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슈 | 포커스①
불확실성의 한반도 정세,
통일 공공외교로 헤쳐 나가야
한반도가 열강의 각축 속에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1880년, 조선 왕조의 예조(오늘날의 외교부에 해당)참의이자 제2차 수신사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김홍집은 청(淸)의 일본주재공사관 소속 한 외교관으로부터 조언을 듣는다. “중국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親중국) 일본과 결속하며(結일본), 미국과 연대하여(聯미국) 자강을 도모하라.” 오늘날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이라 불리는 해법이었다.
물론, 이 책략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 했고 조선은 결국 열강의 경쟁적 유린을 겪은 후 제국주의 일본에 강제 병합되었다. 당시 조선의 국력이 워낙 쇠잔한 탓도 있었지만, 조선지도자들의 인식이나 황준헌의 식견 모두 열강의 자국 이기주의와 제국주의적 야심을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불확실성은 물론 구한말과는 많이 다르다. 주변국들에 의한 노골적인 병탄이 추구되었던 제국주의 시대도 아니요, 우리가 당면한 난국의 속성도 국가의 물리적 존망까지를 우려해야 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국가이기주의가 지니는 잠재적 위험성은 오히려 더 살벌해지면 살벌해졌지 결코 덜 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미국 우선주의’의 기치 아래 깐깐한 대차대조표를 바탕으로 동맹관계를 관리해 나갈 것임을 거듭 암시하고 있다. 중국 역시 사드 배치 문제로 인한 갈등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그들의 위신과 이익이 걸린 일에는 언제라도 안색을 바꿀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반면,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자신의 길만을 강변하는 이중성을 보이면서 말이다. 역사 왜곡과 영토 문제에 대한 이견을 수시로 활용하고 있는 일본이나 한반도 문제에 대한 나름의 지분과 발언권을 은근히 강조하는 러시아 역시 만만치 않다.
분단의 현실은 이러한 주변국들의 국가이기주의에 우리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이다. 우리의 물리적 생존에 대한 위협은 과거와는 달리 한반도 내부, 즉 북한으로부터 가해지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과 시대착오적인 ‘수령’ 독재 그리고 호전적 대남전략은 한반도 안보의 최대 불안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더하여 주변국들의 전략적 경쟁은 한반도 밖의 문제에까지 우리를 연루(連累)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주변국들의 경쟁과 연대가 복합적으로 전개되는 구도 속에서 북한의 군사위협까지 증대되면서, 우리가 지닐 수 있는 전략적 융통성과 선택지 역시 심각하게 줄어든 것이 현실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남북한 모두가 주변국에 대한 레버리지는 점점 상실되는 반면 주변국들의 분단 활용 카드는 더 다양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결과는 분단의 영속화와 한국의 성장동력의 약화, 그리고 한반도 안보 불안의 고질화이다. 평화적 남북공존과 통일은 그만큼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미래 환경이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국력과 세계적 지명도가 과거 구한말 시대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대한민국은 물리적인 면에서도 G-20의 일원으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한류’(韓流)의 사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세계를 매혹시킬 소프트파워의 현재적ㆍ잠재적 능력도 누구 못지않게 풍부하다. 외부 여건의 격변에 전전긍긍하며 몸을 사릴 만큼 나약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제 세계 여론에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꿈꾸는 평화공존과 통일의 비전은 무엇이고, 이것이 왜 지역의 안정과 세계 공동의 평화ㆍ번영에 긴요하며, 한국을 지원하고 돕는 것이 주요 국가들과 세계의 이익에도 얼마나 부합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통해 설파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정부 차원의 외교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지구촌 가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공외교를 통해 더욱 활기차게 확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넘어선 가치가 함께 가미되어야 한다. 즉, 자칫 한반도에 국한된 것으로 오인 받을 수 있는 ‘통일’이라는 키워드에 더하여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함께 전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다른 국가들을 침략함으로써 이익을 취하지 않은 평화의 역사가, 물리적 충돌을 통하지 않고도 교섭과 협상을 통해 오히려 영토를 확장한 서희 외교의 DNA가 유산으로 남겨져 있다.
이를 다른 국가들에게 설명해 나가는 소프트파워 역시 기존 강국들의 은근한 강압이나 일방적 설득과는 격이 달라져야 한다. 상대방을 움직이기 위해서 나도 일정부분 변하는 ‘공감’의 소프트파워를 기르고 활용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한반도流’의 열성팬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얻어낸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지지와 응원을 바탕으로 이제 완고하게 핵이라는 위험한 무기에만 집착하려고 하는 평양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북한의 지도층들에게 자신들이 취하고 있는 길이 얼마나 스스로를 위험하고 피폐하게 만드는 일인가를 자각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노력이 꾸준히 전개되면 설사 북한의 지도자들이 미망(迷妄)을 벗어나지 못 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주민들은 서서히 각성하게 되며, 이를 통해 또 다른 변화가 도래할 수 있다. 군사력을 비롯한 우리의 물리적 대비태세를 조기에 강화하는 일은 물론 안보와 통일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보다 중ㆍ장기적으로 평화적 통일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고 국제적 공감대를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통일 공공외교ㆍ평화 공공외교 역시 그 못지않게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이다.
<사진자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