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위해 상대의 말에 끼어들거나,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 틀리다고 반박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 다른 차이를 발견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그 과정을 즐긴다. 그래서 고정출연 중인 토론형식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다니엘의 비중은 그리 크게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이 필요하다 판단될 때는 반드시 목소리를 보탠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잘못에 대해 “80년이 지났어도 결코 잊어서는 안될 만큼 큰 잘못”이라며 진심어린 사과를 할 때도 그랬다. 방송을 겨냥한 발언이 아니다. 자기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용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못한 일을 사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다니엘이 생각하기엔 그렇다. 그런 다니엘의 담백하고 진심 어린 사과는 다른 외국인 게스트의 눈물샘을 자극할 만큼 큰 울림을 줬다.
그리고 그런 ‘개념발언’들 덕분인지 요즘 다니엘은 무척 바빠졌다. 빈 말이 아니라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방송 당일이면 반드시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 오를 만큼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인기예능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에?’, 스카이스포츠의 ‘분데스리가 쇼’에 고정 출연하며 주요 일간지에 칼럼을 쓰고, 최근까지 기업의 강연도 다녔다. 또 잘생긴 외모 덕분인지 화보와 인터뷰 요청도 잦아졌다. 그만큼 소위 말하는 ‘방송물’을 먹었으면, 제법 ‘빈말’에도 요령이 생길 법 한데, 우리나이로 딱 서른이 된 이 청년은 시종일관 담백하기만 하다. 도무지 학창시절에도 흔한 ‘일탈행위’조차 안 해 봤을 것 같은 인상이라 멀고 낯선 한국 땅까지 온 이유가 궁금해진다.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우면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때쯤 삼촌이 ‘KOREA'란 책을 선물해주셨는데 그게 90년 대 한국의 문화나 역사에 관한 책이었어요. 저 어릴 때만 해도 한국은 정말 잘 모르는 나라였는데, 그 책에 나와 있는 한국은 너무 신비롭고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좀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대학에서 동양학을 전공하고 그때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죠.”
결국 지난 2008년 고려대학교의 교환학생으로 처음 한국에 다녀간 후, 2012년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에 다시 입학하게 됐다. 그렇게 마침내 본격적인 한국생활이 시작됐다. 당연히 한국생활에 적응하기까지의 과정이 상상만큼 신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공부했지만, 실제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기에 ‘이방인’이란 기분을 느낄 때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란다. 하지만 문화차이를 이해하는 과정 역시 한국생활의 일부라 받아들였다. 최근까지 한 기업이 주최하는 강연을 통해 ‘문화차이’에 대해 강의도 했었던 다니엘이 생각하는 문화차이란 결국 선입견이란다.
“나라가 다르니 문화도 당연히 다르겠죠. 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정도의 문화차이란 결국 선입견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건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내 나라와 다른 나라를 비교할 수는 있죠. 하지만 그걸 비교해서 나쁘다. 틀렸다고 판단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한국의 성형문화요. 사실 독일은 성형을 많이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성형 자체에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왜 그런 문화가 생겼을까? 왜 한국에서는 이게 중요한 걸까? 라고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해하고 나면 좋아질 수밖에 없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책에서나 보던 제주도와 설악산을 직접 눈으로 보는 순간 이 나라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는 다니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한국의 자연 그리고 사람이다. 사생활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친분 관계가 부담스러웠지만, 이젠 친구들의 그 걱정과 잔소리까지 즐기게 됐다는 다니엘. 가능한 평생이라도 한국에 살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 통일은 그리 남의 일만은 아니다. 대학 학사와 석사 논문 주제가 모두 북한 관련일 정도로 사적인 관심도 적지 않다고.
“사실 독일에 있을 때는 한국은 물론 독일의 통일에도 큰 관심이 없었어요. 아마 제가 4살 쯤 통일이 됐을 텐데, 분단국가가 통일이 된다는 의미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한국에 와서 독일의 통일에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 역시 통일이 반드시 됐으면 좋겠어요.”
다만, 독일이 갑작스런 통일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러 사회적 부작용을 겪었던 것을 거울삼아, 충분한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인다. 준비란 단순히 정책적인 부분들만이 아니다.
“통일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본 조건은 인내심인 것 같아요. 통일이 되기까지도 그렇지만 통일이 된 후에도 인내심은 필요해요. 정치적, 경제적인 부분에 휘둘리지 말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차별하거나 선입견을 갖지 않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북한 사람도 사람, 한국 사람도 사람이잖아요. 외국인인 제가 한국생활에 적응했듯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하나, 젊은 세대들이 통일 관련 정책 등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렵고 까다롭지만 반드시 필요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저도 어렸을 때 그랬고,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장의 연애나 취업, 외모를 가꾸는 일만큼이나 정치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치란 국회의원들만의 일이 아니에요. 어떤 정책을 통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게 좋겠어요.”
대단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에 대해 제 목소리를 높일 줄 아는 다니엘은 앞으로 지금처럼 꾸준히 방송에 출연하는 한편, 독일대사관에서 일하거나 박사학위 취득 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의 일이다. 사계절 시시각각 변하는 한국의 자연 속에서 살며 한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끝으로 다니엘이 한국의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바로 인생관을 가지라는 것. 꿈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올바른 도덕적 태도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인생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사진_ 권혜리 / 사진제공 :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