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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통일 느낌 있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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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상처가 아픈 이유, 전북 군산

모진 풍파 속 오래 묵은 상처는 기어이 흉터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흔적과 마주할 때면 어쩐지 불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상처가 남긴 아픔과 고된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군산을 여행하다 보면 문득문득 불편한 기분이 들곤 한다. 분명 상처는 아물어 흉터로 남았건만, 울컥 코끝이 시리고 눈꺼풀 안쪽이 뜨거워진다. 그럼에도 100여년의 시간이 덤덤하게 고여 있는 도심을 거닐었다. 불편하다고 외면하기엔 살아있는 우리가 과거에 진 빚이 너무 많기에 그리고 그 과거를 지나 오늘과 다시 내일을 살아야 하기에 가을햇살아래 조금 불편한 여행을 시작했다.

오래된, 하지만 여전히 낯선 ‘군산항’

서해안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라 해서 당연하게 너른 갯벌과 깊은 바다가 어우러진 서해의 풍광을 상상하며 군산 내항부터 찾았다. 하지만, 수심이 낮아 더이상 큰 배가 드나들지 못하는 항구에서 펄떡거리는 생물도 분주한 어부들의 발걸음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시간이 멈춘 듯 오래된 목조건물들만이 한가한 부둣가를 지키고 있다. 어림짐작하기에도 몇십 년은 한 자리를 지켰을 법한 오래된 건축물들이지만, 낯설게만 느껴지는 까닭은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산항 군산은 곡창지대인 호남과 충청지역이 인접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쌀 수탈 창구로 이용됐다. 덕분에 창고마다 쌀이 넘쳐나고, 매일 일본으로 식량을 실어 나르는 선박들로 항구는 북새통을 이뤘지만, 정작 이 땅의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던 우리네 아픈 역사의 흔적이 도심 곳곳에 남아있다. 도무지 낯설기만 한 부두 앞 건축물들 역시 그 일부다.

아프지만, 마주 봐야할 과거의 흔적 ‘근대문화역사거리’

요즘은 ‘근대문화역사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거리를 따라 당시의 관공서와 은행, 회사들이 사용했던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역, 한국은행과 함께 국내 3대 서양 고전주의 건축물로 손꼽히는 (구)군산세관은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건축자재를 수입해 완공된 생선 비늘을 닮은 동판 지붕과 뾰족한 첨탑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낮에는 세관 사무실로 밤에는 연회장으로 사용됐었다는 내부에는 당시 군산항의 모습을 짐작게 해주는 흑백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구)군산세관 바로 옆으로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군산의 해양물류전시관과, 어린이체험관, 특별전시관, 근대생활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근대생활관은 1930년대 군산항과 상점, 기차역 등을 고스란히 재현해, 일제치하에서도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 민족의 삶을 만날 수 있다.
군산세관과 근대역사박물관

우리 땅에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 ‘(구)히로쓰가옥’, ‘동국사’

당시 경제활동의 흔적이 부둣가 주변에 남아있다면 생활의 흔적은 원도심 지역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적산가옥은 (구)히로쓰 가옥이다. 적산가옥이란 ‘자기 나라의 영토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의 재산 또는 적국인의 재산’을 뜻하는데 주로 해방 후 일본인이 남기고 간 건축물을 지칭한다. 일제강점기에 대규모 포목상을 했던 히로쓰가 건축한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대나무를 구부려 만든 둥근 창문 등이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하지만, 감탄도 잠깐, 한 집에 대문이 다섯 개나 될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는 가옥을 바라보자면, 이 집을 짓기까지 흘렸을 우리 민족의 눈물이 절로 생각나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 없다.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 '히로쓰가옥'

동국사 대웅전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국내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 ‘동국사’를 찾는다. 1913년 일본인 승려에 의해 세워진 동국사는 대웅전과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것이 특징이다. 사실 동국사는 한국의 순수불교를 일본화하기 위해 지어진 사찰이다. 나라를 빼앗고, 언어를 빼앗고, 이름을 빼앗고 그것으로 모자라 종교마저 식민지화 하려 했던 일본의 치밀했던 계획은 결국 물거품이 됐지만, 당시 일본의 강제침탈에 도움을 줬던 일본 불교계는 깊은 참회와 사과의 뜻을 담아 긴 장문의 글을 비석에 새긴 뒤 동국사 뜰 앞에 세웠다. ‘참사문비’가 그것이다. 그 몇 글자로 감히 위로 될 수 없는 아픔이지만, 그래도 구구절절한 사죄의 말 덕분에 잠시 울분을 삭인다.

옛 흔적은 그리움으로 남는다

군산 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단어 중 군산의 풍광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는 바로 ‘향수’일 것이다. 옛 과거에 대한 흔적은 곧장 그리움으로 물든다. 돌아갈 수 없기에 더 간절해지는 그 시절의 풍경들. 국내에서도 손꼽힌다는 빵집의 야채빵을 입에 물고, 영화 속에 등장했던 오래된 사진관과 좁은 집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철길마을을 걷다 보면 어느새 추억에 빠져든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속 사진관을 재현해낸 초원사진관과 경암동 철길마을은 사진 명소로 더 유명한 곳이다. 특히 철길마을은 신문용지 제조업체의 원료를 나르기 위해 놓인 좁은 철길을 사이로 두고 코앞으로 판잣집들 자리하고 있어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어느덧 녹슬기 시작한 철로 위에 서서 말간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면, 잊고 살았던 어느 가을날의 추억도 떠오른다. 추억에 젖기에도 사진을 촬영하기에도 좋은 장소지만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생활지역인 만큼 배려가 필요하다.
초원사진관과 경암동 철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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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내일은 아프지 않기를 ‘금강하굿둑’

금강하구 오랜 역사의 흔적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몸도 마음도 무거워진다. 잊지 말아야 할 상처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모처럼 여행을 우울한 기분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는 법. 부랴부랴 금강하굿둑으로 향했다. 이 가을이 좀 더 깊어진다면 철새들을 볼 수도 있겠지만, 철새를 못 본다 하여 서운할 것은 없다. 탁 트인 금강의 넉넉함만으로 부러 발길을 한 보람은 톡톡히 보상받는다. 급할 것 없이 잔잔히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며, 흘러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 생각한다. 어제의 상처가 쓰리고 아프다면 내일의 어제가 될 오늘은 더 가치 있게 보내리라. 다짐도 잊지 않는다.

<글. 권혜리 / 사진. 나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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