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하반기 동북아 정세는
아베 따로, 시진핑 따로, 김정은 따로…
대한민국은 안보 님비를 극복해야 한다
강대국 정치가 부활한 동북아, 끝이 없는 북한의 도발. 그리고 중·일, 남북한 대립 등으로 동북아는 고요한 날이 없다.
그 험난한 파고를 우리는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의 ‘강대국 정치’ 부활과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전방위 무차별 테러 등으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21세기형 위협은 지구상 어느 국가도 피할 수 없는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동북아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정책, 그리고 북한발 도발로 안보 불안을 더하고 있다. 강대국 정치와 북한의 비대칭 위협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신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핵심 가설에 의하면 국제정치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힘의 배분’ 상황이고, 구조가 변하면 국제정치의 룰도 변하게 마련이다. 2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질서는 미국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를 견지한 바탕 위에 구축됐다. 미국의 군사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법과 제도’가 국제질서의 근간을 형성하는 데 더 중요한 구실을 했다.
미국은 질서의 설계자(System-maker)인 동시에 이익향유자(Privilege-taker) 위상을 보유해왔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덕분에 미국의 적이었던 중국, 일본, 독일은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구소련이 붕괴한 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한 국가는 없었다.
하지만 중국이 2대 강국(G2)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이 건설한 질서에 도전하는 양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너무 성장해 과거의 옷이 몸에 꼭 끼는 상태인지라, 새로운 옷 입기를 원한다.
중국의 부상은 미·중 역학관계의 변화를 초래한다. 확립된 룰이 없거나 제도화가 덜 된 분야에서 미·중 간에 국익이 충돌하면 갈등과 긴장이 발생한다. 남중국해 문제, 사이버 안보, 경제관계 등에서 미국과 중국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Rule-based International Order) 주도권을 놓고 대립 중이다.
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미국은 아·태 재균형 정책,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하며 군사, 외교, 경제 차원에서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중 간의 대결 구도는 구조적 요인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양측이 합의 가능한 룰에 도달할 때까지 어느 정도의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미·중은 대결하기보다는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갈등을 통제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 이후 중국은 수세에 몰린 듯하다. 그리고 한반도 사드 배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무기체계의 성능이나 스펙에 관한 논쟁이 아니라 전략적 의미가 더해진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위기감이 반영된 반응임이 분명하다.
점점 커져가는 중국의 불안감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로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과 관할권 주장은 일거에 무너지게 됐다. 중국이 역사적 권원(Historical Titles)에 입각해 주장한 9단선은 무효이고, 스프래틀리 군도의 해양 지형은 배타적 경제수역을 갖지 못하는 암석이거나 간조 노출지이며, 중국의 인공섬 건설은 해양 환경을 훼손하고 필리핀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 이 판결의 핵심이다.
중국은 중재재판의 성립 자체가 무효이므로 중재판정은 국제법적으로 무효이고, 따라서 이 판결이 중국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중국이 판결 결과를 수용하지 않더라도 국제사회는 이를 강제할 수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은 법을 지키지 않는 국가’라는 이미지가 퍼질 것이니, 중국의 국가 위상은 일정 부분 타격을 받는다. 중국은 중재재판을 거부하면서도 어정쩡한 포지션 페이퍼(Position Paper)를 제출해 이미 국제법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냈다.
