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통일 | 당신이 통일 주인공
실력으로 승부하고 마음으로 소통하다
‘광주 맥가이버’ 청소종합서비스센터 조현주 대표
돈 만 원에 울고 웃은 ‘남한생활 정착기’
현주 씨는 스물다섯에 한국에 왔다. 생계를 위해 중국에서 6년간 일했지만 불법체류자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던 까닭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막막함을 느꼈다. 하나원을 나와 임대아파트로 들어간 날, 브로커비를 갚고 나니 통장에 17만 원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도시가스를 설치하고 식사 한 끼를 해결하니 몇 만 원이 금세 사라졌다.
현주 씨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바로 취직을 했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 안전대를 설치하는 일이었는데, 기본 급여 외 하루 두 끼 식대와 교통비가 지급된다니 이만한 일도 없겠다 싶었다. 덕분에 당장 필요했던 임대아파트 관리비 보증금도 마련할 수 있었다.
▲ 출장 전 도구를 챙기는 조현주 대표
▲ 청소종합서비스센터 차량
현장에서는 지금의 현주 씨를 있게 한 고마운 분들을 만났다. 같이 일했던 과장님 몇 분이 현주 씨가 일하는 동안 밥값을 돌아가며 계산해주는가 하면 “젊은 놈이 이런 일 하지 말고 공부해서 취직하라”며 등을 떠밀었기 때문이다. 죄송한 마음에 현주 씨가 돈을 꺼내려 들면 절대 그러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때 과장님들과 부장님, 이사님이 돈을 모아서 저희 집에 인터넷을 설치해주시기도 하고, 한 분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저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셨어요. 돈 아껴서 공부하라고요. 어떻게 보면 지금 제가 기술자로 일할 수 있는 게 그 분들 덕분이죠.”
도배에서 로프공, 로프공에서 청소기술전문가
어른들의 권유 끝에 현주 씨는 도배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이후 한 인테리어 회사에 들어가 회사생활을 했는데,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만으로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급을 받게 됐다. 당시 월급으로는 서울에서 수원을 오가는 교통비와 생활비만 충당하기에 빠듯했다. 이에 현주 씨는 일당을 받은 일용직 도배 일을 시작했다.
도배일을 하는 동안 그는 빌딩 외벽을 닦는 로프공 일도 배우게 됐다. 위험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천천히 로프 타는 법을 익히면서 무려 3년 동안 아파트 외장미화와 구조물 설치, 건물 외벽청소를 하게 됐다. 기술 하나를 더 배우고 나니 현주 씨는 욕심이 생겼다. 청소관련 기술은 뭐든 배워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현주 씨는 알음알음으로 찾아낸 기술자에게 돈을 주고 고난도 기술을 배웠다.
“교육이 끝난 뒤에도 대표님을 수시로 찾아갔어요. 밥도 먹고 이야기도 들으면서 노하우를 얻는 거죠. 그렇게 친분이 생기니까 언제부턴가는 일감도 주시더라고요. 지금도 관련 기술자 분들을 만나면서 배우고 응용하면서 터득하고 있어요.”
현주 씨가 적극적으로 일을 배운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 분야의 최고 기술자가 되고 싶었고, 둘째는 실력 있는 기술자들이 경력, 학벌, 나이, 출신, 자격증 때문에 차별받는 일이 없길 바라서였다.
이에 현주 씨는 2016년 여름부터 사업자로 등록해 친환경케어 청소전문서비스업을 운영하고 있다.
▲ 식당 환풍기 청소중인 조현주 대표
▲ 환풍기 청소 전
▲ 환풍기 청소 후
조현주 청소종합서비스센터는 지금 월동준비 중
회사 대표가 된 뒤에는 바쁜 나날의 연속이다. 아침에 잠깐 사무실을 들러 스케줄을 체크하고 상담전화를 받으며 견적을 내고 그날그날 잡힌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보일러 청소 일이 제일 많다. 집집마다 월동준비가 한창인데 보일러 배관에 녹물이 쌓이면 난방 효과가 떨어지고, 심하면 약한 부분이 터지는 이유다. 현주 씨는 학교나 병원, 숙박업소 같은 상업공간이나 일반 가정집의 보일러 청소 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바닥을 뜯어내지 않고도 보일러를 청소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한다.
“보통 분기별로 요청 오는 작업이 달라요. 겨울에는 보일러, 봄여름에는 에어컨, 휴가철에는 업소용 후두 청소 시즌이 돌아오죠. 이것 말고도 세탁기나 개수대, 화장실, 건물할 것 없이 못 하는 것 빼고는 다 해요(웃음).”
▲ 세탁기 청소 중인 조현주 대표
▲ 세탁기 청소 전
▲ 세탁기 청소 후
현주 씨는 프리랜서 기술자들과 일반 직원들 10여 명과 함께 하고 있다. 기술자 한 명에 보조 직원 한두 명이 한 팀으로 일하는 식이다. 임금은 오로지 ‘실력’ 기준으로 지급한다. 지난날의 설움을 잊지 않고 학벌, 경력, 자격증과 상관없이 실력과 성실만을 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을 하다보면 기사가 얼마나 친절하고 정확하게 했느냐에 따라 더 많은 고객이 생기기도, 반대로 끊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과 사람, 남과 북을 잇는 ‘커뮤니케이터’
일을 하면서는 ‘커뮤니케이터’라는 꿈도 갖게 됐다. 처음엔 인맥이 없다는 게 약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늘 만난 사람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회사 대표로서 영업을 다녀야 하기도 하고, 기술자와 고객 사이에 갖고 있는 오해를 풀어주다 보니 그것만큼 보람된 일도 없다. 때문에 일과 탈북민에 관해서는 만큼은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
“탈북민들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불법인지, 위법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 억울한 심정을 대변해주고, 또 이곳의 절차를 이해시켜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통일이 된 뒤에는 문화나 법적인 차이로 생기는 문제도 많을 거예요. 그때는 또 제가 할 역할이 있겠죠?”
얼마 전에는 척추장애인협회에 적은 예산으로 침대 메트리스 케어와 화장실 살균 청소를 해주는 일을 맡기도 했다. 별도 업체와 협약을 맺고 최소 금액으로 복지관과 경찰서 등을 청소해주는 일들도 추진 중이다. 인건비는 그대로 나가지만 본인 수입을 줄여 진행하는 일이라고 한다.
현주 씨는 ‘부모 자식 간에도 일이 사랑’이라는 말을 기억하며 산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노래처럼 하시던 말씀인데,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성실하면 그게 사랑이고 신뢰를 주는 일이라는 의미란다.
이곳에서 자리 잡으면 현주 씨는 지역을 한 곳씩 늘려갈 생각이다. 전국에 있는 탈북민들과 함께 할 청소종합서비스센터를 만들고 싶어서다. 아마도 그 날은 머지않은 듯하다. 현주 씨는 지금도 오늘 만난 사람과 오늘 해야 할 일에 성실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_강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