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을 견인불발(堅忍不拔)이라고 한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갈고 닦으면서’, 무언가를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남북한이 분단된 이후, 각자의 삶을 유지하며 경쟁해온 지도 어느 덧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민족사적 당위성에서부터 편익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논의들 중 무엇보다도 우리가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더욱 평화롭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데 있다.
남과 북은 하나의 공동체에 살고 있지만, 분명 서로 다른 체제이다. 분단의 고착화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폐해를 낳고 있으며,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저해하고 있다. 분단의 장기화는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한편,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분단이 없었다면 남북관계란 말도, 통일이란 말도 없었을 것이다. 통일이 분단을 극복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분단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서로 다른 두 체제를 하나로 통합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등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공동체 건설을 의미한다.
통일이 남과 북이 진정으로 하나됨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통일준비 역시 남과 북이 함께 해 나가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여기에는 통일준비의 당사자인 남과 북의 총체적 노력과 더불어 남북관계 개선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지금도 한반도 북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이 시대적 조류인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에서 일탈국가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제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고 체제를 지탱하는 하부구조가 취약하여 내구력이 크게 저하되어 있다는 북한관련 국제기구들의 분석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도 북한은 외견상으로는 거창한 선전구호와 제국주의세력과의 강경투쟁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대외강경일변도의 정책을 고집할 수만은 없다. 남북관계 긴장국면을 장기간 지탱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충분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드레스덴 선언을 비롯해서 북한이 체제내구력을 상승시키고 국제사회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시해왔다. 아직까지 북한이 적극 호응하지 않고 있으나 남북한이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화의 장에 나와야 한다.
2015년 2월, 민주평통이 “남북관계 차원에서 통일기반 구축을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조사한 결과에서 “남북당국 간 대화 재개”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53%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문화ㆍ예술ㆍ체육 등 다양한 남북 공동기념행사”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35%로 나타났다.1) 이 결과는 통일준비에 남북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국민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2014년이 ‘통일대박’이라는 화두를 던져 통일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다양한 부문에서 통일에 대한 노력이 이루어졌던 한 해였다면, 분단 70주년을 맞는 2015년은 보다 실질적인 차원에서 통일기반을 구축해가는 한 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북한은 2013년부터 줄곧 2015년 통일대전
(統一大戰)을 이야기 해오고 있다. 북한이 말하고 있는 2015년 통일대전이 북한의 내부결속을 위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평가절하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통일은 남북이 함께하는 것이기에, 통일준비 역시 남북이 함께하는 통일준비여야 한다. 통일은 어느 한 쪽만이 한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처럼 통일준비는 북한을 고립시키는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통일준비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와 공동 번영과 평화의 길로 가도록 하는 데 있다. 여기에는 남북간 노력과 대화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북한의 대화와 태도가 요구된다. 제96주년 3·1절 기념식에서의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처럼 “진정성 있는 대화와 변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모든 협력의 길이 열려 있으며...더 이상 남북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을 북한은 인식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통일준비와 관련된 남북간의 최소한의 대화는 필요하다.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많은 장애물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남북관계 경색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은 달리 보면 김정일 시대에 발생한 도발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임을 자처한다면, 그리고 김정은이 새로운 문명을 경험하고 지식을 쌓은 북한의 젊은 지도자임을 자처한다면, 아버지시대에 일어난 도발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으로 엉클어진 남북관계를 풀고 가난의 늪에 빠진 2500만 명의 주민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 갈 용기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벌써 4월이다. 통일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연이은 도발공세에 숨 돌릴 틈 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우리에게는 좀처럼 편했던 날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직까지 통일준비 차원에서 북한이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일도 별로 없다. 한비자 세림(說林)편에 가인어월이구익자(假人於越而救溺子)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물에 빠진 아이를 멀리 월나라에 사는 사람을 빌려와서 구한다’는 뜻으로, 생각이나 하는 일이 아무리 기발하고 좋아도 때를 놓치면 소용이 없다는 의미이다. 광복 70년을 맞는 2015년, 진정한 광복을 완성하고 민족의 번영을 위한 항해에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이제 진정성을 가지고 통일의 첫 단추를 잘 끼워 ‘모래위에 쌓은 탑’이 아닌 ‘공든 탑’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1)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2015년 1/4분기 자문위원 통일의견 수렴 결과'(2015.3)
<청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