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통일 | 당신이 통일 주인공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
노력은 자기 몫”
서른아홉에 탈북해 8급 공무원 된 이청송 씨
기숙사 생활을 통해 시작한 ‘남한 공부’
드넓은 초지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생태공원 입구에서 전기차를 타고 10여 분 즈음 들어가면 시민들을 위해 마련해둔 캠핑장이 나타난다. 이청송 씨가 근무하고 있는 갯골캠핑장이다. 그는 작년까지 시흥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일하다 올 초 진급과 함께 이곳 생태공원으로 발령이 났다. 2014년 기술직 9급 공무원으로 임명을 받은 후 3년만의 진급이니 제법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원 수료 후 바로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에 들어갔어요. 한국에서는 오십 세든 육십 세든 누구나 배우고 공부하잖아요. 우선 사는데 필요한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전기 기술이었어요.”
청송 씨는 ‘전기시스템어과’를 선택했고, 아예 기숙사에 들어가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야 더 빨리 정착할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웃지 못 할 일들도 많았다. 커피를 마시려고 “고뿌 하나만 주십쇼” 했는데 ‘고뿌(‘컵’의 일본말, 북한의 일상용어)’라는 말에 어린 친구들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청송 씨가 느끼는 문화적 충격도 적지 않았다. 주로 농경지뿐인 북한과 달리 남한은 가는 곳마다 화려한 고층 건물이 세워져 있고, 긴 생머리에 짧은 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여자들을 거리에서 마주칠 때도 무척 낯선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학 공부’가 가져다 준 기회 ‘9급 공무원’
개발원 졸업 후에는 삼성, LG 등의 협력 업체에 취직을 했다. 학과 담당이셨던 주남규 교수와 대학 학장의 추천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열심히 노력하는 청송 씨가 하루 빨리 안정된 생활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덕분에 청송 씨는 1년 동안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으며 그간 배워온 기술들을 활용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이 좀 익숙해지면서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청송 씨는 하나센터 임영수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선생이 알려준 대로 교육청을 찾아가 인터뷰 과정을 마쳤다. 이후 청송 씨는 일을 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고려사이버대학교의 ‘환경조경원예학과’에 입학했고, 온라인 강의와 오프라인 실습 과정을 거쳐 졸업을 했다.
대학 공부를 하다 보니 지원해보고 싶은 채용공고들이 눈에 띄었다. 한 번은 인천 환경공단에서 정규직 채용공고가 올라와 지원을 했는데 서류와 시험은 통과했지만 면접에서는 떨어지고 말았다. 면접 탈락을 연거푸 세 번이나 겪은 후에는 괜한 욕심인가 싶어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는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시흥시 시설관리공단에서 ‘탈북민 출신의 기술직 9급 공무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소식이었다. 얼른 지원서를 낸 청송 씨는 서류, 시험, 면접을 모두 통과했고 2014년 7월 공단 9급 공무원으로 임명을 받았다.
“처음엔 출근하기가 두려웠어요. 혹시나 제 말투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거든요. 근데 기숙사생활을 하던 때를 떠올리면서 내가 먼저 다가가고 열심히 하면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겠지 하고 마음을 다시 먹었죠. 동료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배우면서 어울리니까 1년 뒤에는 편안해지더라고요.”
9개의 자격증을 가진 ‘이청송 사이버 학습왕’
청송 씨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배움의 자세는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다. 머리를 숙이고 배우다보면 한두 해만 지나도 일이 익숙해져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기 때문이다. 그 역시 첫 발령지에서 영어를 잘 몰라 영어 단어 밑에 한글로 발음을 써놓고 외우다시피 했다. 기계실에는 유독 많은 영어 단어들이 있는데 ‘온’, ‘오프’ 같은 작동 버튼까지도 사진을 찍어두고 틈틈이 익혀나갔다.
퇴근 후에는 틈틈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자격증을 땄다. 이렇게 청송 씨가 취득한 자격증만 9개, 2015년에는 환경교통사업본부 그린에너지팀에서 ‘사이버 학습왕 표창장’을 받았고, 작년에는 ‘상반기 마일리지 우수직원 표창장’을 받았다. 대형면허, 지게차운전자격, 택시운전자격, 화물운송자격, 소방안전관리자, 전기관리사 등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 취득은 물론 자원봉사, 헌혈까지도 뭐든 열심히 한 덕분이었다.
얼마 전에는 하나원에서 ‘선배 멘토’로 초청을 받아 특강을 했다. 이날 청송 씨는 딱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열심히 공부할 것’, ‘둘째 배울 때는 자존심을 버릴 것’이다. 청송 씨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준 생활신조 같은 것이었다. ‘0’에서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는 탈북민이 대학도 나오고 좋은 스펙을 가진 남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려면 뭐든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고향에 기술학교를 세우는 게 꿈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청송 씨와 함께 캠핑장을 둘러봤다. 시민들이 지금보다 즐겁고 편안하게 이곳을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가꿔나갈 것인지 설명하는 그의 표정에서 강한 책임감과 자신감이 묻어났다. “1년 뒤 다시 오면 캠핑장이 확 바뀌어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질문에 “능력 닿는 데까진 열심히 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다 채워지지 않은 배움에 대한 열정을 살며시 보여줬다.
“지금은 발령 초기라 할 일이 많은데, 조금 안정이 되면 대학원을 가려고 해요. 전기시스템제어 기술을 좀 더 공부해보고 싶어서요. 전문가가 되면 더 많은 기회들이 올 수도 있잖아요(웃음).”
청송 씨는 통일이 되면 고향에 돌아가 기술학교를 세우는 것이 꿈이다.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이 한국에서 받았던 배움의 기회를 되돌려주고 싶어서다. 그간 청송 씨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선생님들처럼 청송 씨도 고향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