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 ▶ 남한에 온 지 얼마 안됐는데, 처음에는 낯가림이 엄청 심했어요. 계속 쓸쓸하단 생각만 들고 친구 많은 애들을 보면 부러워서 눈물도 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일주일 후 대구합창대회에 갔을 때 제 앞에 앉은 오빠 언니들이 저랑 장난도 쳐주고 이름도 불러줘서 너무 좋았어요. 제 이름도 모르는 줄 알았거든요. 그 때부터 갑자기 친해졌어요.
화 ▶ 저도 처음 왔을 땐 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하지만 항상 같이 합창하면서 인사하고 매일 어울릴 수 있으니까 행복해요.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서로 무엇이 힘든지 알 수도 있고요. 제가 첫 번째로 나간 대회가 KBS 전국민합창대회였는데 친구들이 잘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보고 ‘아 나도 노력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전 중국에 있을 때 그렇게 착한 학생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 아이들이 너무 착하니까 저도 따라서 착해지는 것 같아요.
기원 ▶ 저도 처음에는 친구가 없어서 거의 한두 달 집에만 있었는데 2013년도에 이 학교에 오게 됐고 애들과 함께 있으니까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또 합창을 하면 자신감도 생기고 말도 빨리 배울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유나 ▶ 광복 70년 경축 전야제 때 서울시청광장에서 이승철 선생님과 합동 공연을 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박수를 치면서 우리를 반겨주셨어요. 잘하지도 못 하는데 박수를 쳐주시니까 온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기원 ▶ 아시아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공연을 했을 때 관객 쪽을 내려다봤는데 많은 분들이 울고 계셨어요. 우리 합창단의 노랫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별로였거든요. 그런데도 그 분들께 감동을 드릴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어요. 저도 그때 울 뻔 했어요.
윤미 ▶ 저는 ‘터’라는 노래를 부를 때가 제일 좋아요. 이 노래가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라고 하던데 불러보니까 와 닿는 것도 있고, ‘나도 이제 한국에 조금씩 적응해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부를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원명 ▶ 북한에서 있었던 이야기해도 돼요? 저 여섯 살 때요, 밤에 있잖아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잠자다가요. 일어나니까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댔어요. 심장마비에 걸렸대요. 엄마가 가끔 보고 싶고 아빠 형아 나만 왔는데 누나와 친척들도 보고 싶어요. 그래도 남한에 와서 아빠가 휴대폰을 사줘서 좋아요.
화 ▶ 북한엔 굶는 사람, 추위에 고생하는 사람,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희 엄마처럼 중국의 농촌으로 팔려가고 원하지 않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여자들이 너무 많아요. 한국에도 힘들게 왔는데 통일이 되면 탈북하지 않아도 되고 슬플 일도 없을 것 같아서 통일됐으면 좋겠어요.
혜송 ▶ 북한에서 언니랑 헤어져 혼자가 됐는데 외삼촌의 도움으로 산 속에 숨어 있다가 중국, 태국을 거쳐 하나원에 왔더니 언니가 있었어요. 전 통일이 되면 아빠 묘에 한 번 가고 싶어요. 산에도 올라가보고 싶어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산을 많이 올라갔거든요. 그때가 그리운 것 같아요.
수련 ▶ 제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통일이 꼭 됐으면 좋겠어요.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고향에 가서 엄마를 만날 거예요. 통일이 안 되더라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만이라도 있으면 좋겠어요.
지훈 ▶ 전 혜산에 가서 친구들과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요. 압록강에 친구들이랑 수영하러 자주 갔었거든요. 그런데 빠지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유나 ▶ 전 실내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리고 조각가가 될 거예요. 학교를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한 번은 직업체험학교에 데려가주셨어요. 실내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저랑 적성에 되게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쪽 방면으로 소질을 개발하려고요.
수련 ▶ 저는 꿈이 좀 많아요. 처음에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고 그 다음에는 심리상담사, 그러다가 요리사가 되고 싶었는데, 며칠 전에 찾은 꿈은 두리하나국제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겪어봤으니까 그런 애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기원 ▶ 우리 같은 아이들을 구출해주고 한국에 데리고 와 돌봐주는 목사님이 되고 싶어요. 학교에 온지 얼마 안됐을 때는 한국말도 못하고 뭘 잘 몰랐는데, 지금은 어려운 사람들 돕는 것이 너무 좋게 느껴져요.
화 ▶ 국제변호사와 심리상담사 두 가지 꿈이 있는데 사실 변호사는 부모님이 원하셔서 생각해 본거고 실제로는 청소년 심리상담사가 되어서 나쁜 길로 가지 않게 잡아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 대학에 가더라도 이 학교에 와서 계속 봉사활동도 하고 사회에 나가면 여기 학생들을 지원해주고 싶어요.
<글/사진.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