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패션은 도덕적 통제의 대상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의복은 개인의 취향이나 유행의 문제이지만 북한에서는 정치사회적인 생활 영역이다. 법으로 규제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통제된다. 어떤 머리 모양을 하건, 어떤 옷을 입건 간에 사회적으로 정한 일정한 기준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른바 ‘미풍양속’, ‘사회주의 도덕교양’의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북한의 교양방송물 가운데 ‘이런 현상을 없앴시다’ 시리즈가 있다. 도덕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주제의 건전한 교양방송물이다. ‘이런 현상을 없앴시다’ 시리즈 중에는 패션과 관련된 내용도 있다.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따라 사회주의적인 정서와 미감에 맞는 옷차림을 하자’는 주제로 제작된 <겉멋이 들어>라는 작품이 대표적이다.
내용은 이렇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집단으로 견학가기로 한 날 주인공 현옥은 남보다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잡지에서 본 옷을 보면서 영문로고와 표범이 그려진 문양을 점퍼에 새겨 넣고 싶었다. 수예연구사인 친구를 불러 문양을 새겨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친구는 ‘이 글자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 ‘어쩐지 우리의 미감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별스럽다’면서 거절한다. 현옥은 친구가 야속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점퍼차림에 나팔바지를 입고 역으로 나섰다. 기차역에서 현옥을 옷차림을 본 동료들은 한결같이 ‘별스럽다’며 흉을 보았다. 현옥은 옷차림을 달가워하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 조직을 위해서 갈아입고 오겠다’면서 집으로 향했다. 드라마의 결론은 '사회주의 미감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 도덕적이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으로 끝난다. 1988년에 제작된 방송물이지만 최근에도 방영되었다. 복식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방송교양물이다. 북한에서 패션을 통제하는 이유는 옷차림에 도덕성과 의식이 반영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옷이 그 사람의 정신상태, 심리상태를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도 해이하다고 보는 것이다.
대체로 북한에서 권장하는 복식은 단정함과 간결함, 실용적이면서 기능성을 갖춘 것이다. ‘깨끗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기본으로 하면서 ‘다양한 옷차림’을 통해 미감을 나타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옷차림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1990년대부터는 민족성이 결합되었다. 사회주의적 미감에 더하여, 조선옷을 통해 ‘민족의 고유한 특성’을 보여주자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옷차림을 해야 하는 지는 교양방송이나 옷 전시회, ‘따라 배우기 운동’ 등을 통해 인민에게 제시한다. 남한 주민들은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꼭 같은 옷을 입고 싶어 하지 않지만 북한에서는 같은 옷을 입는 것을 선호한다.
북한처럼 집단주의가 강한 사회에서는 튀는 옷차림은 곧 조직의 단결을 방해한다고 보는 것이다. 경제난 이후 의복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의복을 입거나 시장을 통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최근에는 시장이 활성화 되면서 경제적 능력에 따라서 옷차림도 차이가 많아졌다. 시장을 통해서 일부 상류층에서는 고가의 외제옷을 구매하기도 한다.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경시하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이를 통제하기 위한 교육 차원에서 영상물을 제작하여 방영한 것이다.
북한주민의 옷차림은 정책에 영향을 받고, 정책에 따라 바뀐다. 기본적으로 대중의 욕구를 창출하고 이를 산업으로 연결 짓는 남한의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생산을 책임지는 주체가 국가이기에 북한 주민의 의복은 정책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옷차림이 화려해지고 달라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옷차림을 뒷받침할 옷감이 생산되어야 한다. 옷을 생산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이 갖추어져야 한다. 북한에서 의복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공급대상이다. 그래서 북한의 옷차림 변화는 곧 북한 체제의 정책적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천리마 시대에는 여성의 의복은 짧게 입을 것을 권장하였다. ‘짧은 치마는 보기에도 좋고 활동에도 편리하며 천도 많이 절약’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긴치마는 ‘잔치를 할 때나 명절 같은 때 그리고 외국손님을 맞이할 때 예복으로 입을 것’을 권장했다. 북한 경제가 상대적으로 좋았던 1980년 초반 김일성은 평양시민들의 옷차림이 다양하지 못한 것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평양시민들이 화려하고 맵시 있는 옷을 입지 않고 옷차림을 되는대로 하고 다니기 때문에 도시가 환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경공업 분야의 일군들이 시민들의 옷을 여러 가질 색깔로 꼭 맞게 해 입고 다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여성들이 옷을 화려하게 입고 다니는 것을 시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까지 하였다. '여성들은 자기 몸매와 계절에 맞게 모자와 수건도 쓰고 꽃양산도 쓰고 다니는 것이 좋다'고 권장하였다. ‘생김새와 나이, 직업에 맞게’라는 애매한 테두리를 정하기는 하였지만 다양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1990년대 이후 경제적인 영향으로 축소되었던 옷차림은 최근 들어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다시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와 같지는 않게 서양의 캐릭터나 상표가 붙은 옷차림이 등장하였다. 정책으로 규율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황색바람으로 이어질까 걱정하고 있다.
