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준비 중인 대학교 4학년의 한 청년이 있었다. 청년에게는 흔히 취업을 위한 기본 조건으로 꼽는 학벌, 돈, 영어, 해외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도 무(無)스펙이라고 한탄했다. 영어라도 잘하고 싶어 손가락에 못이 박히도록 공부했지만 토익 600점대를 넘기가 어려웠다. 냉정한 현실의 잣대에 ‘꿈’꾸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지던 시절, 하루는 인터넷 활용이라는 교양과목 과제로 해외펜팔사이트를 개설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전 세계 한국어과가 있는 1000여 개의 대학에 ‘한국에 대해 정보를 원하거나, 한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연락을 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15년 후 이 청년은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닮고 싶어 하는 멘토이자 리더가 된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며, 대한민국의 올바른 가치를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 :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박기태 단장이 그 주인공이다.
박기태 단장을 만나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꿈꾸는 ‘통일 한국’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국내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온·오프라인 상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가홍보와 교류를 위해 노력하는 비정부 민간단체다. 사실 지금이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대한민국 대표 민간 외교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지만 처음에는 지구촌 친구들과의 펜팔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99년에 교양과목 과제로 처음 펜팔사이트를 만들 때만 해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조금씩 늘어나던 때였어요. 그래서 해외에 한국에 관심 있는 친구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한국 친구들은 어학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박 단장의 아이디어는 통했다. 한 국립대학에서는 100여 명의 학생이 프로필을 보내왔다. 국내에서도 취업이나 학업을 위해 어학공부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런 와중에 운 좋게 졸업과 함께 원하던 직장에도 취업 했다. 다 잘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이었다.
업무 시간에도 상사가 자리만 비우면 ‘반크’ 활동에 매달리는 통에 회사업무에 집중할 수 가 없었던 것. 그러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꿈’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됐다고. 결국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종자돈 300만원을 털어, 남대문 3층 옥탑방에 ‘반크’ 사무실을 열었다.
온전히 ‘반크’일에만 매달리면서, 세계인들이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상당 부분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외친구들과 펜팔을 하면서 독도와 동해가 각각 다케시마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 우리나라가 중국의 오랜 속국이었으며 마치 일본이 우리나라를 중국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것처럼 와전된 역사 교과서들을 보면서 충격이었어요.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죠.”
당시 인터넷으로 검색한 결과 세계 주요 포털사이트 및 세계지도 제작 업체 중 97%가 독도와 동해를 다케시마와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온라인을 주 무대로 활동하던 젊은 청년은 곧장 영어예문을 인용해 각 업체에 시정을 요청했다. 처음부터 큰 목적을 두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틀린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과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눌수록 알음알음 키워나간 애국심의 발로였다. 그 결과 2011년, 3%에 불과했던 세계지도 속 동해가 2014년에는 30%로 늘어났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론리 플래닛’, 미국 공영교육방송 ‘PBS’, 포털사이트 야후와 영국 BBC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출판사, 정부기관 등 606곳의 한국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았다.
물론 박 단장 혼자 한 일은 아니다. 15년간 반크와 함께 한 10만 명의 한국인과 2만 명의 외국인 회원 그리고 2만 5천명의 사이버 외교관, 매해 어학연수, 교환학생, 배낭여행 등으로 해외에 나가는 학생들이 ‘글로벌 한국 홍보대사’가 되어 함께 해낸 일이다. 그리고 함께 했기에 더 값진 일이기도 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일상화 되어 있는 한국에서 가장 쉽게 정보를 제공하고,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경로라면 단연 온라인이죠. ‘반크’의 회원들은 한국의 역사나 문화, 영토 등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곳을 발견하면 메일과 홈페이지의 건의 등을 통해서 꾸준히 수정을 요청해요. 또 해외에 나가는 학생이나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교육도 시켜주죠. 간단한 것 같지만 사실 생각만큼 쉽지는 않아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문제들은 19세기 것들이에요. 하지만 쉽지 않은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때가 많아요. 100여 년 이상을 동북아 정세를 좌지우지해 온 나라들이 만든 역사적 왜곡이란 그리 쉽게 고쳐지는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민간 외교관이 된다면, 그래서 우연처럼 만난 각각의 외국인들에게 우리 역사와 문화를 바로 알린다면 그렇게 작은 씨앗을 뿌리면 언젠가 숲이 되고, 새가 깃들지 않겠어요?”
‘통일’ 역시 같은 연장선상이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의지 이외에도 주변 국가들의 협력 역시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대한민국 국민이 ‘통일’을 염원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란 사실이에요. 그리고 한국 뉴스라고 BBC나 CNN 등 해외 방송을 통해서 노출되는 뉴스 대부분이 북한 관련 이슈죠. 보통 통일 이유로 관광자원, 경제적인 부분 등을 많이 말하는 데 개인적으로 꼽는 통일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국가 이미지 상승이에요. 아무리 한류열풍이나 경제대국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도, 핵 문제 한번 나오면 그런 부분들이 다 없어져요. 우리가 통일을 얼마나 원하는지 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반크’가 제작해, 배포하는 모든 자료에는 남한과 북한이란 구분이 없다. 휴전선도 없으며, 심지어 표기도 ‘KOREA’(한국)이라고 통칭한다. 문화, 역사, 인물, 영토 등 한국을 소개하는 자료 어디에도 구분 없이 남북한을 고루 싣는다. 한국지도 뿐 아니라 자체 제작한 세계지도에도 남북한은 당연하게 하나다.
단순히 우리만을 위해서만 통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출범 이례 전 세계 가입 국 중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발전한 유일한 국가. 전쟁 이후 반세기만에 국민소득 380배, GDP 750배로 성장한 나라. 세계에서 3번째로 자원봉사를 많이 하는 나라.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기적 같은 기록들은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희망이다. 또한 동북아의 올바른 역사와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국가 역시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 두 나라와 역사적인 인연이 깊은 국가예요. 물론 다 좋은 인연은 아니지만, 중국, 일본과 역사적으로는 물론 지형적으로도 인접한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면 동북아 정세는 더 안정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더욱이 한국의 성공스토리는 많은 개발도상국,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에게 희망이 될 거예요. 5000년 전 그 작은 나라가 시작될 때도 우리의 이념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었어요. 통일 대한민국이라면 전 세계 평화의 상징이 되지 않겠어요?”
또한 통일을 위해서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와 박 단장이 이끄는 ‘반크’는 지난 5월 8일 국내외 및 온라인 공간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비전을 알리기 위해 활동할 ‘청소년, 대학생 통일홍보대사 1만인 육성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빠르면 6월부터 청소년 500명, 대학생 1,000명의 통일홍보대사를 임명할 계획이다.
“씨앗 한 알이 숲을 이루고 그 숲에 새가 깃들 듯이 작은 노력, 사소한 시도들이 대한민국의 과거를 바로잡고, 현재를 세우고,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역할이 중요하죠. 계기는 어떤 것이든 좋아요.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영어공부를 위해, 마케팅이나 국제정세에 대해 배우고 싶어서 등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반크’를 필요로 한다면 좋습니다. ‘반크’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글. 권혜리 / 사진. 나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