉하지 않고 대화도 원활치 않아 빨리 통일이 되기는 좀 힘들다고 봅니다. 따라서 서로 한 발짝 양보한 채 더 큰 그림을 그리며 미래를 위해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인들을 보면 통일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수록 통일의 길은 멀어질 뿐”이라며 “서로 신뢰를 쌓고, 쌓인 신뢰를 통해 함께 향유할 미래가 있다는 점을 공감하면서 공동의 프로젝트를 실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팔레티는 한 이산가족의 사연을 감동 깊게 봤다고 했다.
“이북에 아내와 형제를 두고 떠나와 그리워하던 사람이 적십자를 통해서 형제를 찾으려고 했지만 이미 작고하셔서 찾지 못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아들을 찾았다는 거예요. 아내와 헤어질 때 아내가 임신 중이라는 것을 몰랐던 거지요.”

팔레티 기자가 취재했던 특종 하나를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엉뚱하게도 강남에서 한때 유행하던 파파라치 학원 이야기를 꺼냈다. 알고 보니 좀 낯부끄러운 풍경이었다.

“강남의 파파라치 학원을 취재했어요. 아줌마들이 굉장히 고급스러운 카메라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잘 찍어서 돈을 받을 지 열심히 수강하는 걸 취재했는데, 프랑스 사람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이후에 한국 언론에서도 따라서 취재를 하기도 했어요. 좋은 내용은 아니었지만 인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웃음)”
팔레티 기자는 ‘폐쇄성’과 ‘개방성’이라는 양면을 갖고 있는 점을 한국의 매력으로 꼽았다. 그가 말하는 ‘폐쇄성’이란 한국이 외국의 영향에 대해 좀 닫혀있는 국가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 이는 아마 역사적으로 자국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깊게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면 ‘개방성’이란 K-pop이나 삼성 등 대기업이 세계에 미치는 글로벌한 영향력을 뜻했다. 팔레티 기자는 이런 두 가지 특성이 양립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매력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느끼는 한국인과 프랑스인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 그는 “한국인들이 굉장히 경쟁적이고 성격이 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뭔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오래 고민하는 편인데, 한국 사람들은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바로 돌진해서 빨리 끝내는 경향이 있다며, 그런 점 또한 매력적인 것 같다고 웃었다.

<글. 기자희 / 사진. 나병필>
2013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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