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통일 | 당신이 통일 주인공

음식으로 만든 작은 통일

‘북한요리전문가 윤선희 씨’

한 케이블 TV의 음식 대결 프로그램 녹화가 있던 날, 우승자로 호명된 윤선희 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심사위원이었던 백종원 씨가
그녀가 만든 평양어죽을 맛보며 연신 ‘감사하다’는 찬사를 보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음식은 다 먹어볼 수 있어도 통일이 되지 않는 한
절대로 먹어볼 수 없는 요리가 북한요리인 까닭이다. 북한의 국영식당 요리사에서 남한의 북한요리전문가가 된 윤선희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윤선희 씨

음식점 아르바이트로 남한 음식을 배우다

일산에 있는 한 평양냉면집, 분주해 보이는 주방 안에서 윤선희 대표가 음식을 만들고 있다. 밀려오는 주문에 정신이 없을 법도 한데 묵묵히 재료를 손질하는 모습에서 정성과 자부심이 묻어난다. 메밀면 한줌에 양파, 배, 오이, 편육과 삶은 달걀이 올라간 모양은 우리네 냉면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북한 토박이 전문 요리사의 손끝에서 탄생한 냉면 맛이 자못 궁금해졌다.

올해 탈북 8년 차가 된 윤선희 대표는 마흔 셋에 한국에 들어와 바로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북에서부터 30년 넘게 칼을 잡아온 그녀였기에 요리 하나 만큼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 커다란 숙제가 생겼다.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와 양념장 이름들이 모두 생소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그래도 명색이 국영식당 요리사였는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하나씩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다양한 한국 음식을 종류별로 체험해보는 것이었다. 남한 사람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설렁탕부터 베트남 쌀국수, 피자, 냉면, 샤브샤브 등 17개 음식점에서 일하며 다양한 음식들을 연구한 것이다.

북한 김치 홍보가 이어준 ‘한식대첩3’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윤 대표는 문득 한국 사람들에게 ‘북한 김치’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김치사업이었다. 남한 김치도 맛이 좋지만, 북한 김치 고유의 깊고 시원한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특히 김치의 짠맛 때문에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북한 김치가 가지고 있는 우수성을 알리고 싶었다.

윤선희 씨 “북한 김치는 생선을 삭혀서 양념을 만들어요. 배추나 무 등 김치 겉 재료에는 식이섬유가 많은 대신 단백질이 부족한데 생선을 삭힌 양념을 넣으면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으니까요. 소금을 적게 써서 짜지도 않고, 맛이 깊은 데다 국물이 많아 시원한 게 특징이죠. 김치사업은 2014년부터 했는데, 알음알음으로 주문하는 분들께 만들어 보내드리고 있어요.”

아는 사람을 통해 주문이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지만,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방송국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바로 케이블 티브이의 ‘한식대첩’이였다. 그런데 시작 전부터 걱정스러운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시즌2에 출연했던 북한팀 동기들이 “우리가 아무리 정성껏 만들어도, 심사위원단이 남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곳 입맛에 맞지 않으면 절대 인정받을 수 없다”고 충고했던 것이다. 그간 여러 식당에서 일하며 맛봤던 남한 음식을 떠올려 보니 동기들의 말이 영 틀린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설프게 남한 음식을 흉내 내느니 ‘내 재량껏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던 윤 대표는 어느새 10회까지 올라가며 두 번의 트로피를 받게 됐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해요. 백종원 심사위원이 ‘우리가 전 세계 음식을 다 맛봐도 북한 음식은 먹을 수가 없다’면서 귀한 우리 음식을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셨거든요. 제가 한국에서 북한 음식을 만들려고 했던 마음이 이제야 전달된 것 같아서 기쁘고 감사했어요. 가끔 북한 음식을 낯설어하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거든요. 우리 민족이 즐겨 먹었던 음식인데 그 맛이 잊혀졌다는 것이니까요.”

그녀를 버티게 해준 따뜻한 응원의 글들

당찬 성격의 그녀지만 남한에 온 얼마 동안은 윤 대표도 마음이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사회구조와 언어, 생활 방식이 모두 낯선데다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나는 어머니와 아들 때문이었다. 매일 밤 꿈속에 나타난 아들은 항상 코 흘리게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3년 뒤 어머니와 아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고, 그제야 마음이 놓인 윤 대표는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얻게 됐다.

윤선희 씨

그때부터 김치사업을 시작해온 윤 대표는 현재 작은 평양냉면 집도 운영하고 있다. 윤 대표는 자신이 북한 음식을 계속 만들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격려와 인정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의 음식을 먹어본 손님들이 블로그나 SNS에 감동적인 댓글을 남겨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그간 힘들었던 날들을 보상해주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윤 대표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더 많은 북한 음식들을 만들고 알려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맛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북한 음식이 입에 안 맞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껏 그녀의 음식을 좋아해준 사람들도 많았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싶다.

“북한 음식은 각 재료의 맛이 하나하나 다 살아 있어요. 아주 맵거나 짜고 달지도 않지만, 먹다 보면 은근하고 깊은 맛을 느끼게 되죠. 건강에도 좋고요. 통일도 그런 것 같아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그 다름이 만나 결국 하나가 되는 것이니까요. 제가 만든 음식으로 작은 통일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한국은 기회의 땅, 좋아하는 일을 찾으세요!

그녀는 한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표현했다. 북한은 계급에 따라 주어진 일만 할 수 있지만, 한국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북민들의 경우 갑자기 낯선 환경에 놓이다보니 적응이 쉽지 않고, 그 과정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며, 어딜 가든 항상 당당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실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언젠가 통일이 됐을 때 우리가 만나야할 가족과 이웃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윤선희 씨

윤선희 씨

윤 대표는 요즘 경영 컨설팅을 받고 있다. 요리사로서만이 아니라 한 업체를 대표하는 사업가로서 직원들에게도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를 정확히 알아두기 위해서다. 이에 경영 컨설턴트가 알려주는 내용들을 노트에 꼼꼼히 적고 숙지하고 있다. ‘좋은 사업가로 성장하려면 아주 소소한 것부터 챙겨야 한다’는 게 윤 대표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윤선희 대표는 앞으로 북한 음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고, 자신처럼 창업을 준비하는 탈북민들에게는 경영 노하우를 알려줄 계획이라고 한다.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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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발행 : 2016-02-15 / 제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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