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무 행복해요. 완전히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밴드도 생겼고 얼마 전에는 일일드라마 사운드트랙 OST도 연주했어요.”
11월 8일 서울시 ‘문화가 흐르는 서울 광장-굿바이 콘서트’ 참가를 앞두고 시청 앞에서 만난 유진박은 오랜만에 밴드와 함께해서인지 상당히 들떠 있었다. 오프닝 공연을 맡은 유진박과 밴드 구성원들은 무대 음향장치를 점검하고 호흡을 맞춰보느라 분주했다. 마침내 무대 위 조명이 켜지고 우비를 입은 채 그의 공연을 기다리는 팬들을 향해 유진박은 열정적으로 바이올린 현을 켜기 시작했다. 때론 슬프고 느리게, 때론 빠르고 강렬한 속주를 자유자재로 선보이며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그에게 관중들은 환호했고 앵콜을 연호했다. 음악에 몰입해 있는 유진박에게 현실의 그 어떤 것도 결코 걸림돌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3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5년 뒤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며 10살 땐 세계적인 웨인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고 13살 때는 링컨센터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줄리어드 스쿨 콩쿨 우승, ISK컴피티션 대상 등 6개 콩쿨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16세에 전자바이올린을 시작한 후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유진박은 미국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슈퍼볼 전야제 축제장에서 연주를 했고 베넷사 메이와 함께 마이클잭슨 공연에 출연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국내에서 인기를 구가해왔지만 모든 스타들이 그러하듯 점점 대중 앞에 설 기회가 줄어들 무렵 유진박은 2009년 소속사로부터 감금과 폭행을 당했다는 파문이 일면서 다시 사람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게다가 20대 초반부터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양극성 장애를 앓아왔다는 이야기도 언론에 보도됐다. 설상가상으로 올 1월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하지만 친인척들의 요청으로 데뷔 때 함께 했던 김상철 대표와 손잡으면서 유진박은 부활을 시작했다.
‘둘이 눈만 뜨면 붙어있다’는 김상철 대표는 유진박에게 먼저 밴드를 찾아줬고, 그의 바이올린 연주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선곡해 콘서트장을 다닐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새로 시작된 일일드라마
의 타이틀곡을 연주했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유진박에게 음악이란 ‘숨쉬기’다.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좋고, 하는 게 너무 좋고, 배우는 게 너무 좋아서란다. 특히 유진박은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하는 즉흥 연주를 선호한다. 미리 정해진 악보나 프로그램 없이 사전에 정해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연주자끼리 호흡을 맞추면서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재밍(Jamming)의 경험들이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자신과 스타일이 다른 많은 아티스트들과 협연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았다.
“혼자서만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음악적인 시도가 있어야 해요. 폴 매카트니가 건즈 앤 로지스나 스팅과 함께 콜라보 공연을 하는 것처럼, 국악이나 색소폰과도 공연해보고 여러 가수들과 콜라보도 하면서 음악 스킬과 릴레이션십을 많이 배워야 해요. 악기 들고 있는 사람들 항상 스킬을 키워야 하고, 스펀지처럼 항상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게 좋아요. 음악을 통해서 난 론리하지(외롭지) 않아요.”
유진박은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를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로 꼽았다. 그래서 지미 헨드릭스와 밥 딜런이 초창기에 정기적으로 공연을 했던 카페 Wha에서 하우스밴드와 오랫동안 연주를 했던 경험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뿐 아니라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주도하는 등 ‘평화롭고 자유로운’ 그의 이미지 또한 사랑한다.
“중요한 건 평화예요. 저의 2집 음반의 타이틀도 ‘피스’로 정했잖아요. 장난 치다가 친구 사이에도 때릴 수 있는데 그것도 폭력이에요.”
지난 10월 민주평통의 ‘평화통일 청년 한마당’에서 공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통일 역시 그런 평화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슬픈 생각이 들어요. 수십 년간 서로 보지 못하고 살아온 이산가족들이 떠오르니까요. 한국과 북한은 한 나라였으니까 대립하지 말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남북간에 커넥션을 이루면서 통일을 앞당겼으면 좋겠어요.”
유진박의 음악은 자유롭다. 장르와 관계없이, 어떤 악기와도 접목을 시도하며 끊임없는 크로스오버, 퓨전을 통해 진화하고 있다. 40대에 접어든 그는 이제 음악에 감정을 보다 풍부하게 실을 수 있게 됐고 원숙미가 더해졌다. 흐트러졌던 연주력이나 연주 폼은 금세 제자리를 찾았고 ‘흥’에 사로잡혀 무대마다 새로운 느낌의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무대는 그가 숨 쉬는 공간이자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비록 힘든 길을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유진박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많은 음악팬들이 있는 나라 한국에서 다시 한 번 재기를 꿈꾸고 있다. 그가 개인적인 불행을 털고 그의 음악 속에 평화와 자유로움을 한껏 담아 대중 앞에서 화려하게 비상할 날을 기대해 본다.
<글/사진.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