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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올해 한국 영화 최고 화제작 ‘연평해전’ 김학순 감독

“갈라진 이데올로기 봉합하고
나라의 의미 되새겨보는 영화 되길”

2002년 6월의 제2연평해전을 다룬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 23일 만에 관객 500만 명을 돌파했다. 7년의 제작기간, 제작비의 3분의 1을 7000여 개인과 단체가 후원했다는 사실 등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내 몸은 빌린 것일 뿐, 유족과 국민들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김학순 감독을 만나보았다.

김학순 감독

박돈규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지난 3월 영화 ‘연평해전’ 포스터가 붙은 서강대 교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4차 편집을 막 끝낸 컴퓨터와 모니터, 카메라와 야전침대, 고속정 미니어처 등이 보였다. 김학순(57) 감독이 모니터에 영화 속 한 장면을 띄웠다. 윤영하 소령(정장), 한상국 상사, 조천형·황도헌·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참수리 357호 승조원들이 모여 월드컵 3, 4위전을 응원하고 있었다. 2002년 6월 29일이었다.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교전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을 외치며 평화롭게 흘러갔을 저녁 풍경이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쓸 때 벌어진 사건입니다. 그들 모두 살아서 돌아가길 원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려다 희생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것을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 갈라진 이데올로기를 봉합하고 좌든 우든 나라가 뭔지 되새겨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 ‘연평해전’은 축제 속의 전투, 외롭고 비현실적인 싸움의 기록이다. 생존 장병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포탄과 총탄이 달려들던 제2연평해전의 현장을 아프게 대리 체험케 한다. 스크린 속 전투 장면 30분은 실제 있었던 교전 시간과 같다. 피가 흥건한 갑판 바닥으로 탄피가 숨 가쁘게 쏟아진다.

‘연평해전’은 개봉 23일 만에 관객 500만 명을 돌파했다. 올해 한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매일 갈아치우는 중이다. 7월에 다시 만난 김학순 감독은 “7년에 걸쳐 이 영화를 만들면서 두 가지 큰 짐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희생된 여섯 용사의 유족이 어떻게 볼 것인가를 근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짐 하나는 뭘까. 김 감독은 “이름 없는 후원자들”이라면서 덧붙였다.

“흥행은 관객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들에게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100만 명을 돌파할 때부터 지금까지 믿기지 않는 일의 연속입니다.”

돈이 부족해 촬영이 여러 번 중단되고 배우도 바뀌면서 표류했던 이 영화는 국민 성금으로 목적지에 닿았다. 순제작비 60억 원 중 20억 원이 크라우드 펀딩과 후원금 등으로 모였다. 엔딩 크레디트에는 제작진 말고도 개인과 단체 이름 7000여 개가 담겨 있다. 가보연, 강경연, 강기현, 강나원, 강남욱, 강대영… 누군지 알 길이 없는 ‘이름의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다.

젊은 층 공감 높아 20대 관객 비중 절반

인간은 망각에 취약하고 기억은 불완전하다. 영화는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붙잡아두는 장치일 수 있다. “유족은 극장에서 ‘연평해전’을 보면서 울기도 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올 때는 한 단계 승화된 표정이었다”고 김 감독은 전했다. 처음엔 겁이 나서 영화를 보기도 힘들어했지만 나중엔 안도하며 상처를 다스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유족이 ‘잘 만들어줘 고맙다’고 하는데 뿌듯했고 짊어진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해졌다”며 “단순한 전쟁영화가 아니라 부조리한 우리의 현실, 가족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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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연평해전’은 생존 장병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돼 당시 전투 현장을 아프게 대리 체험케 한다.

영화 ‘연평해전’은 윤영하 정장(김무열), 조타장 한상국(진구), 의무병 박동혁(이현우)을 중심으로 희생된 장병과 남겨진 가족의 애환을 담았다. 김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병사들의 고통과 두려움, 용기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생활은 허구로 재구성했다”며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과 지지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된 2002년 6월에 연평도 근해에서 실제로 일어났지만 잊힌 전투, 7년의 제작 과정에 대한 호기심, 남의 일 같지 않은 가족적 공감대, 극장에서 오랜만에 쏟은 눈물과 카타르시스 등이 흥행 배경으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 100만 명 이상이 본 영화 가운데 20대 관객 비중(49%)이 상당히 높은 것도 특징이다. 군대는 남의 일이 아니고 누구나 가진 가족 이야기다. 20대 여성 관객 입장에서는 당장 오빠나 남동생, 남자 친구가 겪을지 모를 비극일 수도 있다.

“만약 군대 이야기로만 갔다면 그들이 호응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일부 관객이 앞부분이 길고 지루하다고 하는데 비극을 만나기 전에 감정을 쌓아가야 했습니다. 실화를 예술적으로 다루면 생생함이 떨어져요. 전투를 허구로 만들면 전사자나 생존자에게는 모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평양 출신 실향민 부모의 아들인 그는 ‘연평해전’에 북한 수뇌부 중 한 명으로 출연까지 했다. 영화를 보며 좀처럼 웃지 않던 유족도 김 감독이 나온 대목에선 빵 터졌다. “영화 예산이 부족했다는 낯 뜨거운 증거지요. 다들 북한 사람처럼 보인다고 해서 다행입니다.”

김 감독은 “김학순이 ‘연평해전’을 만들었지만 내 몸만 빌렸을 뿐 국민의 정성과 열망으로 일군 영화”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서 찡했어요. 7000여 명의 이름이 올라가는데 그분들이 누굴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들 없이는 완성할 수 없었던 영화예요. 대한민국이 아직 건실하구나 싶었습니다.”

닉네임으로 후원한 마지막 이의 이름은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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