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가명, 18세, 고1)이는 탈북민 엄마와 중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로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에 들어왔다. 부모님은 남한 사회에 정착하느라 바빴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 훈이는 방과 후 몇몇 친구들과 놀러 다니거나 인터넷 게임중독이 걱정될 정도로 밤늦게까지 게임을 했다. 서성란 자문위원은 그 무렵 훈이 엄마를 알게 되면서 가정 사정에 대해 듣게 됐고, 어깨동무하기 멘토링을 통해 훈이의 멘토가 되어주었다.
2013년 훈이네는 군포에서 의왕시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훈이는 매일매일 총 여섯 번이나 차를 갈아타면서 이전 학교로 통학하고 있었다. 전학 절차도 잘 모르고 전학하면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라고 했다. 중3 학기가 얼마 남지 않아 전학은 어렵다고 판단한 서 자문위원은 고등학교라도 집 근처 인문계로 진학시키고 싶었지만 성적이 따라와 주지 않았다. 이에 훈이의 성적을 올리고자 지인의 공부방 학원을 소개해주었고, 저렴한 비용으로 전과목 1:1 학습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학습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2개월 후 시험에서 훈이 성적은 평균 30점이 올랐고, 나중에는 무난하게 집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학교에서도 진보상, 노력상 등을 받는 등 선생님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으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고요.”
훈이는 새로운 이름을 갖기도 했다. 본명에 쓰인 한자가 중국식 이름이어서 개명을 권장했는데, 알고 보니 중국인인 훈이의 아빠 성씨도 법적으로 미등록된 상태였다. 서성란 멘토는 직접 법원에 가서 상담한 뒤 서류를 처리해주기도 했다.
서성란 자문위원은 훈이 엄마, 아빠의 ‘남한사회적응 멘토’ 역할도 겸했다. 당시 훈이 아빠는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허리가 자주 아팠고, 통증이 심한 날엔 직장을 나가지 않았다. 엄마는 밤늦게까지 하는 외식업소를 운영했지만 손님이 없어 ‘공치는’ 날이 많았다. 서 자문위원은 먼저 아버지를 지인의 공장에 취직시켜 주고 일정한 월급을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훈이 엄마는 조리사자격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근 복지관조리사로 취업할 수 있도록 했지만 얼마 안 가 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취업 대신 당분간 공부를 더 해보겠다고 했는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탈북민에게 지원되는 혜택 중 하나로 직업훈련교육을 신청했지만 이미 교육비를 다 사용했기 때문에 더이상 무료로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전에 잠시 다녔던 학원에서 계속 학비를 수급해갔던 것. 서 위원은 민주평통 법률자문위원을 찾아가 상담하고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지자체 홈페이지 게시판에 부당함을 알리는 등 적극 나서서 학원비를 다시 환수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아빠는 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이 됐고 엄마는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있게 됐으며 아들은 ‘모범생’이 된 훈이네. 동화책이라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8개월 뒤 훈이는 뒤늦게 사춘기를 앓았고 엄마는 함께 살게 된 중국인 시댁식구들과 갈등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다리를 다쳐 산재 혜택은 받았지만 집에서 쉬고 계셨다.
“공부나 교우관계, 게임중독 문제 같은 건 어찌 보면 쉬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겉으로 드러나는 데다 제가 해결해 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사춘기는 달라요. 훈이는 키가 자란만큼 생각도 자라고 있고, 부모 역시 아이의 정신적 성장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걸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대화를 포기하게 되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거든요.”
최근 집안에 불화가 생기다 보니 엄마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그만큼 훈이의 표정도 더 어두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부분은 개입하기 어렵다 보니, 훈이가 이야기를 털어놓고 상담해올 때마다 들어주고 같이 걱정해주는 게 요즘 서 위원의 멘토링 방식이다.
서성란 자문위원과 같이 만난 훈이는 훤칠한 키에 멋진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훈이는 성적이 많이 올라서 선생님들이 칭찬하신다고 자랑을 했다.
“중학교 때 다녔던 그 공부방에 계속 다니고 있어요. 거기 다니면서 성적이 많이 올랐거든요. 특히 역사가 어려웠는데 멘토 선생님(서성란 자문위원)이 책을 많이 권해주셔서인지 이젠 역사도 잘해요.”
수학, 영어 성적은 괜찮은지 물었더니 “나쁘지 않죠”라며 환하게 웃는다. 옆에서 서 위원이 “애가 영특하다”고 거들었다. 훈이는 서 자문위원과 체험, 캠프 등에 다녀온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근처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제일 좋다고 했다.
확실히 훈이는 올봄에 비해 훨씬 성숙해 있었다. ‘돈 많이 버는 직장에 다니는 게 꿈’이라던 아이가 이젠 애니메이션 성우를 하고 싶다며 꿈을 당당하게 말한다. 서성란 자문위원이 훈이의 꿈을 응원했다.
“훈이의 꿈이 무엇이든 지금은 자신감과 적극성, 리더십이 중요한 것 같아요. 중간에 좌절하지 않고, 노력했을 때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오는구나라는 것을 자꾸 경험하다 보면 꿈을 향한 길은 얼마든지 열릴 겁니다.”
서성란 자문위원은 멘토링을 하면서, 북한이탈주민들이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심지어는 그런 문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민주평통의 많은 자문위원들이 네트워킹해서 움직여주면 탈북민정착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통일의 순간이 왔을 때 통일시대를 그냥 맞이하는 게 아니라 ‘통일의 주역’이 되고 싶다며, 우선은 지금 남한에 와 있는 탈북민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부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글/사진.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