옷차림이 규범에 맞지 않으면 ‘생활총화’나 ‘단속 통제 사업’을 통해 규제한다. 옷차림을 ‘어떻게 하느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옷차림과 몸단장은 ‘단순한 형식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로 본다. ‘단정한 외모’는 사람들의 인품을 높이고 사회적으로 ‘문화적인 정서와 풍치를 돋구워 준다’는 것이다.
복식에서 중요한 것은 시대적 미감에 맞는 옷차림이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는 옷차림이다. 최근 북한 노동신문은 봄철 ‘위생월간’(3월-4월)을 맞이하여 도시와 농촌의 환경을 깨끗이 하고, 주민의 옷차림 등에서 사회주의 문화를 확립할 것을 촉구하였다. 자기가 사는 집과 거리와 일터를 알뜰하게 꾸미고, 옷차림과 몸단장을 ‘우리 식’대로 고상하게 하여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철저히 확립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치마는 무릎 위로 올라가면 안 좋게 보고, 미니스커트나 가슴이 좀 패인 옷은 부정적으로 본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에 대해서도 남한에서 유행하는 스키니 진이나 야한 의상에 대한 통제도 강화되었다.
북한에서 가장 화려한 패션을 선보이는 것은 예술단이다. 1980년대 중반 보천보전자악단원들이 화려한 복장과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았다면 2008년 이후에는 삼지연관현악단, 은하수관현악단, 모란봉악단이 새로운 패션스타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12년에 등장한 모란봉악단의 패선은 주목거리다. 연주곡목과 퍼포먼스도 관심이었지만 패션도 주목을 받았다. 화려했다. 세련된 미모와 공주풍의 드레스,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진 어깨선과 쇄골이 드러나는 과감한 연주복, 허벅지가 드러나는 반짝이 초미니 원피스는 한층 젊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북한 주민이 일상으로 접하는 텔레비전도 화려해 졌다. 방송화면도 화려해지고, 첨단 모니터를 활용하여 다양한 연출도 이루어졌다. 도시 건물도 회색을 벗고 밝은 색으로 갈아입었다. 시민들의 옷차림도 밝아졌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평양 주민의 옷차림은 갈색계통의 어두운 색이 중심이었는데, 요즘에는 색깔도 다양해지고 한층 밝아졌다.
리설주의 등장도 매우 이채로웠다. ‘북한의 퍼스트레이디’에 걸맞게 세련된 패션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북한이라는 사회’와 ‘퍼스트레이디’라는 단어의 결합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세련된 모습이었다. 세련된 패션은 김정은 시대의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알리면서 세련된 여성상을 만들었다. 김정은 시대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북한 당국에서 제시하는 옷차림은 시대의 미감에도 맞으면서도 인민의 요구가 잘 반영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복정책이 인민의 생활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정해진 규격에 따라 짧고 단정하게 머리를 손질하려는 주민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지만 실제 생활에는 정책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개성을 드러내는 옷차림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남조선풍으로 불리는 옷차림도 많아졌다. 남한 드라마에서 유행한 패션이 그리 긴 시간을 지나지 않아서 유행할 정도라고 한다. 아무리 ‘사람들이 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사회악을 만들어 내는 생활양식’이라고 규정해도 감각적인 세련미를 쫓고자 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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