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통일 | 당신이 통일 주인공
‘같이 가는’ 사회적 기업이 되고 싶어요!
곤충사료 도소매업 운영하는 김민기 대표
개구리,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서다
농장 문을 열자마자 맛있는 쌀겨 냄새가 진동한다. 층층이 들어차 있는 노란 박스들에는 ‘유치원’, ‘중3’, ‘고2’ 같은 글귀들이 써있는데, 밀웜의 성장 단계를 적어둔 표시라고 한다.
김민기 대표는 2001년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왔다. 북에서는 송이버섯을 중국으로 밀수하는 일을 했는데, 중간에 잡혀 감옥살이를 하다가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 밀웜 사업을 하기 전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도왔다. 그러다 문득 식용 산개구리 사업이 떠올랐고 적당한 장소를 찾다가 지금의 담양까지 오게 됐다.
하지만 식용개구리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개구리 100마리를 키우면 절반 정도가 죽는데, 나머지 절반으로 낼 수 있는 수익과 사육료의 타산이 맞지 않았던 까닭이다. 개구리 사업은 그를 빈털터리로 만들었지만 김민기 대표는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섰다. 남북하나재단의 도움으로 사육장 건축 비용을 지원받은 덕분이었다.
▲ 김민기 대표가 운영 중인 밀웜 농장
▲ 농장에서 키우고 있는 밀웜들
그때부터 그는 밀웜에 미쳐 살았다. 덕분에 2015년에는 농촌진흥청과 기술보증기금에서 각각 1억 원씩을 지원받아 사업을 확장했고, 끊임없는 연구 끝에 곤충의 성장호르몬을 찾아내 사료용 밀웜 개발에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밀웜, 귀뚜라미, 굼벵이 등 웬만한 곤충사료는 다 판매하고 있어요. 저희는 협동 농가가 많아서 물량이나 완성도가 뛰어나거든요. 그런데 제 목표는 ‘식용 건강즙’이에요. 밀웜이 아무리 미래 식량이라고 해도 지금 당장 밀웜을 먹겠다는 분들은 없거든요. 조만간 식품 문을 열 생각이에요.”
밀웜 농장은 크게 3가지 관리가 중요하다. 먹이와 청결과 밀도 유지다. 채소는 3일에 한 번씩 넣어주고, 죽어 있는 송충은 바로바로 빼주는 것이 중요하다. 밀도 유지는 밀웜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한 박스 안에 적정량의 밀웜을 넣어줘 서로 부대끼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키운 밀웜은 마이크로웨이브 방식으로 진공 건조시켜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유통된다.
▲ 진공 건조시킨 밀웜을 포장 중인 직원과 김민기 대표
▲ 김민기 대표가 유통하고 있는 귀뚜라미 사료
서로 끌고 잡아주는 ‘같이 가는 기업’
그가 5년간 넘어지지 않고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같이 간다’는 경영 마인드 덕분이었다. 물론 ‘월 매출 1억’이라는 눈에 보이는 목표도 있지만 그렇다고 돈만 잘 버는 회사가 되는 게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누굴 돕는 게 쉽지는 않아요. 다달이 몇 십 만 원씩 빠지는 돈이 솔직히 아쉬울 때도 있고요. 사업하는 사람은 항상 돈에 쫓기거든요. 하지만 말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시작했어요. 이왕 같이 가는 거 사회에 필요한 일도 하면 좋잖아요.”
생각해보면 힘들지만 지금의 밑천이 된 일들도 많았다. 처음 담양에 내려와 50CC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며 곤충을 키우겠다고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했던 일, 1년간 일당을 두 배로 뜯겼던 일, 법률을 몰라 과대광고로 영업정지를 받았던 일 등 이야기를 꺼내자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담양군의원들을 비롯해 담양군의회, 담양경찰서, 담양기술센터 등 말만 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주는 곳들이 많았다고 한다.
▲김민기 대표가 그동안 연구, 개발해 획득한 밀웜사업 관련 특허증들
일로 외로움을 이겨내세요, 좋은 날이 옵니다
김 대표의 최종적인 꿈은 식품과 곤충사료를 유통하는 ‘사회적 기업’이 되는 것이다. 그가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고 자신과 같은 탈북민들을 채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군가와 ‘같이 간다’는 마인드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저는 백번 말하는 사람보다 한 번 움직이는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누가 시키면 되게 하기 싫잖아요. 하지만 진심으로 일하다보면 서로 말하지 않아도 돈독해지고 신뢰가 쌓인다고 생각해요. 저희 회사엔 그런 사람들만 남더라고요(웃음).”
▲ 밀웜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 김민기 대표
그는 탈북민들을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어렵고 힘든 데서 온데다 아무 연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래서 더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일수록 무서울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탈북민들은 생존력이 강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극복하는데 김 대표가 제안한 방법은 ‘자기 일에 미쳐 사는 것’이다. 한동안 일에만 매달리다 보면 모든 상황이 나아져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요즘 청년사업 교육을 이수하고 있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 덜컥 선정돼 정신없이 교육을 받는 중이다. 교육이 끝나면 건강즙을 비롯해 산개구리즙도 한 번 더 도전할 생각이다.
1인 기업으로 시작해 어느새 직원 3명과 함께하며 ‘같이 가는’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는 김민기 대표. 1년, 3년, 5년 뒤에는 그의 곁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