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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본 한·일관계 정상화의 조건

반일·혐한은 양국 모두에 손해
정상회담으로 새 협력틀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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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근혜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월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과 일본 도쿄 셰러턴미야코호텔에서 각각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식에 교차 참석해 밝은 표정으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뒤편에 1965년 한·일협정을 체결할 당시 서명식장에 있던 병풍이 펼쳐져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일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우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최근 한·일관계는 최악이라고 할 만하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 한국인 지식인은 이를 풀기 위해서는 양국 모두 민족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동북아시아, 나아가서는 세계를 시야에 넣은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5년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 각별한 해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이자, 식민지 지배를 한 나라와 지배를 당한 나라가 국교를 맺은 지 50년이 되는 해다. 지난 반세기의 한·일관계를 돌이켜보면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는 역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로 말미암아 양국의 국민 감정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양국 정상 간의 회담이 3년 가까이 열리지 않고 있는 현실이 상징적으로 말해주듯 현재의 한·일관계는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는 한·일관계가 이처럼 악화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주로 일본의 처지에서 살펴본 후, 양국의 관계 개선과 협력을 위한 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해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일본에서는 최근 한·일관계가 나빠진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하나는 양국 간의 역사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동이다.

먼저,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왕에게 사죄를 요구한 발언이 관계 악화의 시발점으로 본다. 그 후 박근혜정부의 출범으로 관계 회복이 기대됐으나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부각시켜 대립은 오히려 깊어졌다는 게 일본의 시각이다. 특히 한국 언론의 ‘일본 우경화’ 보도와 함께 박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일본의 혐한(嫌韓) 감정을 고조시킨다는 것이다.

‘사과만 요구 말고 기여도 평가하라’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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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해 3월 25일 네덜란드헤이그에 있는 미국대사관저에서 가진 회담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일본의 정계, 언론, 학계의 이른바 보수 세력들이 한결같이 힘주어 말하는 것이, 미국과 유럽국가도 일본과 같은 식민지 지배의 역사 속에서 제국주의 정책을 펼쳤는데 ‘일본은 언제까지 과거를 사과해야만 하나’하는 불만이다. 한국은 일본에 ‘역사를 직시하라’고 말하지만, 한국도 일본이 포항제철소 건설이나 ‘한강의 기적’에 기여했던 점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보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완전하게 최종적으로 해결’됐음에도 일본 정부는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 61명에게 총리의 사죄 편지와 함께 보상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다시 거론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일본의 불신감이 증폭됐다고 주장한다.

물론 정반대의 주장도 존재한다. 즉,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협정 과정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엇이 완전하게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말인가’하는 반문이 그것이다. 또한 ‘고노담화’에 담긴 ‘강제성’을 입증하는 일본 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일본 정부의 사실 인정 및 공식 사죄와 함께 법적 책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일관계 악화의 두 번째 원인인 동북아 질서의 변동은 중국의 급속한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인 영향력 저하에 따른 지역 내 국제관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중국의 부상과 관련해 일본은 ‘안전보장 관련 법안’의 법제화를 서두르는 등 경계를 강화하는 반면, 한국은 경제적인 호기(好機)라는 인식과 더불어 북한 문제 및 역사 문제에서 협력을 얻어야만 하는 상대로서 한·중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중국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대중국 경계태세 속에서도 올 4월 두번의 중·일 정상회담을 통해 대중 접근을 모색하고 있으며, 또한 아베 총리의 방미를 계기로 ‘세계 속의 미·일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일 관계의 악화 속에 진행되는 일본의 이러한 적극적인 외교 행보로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돼간다고 분석한다. 한국에서도 ‘현재의 한국 정부는 외교적 유연성을 잃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대일 전략의 수정을 요구하는 주장이 등장하는 것으로 안다. 일본은‘미·중과의 관계만 돈독히 해놓으면 어차피 한국은 따라오게 돼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는 지금 이대로 방치해두어도 괜찮지 않은가’라는 분위기조차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경시’는 일본 사회 내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며, 조속한 시일 내에 정상 간의 회담을 통해 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이다. 이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인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한·일관계 개선, 나아가서는 그 발전을 위해 정상회담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정상회담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는 최대의 장애요인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의 의견 차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성의 인권 문제로서 여성들의 존엄을 짓밟은 사실 자체의 중요성과 함께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견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국제 환경이 한국에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 더는 이 문제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울 필요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보도에 따르면 아베 신조 총리는 8월의 ‘전후 70년 담화’를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인 ‘수상 담화’가 아닌 총리 개인의 견해인 ‘수상의 담화’ 형식으로 발표할 의향을 굳힌 듯하다. 그렇게 되면 총리 자신의 역사관이나 신념이 더욱 강하게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 총리의 담화 내용을 또다시 정상회담 거부 이유로 내세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금의 아베 정권으로부터 역사 인식에 관한 만족스러운 답변을 기대하기란 지난(至難)하며, 결국 역사 문제는 가까운 장래에 한·일 양국 국민 모두가 납득하는 형태로 해결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또한 한국 정부는 아베 총리의 공식적인 사죄 언급 없이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해서 이것이 결코 한국의 외교적 패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국적인 관점에서 ‘피해자’의 관용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한·일관계 정상화의 또 하나의 장애요인으로 쌍방에 대한 ‘불신의 구조화’ 현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양국의 정부, 정치가, 언론 모두에 책임이 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결점만을 부각시키다보니 양국 국민의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반발로 표출되는 ‘반일·혐한 현상’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 지금의 한·일관계의 전반적인 모습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여파로 최근 몇 년간 일본인의 한국 방문이 격감했고, 일본으로부터의 직접투자도 줄어들어 전체적인 경제관계는 축소되는 상태다.

