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저는 카자흐스탄 사람이 아닌 고려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전 세계에서 모인 재외동포 기업인들을 만나보니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달라 비록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같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강스베틀라나 자문위원은 지난 10월 세계한상대회에 참가한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강 자문위원은 고려인으로서 강한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현재 카자흐스탄 내 고려인들이 타 민족보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부유하게 살고 있고, 고려인 3세의 경우 대학졸업자가 93%에 이르는 등 학력수준 또한 높아 정계와 학계, 문화계에서 다양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강스베틀라나 자문위원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된 고려인
들의 첫 정착촌인 우슈토베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1937년 8월 스탈린은 ‘일본과 전쟁이 벌어지면 고려인들이 일본을 지원할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연해주에 거주하던 고려인 17만여 명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다. 당시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도착한 곳이 바로 우슈토베다. 강 자문위원 가족은 이곳에서 카자흐스탄인들의 도움을 받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정착했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한국식으로 식사를 해왔고 추석이나 한식 등 고유 명절엔 성묘를 가기도 했다는 강스베틀라나 자문위원은 한국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집안 분위기 탓도 있지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고려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강해지고 스스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강스베틀라나 자문위원이 처음 운동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유도로 시작해서 가라테, 태권도를 두루 섭렵했다. 당시는 소련연방 때이기 때문에 한국이 주도하는 WTF(세계태권도연맹) 태권도는 없었고 북한이 주도하는 ITF(국제태권도연맹) 태권도를 배웠다.
이후 꾸준히 운동을 이어간 강스베틀라나 자문위원은 WTF 7단, ITF 5단, 합기도 5단, 한국 경호무술 6단의 단증을 갖고 있다.
30년 넘게 운동을 해 왔던 강스베틀라나 자문위원은 카자흐스탄 국가대표로 태권도 시합에 나가서 금메달 땄던 경험을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다. 비록 카자흐스탄 국기를 달고 출전했지만 고려인으로서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를 배워 세계챔피언이 됐다는 사실이 더 뿌듯했다며 ‘오리지널’ 한국인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강베스틀라나 자문위원의 메달 획득을 계기로 카자흐스탄 국립체육대학에 태권도학과가 개설되기도 했다.
하지만 ‘구소련연방 최고단자’라는 강스베틀라나 자문위원에게도 어려운 점이 있으니 바로 한국어 공부다. 대사관, 민주평통 그리고 여러 교민단체 등에서 고려인 한글학교를 후원해주고 있고,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지만 잦은 출장으로 꾸준하게 배울 시간이 없어 아직까진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진 못한다고 한다.
강스베틀라나 자문위원은 카자흐스탄 내 문화행사에서 태권도 시범단 공연을 펼쳐오면서 민주평통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민주평통이 남북한 간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라는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자문위원이 됐다. 1992년 평양월드챔피언십 대회에 참가해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강 자문위원은 "평양에 머물 때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하고 대화 조차 감시의 대상인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며 북한주민들이 자유를 얻고 잘 살 수 있도록 하루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17기 자문위원으로서 태권도 등 스포츠를 통해 남한과 북한, 남한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글/사진.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