북한은 지난 7월 19일 새벽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스커드는 사거리가 500∼600km, 노동은 1300km 안팎으로 남한 전역의 목표를 타격할 수 있다. 8월 24일에는 신포 앞바다에서 SLBM을 발사해 500여km를 비행하게 했다. 군 당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경북 성주에 배치하기로 한 사드를 겨냥한 무력시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이 발사된 황주에서 성주까지는 직선거리로 380여km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최근 추세에 비춰보면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북한은 올해 1월의 4차 핵실험에 이어 고체연료 로켓엔진 연소시험, KN-08 대륙간탄도탄 재진입체(Nose Cone) 실험 공개, 신포급 잠수함에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 및 발사 실험 등 일련의 도발로 핵·미사일 역량 강화를 추진해왔다. 수차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23일엔 무수단(화성 10호) 중거리 미사일, 8월 24일엔 SL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노동당 7차 당대회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선언한 후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은 강화되는 추세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미사일 시험 발사의 의지를 드러내며 남한을 향한 위협을 가중시키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미군 장비가 투입되는 남한의 항구와 비행장을 선제 타격하는 것을 목표로 훈련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전력이 들어오는 길목인 부산항 등 주요 항구와 공항, 그리고 사드가 배치될 성주가 북한 미사일의 목표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7월 19일 발사에서 공중 폭발한 스커드 1발은 목표 지역의 설정된 고도에서 탄도미사일에 장착한 핵탄두 폭발 조종장치가 작동하는지를 점검한 실험이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의도가 결국 핵·미사일 능력의 완성에 있음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비핵화한 한국의 선택 옵션은?
북한의 무수단 발사 성공 이후 한국은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했고, 그로 말미암아 국내외에서 많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되면 한국은 사드 배치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노선과 7차 당대회 이후 북한의 태도, 베이징 동북아시아 협력대화(NEACD)에서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인 최선희의 발언 등을 보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기대 난망이다. 비핵화 회담의 조기 개최도 어려울 전망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북한의 핵에 맞서는 최선의 방안은 한국도 핵무기를 개발해 ‘공포의 균형’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비핵화는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한국은 핵무장을 선택하는 대신 비확산과 비핵화를 선택했다. 핵무장 옵션을 제외한다면 그런 상태에서 한국이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세 가지뿐이다.
첫째 확장 억제(미국의 핵우산), 둘째 비핵 억제력(사드,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조기경보 역량)의 강화, 셋째 국제 제재와 공조 등이 그것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한 모든 대응수단을 강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억제력 확보에 도움이 되는 방안은 적극 추진해야 한다.
사드는 주한미군 방어용으로 배치를 결정했지만, 사드를 배치하더라도 사려 깊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계획에 따른 배치 사례를 참고해 ‘단계적’, ‘조절적’으로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 사드 문제로 중국이 한국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미국과 직접 협의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와 킬체인 등 우리의 방어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커져가는 추세에 따라 사드를 포함한 추가적인 억제력 강화를 모색해야 한다.
올 하반기에도 한반도 정세는 순탄치 않아 보인다.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 강화는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대화의 실마리는 찾기 어려워 보인다.
북한 내부의 동요 조짐도 엿보인다. 김정은 정권을 지탱해온 엘리트 계층의 동요가 가시화됐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 망명이 김정은 정권에 주는 충격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한 돌발 사태에 대비해야
김정은 정권이 체제 동요의 위기감을 느낄수록 대남, 대외 도발은 더욱 빈발할 가능성이 크다. 사드는 지금부터 준비해도 2017년 말에야 배치될 전망이다. 북한은 그 기간 동안에도 핵과 미사일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갈 것이므로 사드 배치는 가급적 앞당기는 것이 옳다. 그와 함께 중국에 ‘북한의 도발이 사드 배치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임을 강력히 제기해야 한다.
다가오는 항저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 우리의 안보 우려를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중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원치 않는다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중지시키려는 국제적 움직임에 마땅히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정부는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안보 문제가 님비(NIMBY·지역이기주의) 현상으로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현지 주민과 정치권을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사드 배치 등을 빌미로 핵·미사일 도발을 지속할 경우에 대비한 경계태세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정치학박사.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 외교통상부 정책기획관, 매일경제 객원논설위원 등 역임. 현재 한국핵정책학회 회장, 민주평통 기획조정위 간사. 공저에 <한국의 국가전략 2030 : 안보>, <한국의 중견국외교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