올 6월에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이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에서 양국 모두 ‘상대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답한 사람이 과반수였다는 결과가 지금의 한·일관계의 실상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역사 문제를 이용해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언동을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것은 한·일 모두의 정치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근시안적인 민족주의 사고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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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은 6월 22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위안부 문제가 지금의 한·일관계의 가장 큰 이슈로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 문제가 결코 양국 관계를 규정하는 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며, 또 그렇게 돼서도 안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국적, 장기적 관점에서 한·일관계를 보는 것이다. 즉, 한·일 양국은 역사 문제에 많은 정치적 자원을 배분해온 지금까지의 편협하면서도 근시안적인 민족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동북아시아, 나아가서는 세계를 시야에 넣은 장기적 관점에서 한·일 협력의 논리를 발견해 구체적인 협력 작업에 착수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한·일을 둘러싼 국제질서 속에서 양국의 국가 이익에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으며, 이러한 공통의 과제나 목표는 앞으로도 점점 더 늘어나리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은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에서 어떠한 협력을 추진해야만 하는가. 또한 안정된 세계 질서와 동북아 질서를 형성하려면 어떠한 포괄적인 전략이 필요한 것인가.

첫째, 안보 분야에서의 한·일 협력의 구축이다. 한·일관계 악화는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국의 부상으로 동북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이 변화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과 지역 내의 평화롭고 안정적인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한·미·일의 결속은 불가결하다. 또한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3국 간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한·일 간에 중단된 ‘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ACSA)’ 및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을 위한 의견 교환을 재가동해야 한다.

둘째, 지구적 문제(Global Issues)에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다만, 한·일은 미·중과는 달리 단독으로 세계 정치의 격동에 유효하게 대응하기에는 명백히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한·일 모두 중견국(Middle Power) 외교를 펼칠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평화유지활동, 공적개발원조, 인간 안보 등의 분야에서는 목표를 같이하며 행동하는 기회가 늘어가고 있다. 여기에 지구 환경, 에너지, 테러, 빈곤, 난민, 마약, 질병 등 이른바 비전통적 안보 영역에서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대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일 양국이 글로벌 사회를 무대로 한 여러 측면에서 협력할 기회가 넘쳐 있다. 전통적인 구미(歐美) 세계의 후퇴와 더불어 중국의 대두라는 세계 질서의 재편성이 진행되는 상황인 만큼 한·일 양국은 이러한 국제 질서의 특징을 점검해나가면서 스스로의 몸을 의지할 장소를 확인함과 동시에 그에 적합한 협력을 확대·심화해야 할 시점이다.

한·일관계를 한·일 간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한·일 협력을 좀 더 강하게 의식하면서 양국이 글로벌 사회에서 존재감을 높여가는 것이야말로 지금 요구되는 한·일관계의 모습일 것이다. 그것은 이러한 글로벌 거버넌스 분야에서의 한·일 협력이 역사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의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기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언급한 모든 것이 현실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한·일 정상회담을 무엇보다 먼저 열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현재 양국의 재무, 경제, 국방, 외무장관 회담이 연이어 이루어지면서 냉랭해진 양국관계를 어떻게 해서라도 개선해보려는 쌍방의 의지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이제는 양국 정상의 정치적 결단만이 남아 있다. 물론, 단 한 번의 회담으로 모든 것이 극적으로 해결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이론의 신자유주의 제도론(Neo-liberal Institutionalism)이 말해주듯, 정상회담이라는 제도의 ‘관행화’를 통해 협력의 정신을 싹틔워 주요 현안과 과제를 조금씩 풀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했던 역사, 거기에 민족적 요소가 끼어들어간 탓인지 확실히 한·일관계는 단순한 일차방정식의 논리로는 풀 수 없는 측면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에게는 과거로부터 배우고 의식을 변혁해 평화롭고 건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영지(英智)가 요구된다. 양 정상은 반세기의 교류를 통해 쌓아온 양국의 우호·협력관계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사명과 책무를 지고있다. 한·일관계의 미래 50년을 향한 협력의 틀을 재구축하여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돌려놓기 위해 지도자 스스로가 움직일 때가 왔다. 우리는 지금, 한·일 관계의 이상상이 새로이 요구되는 중요한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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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섭 니혼(日本)대 국제관계학부 준교수
니혼대 박사(국제관계), 미국 하와이주립대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동북아시아문화학회 학술이사(현).
1991년부터 일본 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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