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슈 | 포커스
문재인 대통령
정상외교의 성과와 과제
▲ 한·미 확대정상회담
지난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시작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쉴 새 없는 하반기 정상외교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한미정상회담에서부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 및 아세안(ASEAN)+3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다자회의에 연속적으로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싱가포르, 러시아와의 대화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해온 균형외교의 속도를 내고 있다.
균형외교란 ‘지정학의 귀환’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동북아 안보환경과 이에 대응하는 각국의 전략적 내러티브들이 경쟁하는 상황에 대한 한국의 대응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현 정부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경쟁 가운데 한국의 북핵문제가 구조화되어가고 있으며, 한반도 안보환경은 강대국 정치의 항구적인 종속변수화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그 방점을 두고 있다. 단적으로 한국은 지난 정부 기간에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미 수차례 선택의 기로에 놓여왔으며, 이러한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는 이상 한국의 외교적 운신의 폭은 지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매우 협소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문재인 정부의 구상은 균형외교를 통한 한국의 외교적 공간 확대, 그리고 궁극적으로 동북아 내에서 한국이 교량국가로서의 자리매김하는데 그 장기적인 목적을 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난 11월 7일 한미정상회담과 11일 한중정상회담에서 한국은 강력한 한미동맹 협력체제를 재확인함과 동시에 한중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며 3불원칙 역시 제시했는데, 이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주권 사항인 안보정책은 강대국의 압력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역내에 주지시키고자 했다. 동시에 한국은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과 도발 억지 및 한반도 안보상황의 안정적 관리에 대한 의견을 공유했다.
이후 동남아 순방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 중심 아세안 공동체(People-centered ASEAN Community)”의 개념을 기반으로 한-아세안 협력의 기본 골격을 제시했다. 이는 기존의 정부중심 협력체제에서 벗어나 좀 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사람 중심 국민외교’를 추진하겠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구상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비전인 동북아플러스책임공동체구상의 큰 골격 하에 내재되어있다.
▲ 한·ASEAN 정상회담
▲ EAS 정상회담
동북아플러스책임공동체는 번영의 축인 신남방 및 신북방정책, 그리고 평화의 축인 동북아평화협력 플랫폼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이는 다자협력의 관행이 미약한 아시아 역내 협력과 대화의 관행을 축적시킴과 동시에 강대국의 경쟁과 갈등구도를 완화시켜 협력의 제도화를 장기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이번 동남아 순방을 통해 달성한 <한-인도네시아 공동비전성명> 채택과 <한-인도네시아 특별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 등의 외교성과는 동남아 지역에 대한 한국의 관심과 공동이익의 존재를 환기시켰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신남방정책을 추진하기위한 초석을 놓았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지금까지의 정상외교 결과를 토대로
한국외교비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디자인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동남아순방 기간 동안 러시아와의 대화를 통해 신북방정책의 ‘9개 다리(9-bridge) 전략’, 즉 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영역에 대한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는데 합의할 수 있었다. 요컨대 지난 문재인 정부의 정상외교는 강대국의 경쟁구도 속에서 한국의 국가이익을 지켜내며 동시에 한국외교의 외연을 넓히고, 이러한 가운데 지역 내 경쟁하는 국가들의 이익과 구상들을 이어주며 협력을 촉진하는 교량국가의 역할까지 구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지금까지의 정상외교 결과를 토대로 한국외교비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디자인하는 일일 것이다. 평화를 추구하는 중견 국가로서 한국이 위와 같은 외교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량국가로서 기능하기 위한 네트워킹파워를 제고하며, 아시아 역내 현존하는 다양한 소다자협력과 다자협력간의 관계 속에서 한국이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지, 또한 이들 간의 관계를 한국의 국익을 고려할 때 어떻게 연결시켜 한국의 외교공간을 창출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할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필리핀을 방문해 첫 동남아 순방 성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역내 국가들은 소다자협력 및 다자협력에의 참여를 고려할 때 참여국의 범위와 협력 의제, 그리고 협력의 시간적 범위(time horizon)와 결과물에 대한 서로 다른 기대를 보유한다. 이것이 바로 역내에 매우 상이한 국가 간 조합의 소다자협력과 다자협력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둘째, 교량국가로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역시 구체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중견 국가로서 자신의 역량보다도 큰 영향력을 국제사회에서 발휘하는데 필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네트워크들을 이어주는 가운데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즉, 협력 촉진자, 혹은 단순히 매개자 혹은 연결국가(nodal power) 등 상이한 수준에서의 교량 역할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인데, 이는 협력 영역과 협력의 폭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한국이 ‘교량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이들 역할들 간의 우선순위화 과정은 필요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시아 안보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판단이다
또한 한국이 교량국가로 기능할 수 있는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시켜야할 것이다
셋째, 어떠한 영역에서의 교량국가 역할을 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한국은 이미 과거 정부로부터 다자협력의 경험을 다양하게 축적해왔다. 이미 한국이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분야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한국이 가지고 있는 우위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며, 현 정부가 외교비전과 시너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현 정부의 외교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시아 안보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판단일 것이다. 특히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과 중국의 일대일로와의 공진화 가능성이 다대한 가운데 양국의 군사안보경쟁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미국의 현실주의적 외교정책기조로 인해 아시아 역내 공공재 제공을 어떠한 식으로 분담하게 될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그 가운데 강대국의 시선이 분산될, 혹은 규칙기반 질서가 부재하게 될 영역은 어떠한 영역이 될 것인가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며 한국이 교량국가로 기능할 수 있는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시켜 나가야할 것이다.
▲ 아세안 +3 정상회의
<사진자료: 청와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