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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감 좌충우돌 남한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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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빨리 한국에 올 걸 후회했어요 
                    
                    13살 무렵 북한을 탈출한 뒤 23살이 되어서야 한국에 온 민호(가명, 28세)는 중국에서 한국 종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10년간 몸을 숨기며 살아왔다. 지금은 대학에서 행정학을 공부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그는 좀 더 어린 나이에 한국에 왔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후회했지만, 지금이라도 남한에서 미래를 준비하게 돼 다행이라며 웃었다.

남한 PC방에서 온밤을 샜어요

함경도가 고향인 민호는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와 산에 숨어 살았다. 벌목일을 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버지는 이후 헤어져서 안타깝게도 생사불명이 되셨고 엄마는 남한으로 왔으며, 민호는 중국 내 한 종교공동체에서 10년을 살았다. 2011년 남한으로 건너와 엄마와 함께 탈북민 임대아파트에 살게 된 민호. 그는 ‘이제야 내 방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6일정도 굶다가 허약 3단(영양실조) 상태에서 북한을 나왔어요. 중국에선 다 같이 숨어 지내야 했고 거주지가 발각돼 잡혀갈까봐 연길이나 청도 등 여러 지역을 옮겨다니다 보니 혼자만의 공간이란 게 없었는데 아파트에 오고부터는 마음 편히 누워서 잘 수 있어서 더 없이 좋았죠.”

이미지 민호는 매달 소정의 탈북민 정착금을 받게 됐지만 용돈이란 걸 처음 손에 쥐게 되자 계획성 있게 돈을 쓰는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핸드폰을 샀는데 인터넷 속도도 빠르고 영화도 볼 수 있어서 내내 끼고 살았어요. 그랬더니 첫 달 데이터 요금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청구됐더라고요.”

게다가 아직 남한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한 터라 PC방에 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PC방에만 가면 ‘온밤을 새고’ 새벽이나 아침에 나오곤 했다고. 또한 중국에서는 주로 걸어서 다니곤 했는데 남한에서 ‘택시’라는 걸 타보니 편안하고 좋아서 자주 택시를 이용했다. 그 결과 두번 째 달에도 민호는 용돈이 부족해 엄마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PC방도 가고 싶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도 보고 싶었던 민호는 고민 끝에 스스로 돈을 벌기로 했다.

민호는 당시 조개구이집에서 일을 했는데 손님이 자신을 부를 때마다 크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조개 이름도 잘 모르겠고, 심지어는 냅킨이나 포크, 나이프란 말도 몰랐거든요. 칼이라고 하면 되지 나이프라고 하니깐 모(못)알아듣죠. 그 뒤로 제조업체 생산라인에도 있었는데 스빠나, 뺀치, 파이프 같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을 몰라 적응을 못 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 도구를 써본 적이 없으니 뭘 가져오라고 시켜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더라고요.”

369게임을 MT가서 처음 해봤어요

그래도 중국에서 몇 년을 체류한 탈북민들은 막 북한에서 나온 사람들보다 남한 적응이 빠른 편이다. 컴퓨터 켜는 방법도 몰랐다는 학생, 가마에 밥을 해먹다 보니 전기밥솥이나 가스레인지 사용법을 몰랐다는 아주머니까지 북한에서 바로 나온 사람들은 생활용품 사용법부터 배워가야 했지만 민호는 지하철을 처음 타본 것 외엔 크게 어려운 점이 없었고 공동체에서 남한 교과서로 기초학력을 쌓은 덕분에 검정고시도 가볍게 패스했다. 그러나 수업시간만큼은 늘 긴장이 됐다. 민호는 고향이 북한이라고 하면 친구들이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할까 봐 중국에 조기 유학을 다녀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말투가 어색한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뭔가 궁금한 게 있어도 북한말이 튀어 나오면 어떻게 하지? 말투가 이상하면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도저히 손 들고 질문을 못 하겠는 거예요. 어느날은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시다가 제 이름 옆에 ‘외(외국인)’ 자가 있으니까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아, 정말 완전히 따분해(당황해)가지고... 수업 끝나고 말씀드리겠다고 해서 겨우 넘어갔던 적이 있어요.”

이미지 고향이 어딘지 묻는 것 외에도 황당한 일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술 먹기 게임이다.
“학과 아이들과 다 같이 MT를 갔는데 369 술 먹기 게임을 하는 게예요. 저는 한 번도 그런 게임을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날 처음 배워서 하려니까 게임에서 지기만 하고 계속 술을 마시게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애들 말로는 제가 바로 테이블에 꽝 엎어져 잤대요. 그 후부터 ‘아 술은 조금씩만 마셔야겠다’고 생각했죠.”

좀 더 빨리 왔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중국에 머물렀을 때 민호는 선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탈북 고아들을 보호해주고 먹여주고 공부까지 시켜준 종교인들이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민호는 남한 대학에 다니면서 공무원이라는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며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공무원이 되면 저처럼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 도와주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여기까지 왔는데, 제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산다고 하면 미안해질 것 같아요. 5급을 준비하고 있긴 한데 솔직히 어렵지요. 제가 나이가 어렸다면 도전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 2년만 더 있으면 서른 살이니 목표를 낮춰 잡을 수밖에 없겠죠.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한국에 올 걸 그랬어요.”

이미지 하지만 민호는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배우고 익혔던 중국어가 또다른 경쟁력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수업시간마다, 시험 칠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영어, 외래어들은 아직도 어렵게만 느껴지지만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할 자신은 있단다.

“저는 출발선이 좀 다르잖아요. 여기(남한) 애들이랑 똑같이 돌아다니면서 놀면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수업이 끝날 때마다 도서관에 갔어요. 1시간이든 2시간이든 도서관에서 그날 배운 부분을 읽어보고 다음날 배울 것도 미리 공부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글. 기자희>

※위 사례에서 소개된 북한의 문화는, 북한이탈주민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으로 현재 북한의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역과 탈북 연도를 참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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