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슈 | 포커스
미·중 관계와 대한반도 정책 유현정(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2017.1.20.)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미국 신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은 아직도 불확실성의 안개를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대만 차이잉원 총통과의 전화 통화(2016.12.2.)를 통해 1979년 대만과의 단교 이후 미국이 유지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더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2017.1.20.)에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고 언급하였다. 이와 같은 일면 모순적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국가들과 본격적인 ‘거래’에 나서기에 앞서, 상대를 흔들려는 의도적인 협상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상반된 정책노선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힘에 의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가 대립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욱 개연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재까지 미국 주요 행정기관의 아시아 담당 실무 책임자가 인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정책기조에 대한 자체 검토 조차도 아직 완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 기조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면, 미국의 대 북한 정책을 예측하는 것은 더욱 불확실하다. 미국의 미·북 및 한·미 관계는 미·중 관계의 하부구조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대통령 및 주요 관료의 발언을 종합해 볼 때, 미국은 전임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있으며, 날로 고도화되고 있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을 미국 본토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특히 고체연료를 사용한 북한의 북극성 2호 발사(2017.2.12.)와 유엔 금지 화학물질을 사용한 북한의 김정남 암살(2017.2.13.)로 미국에서 북한 위협론과 대화무용론이 더욱 팽배해졌다. 3월 1~2일로 예정됐던 북·미 반관·반민(트랙 1.5) 대화가 무산된 것은 이를 방증해 준다.
미국 일각에서는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시설에 대한 정밀 선제 타격이나 정권교체 작전을 하나의 선택지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이 아직 미국 본토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 수준까지 도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보복으로 한·미·일이 막대한 피해를 받을 것을 감내하면서까지 선제타격 및 정권교체 작전을 실행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편 미국의 다른 일각에서는 미국과 북한이 ‘북핵 동결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 또는 나아가 ‘북핵 불능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이 북핵 동결은 검증이 어렵다는 것을 이미 경험하였으며,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및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 해체 주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주고받기 식 미·북 대화는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아시아 정책 관련 담당 실무자의 인선을 완비하고 관련 정책의 전면적인 검토(bottom-up review)를 완료할 때까지 당분간 중국을 통한 북한 압박에 치중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중국이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채택된 유엔 대북제재 2270호와 5차 핵실험 후 채택된 2321호에 동참하기는 하였으나,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중국이 유엔 대북제재의 예외조항이나 북·중 밀무역 등을 통해 북한 경제의 붕괴를 방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미·중 간 지정학적 군사 대립의 측면에서 북한이 중국에게 ‘전략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가 한국 주도로 통일이 된다면 중국은 미국을 포함한 자유주의 세력과 국경을 맞닿게 된다. 중국이 이와 같은 이유로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하는 한, 미·중 관계의 측면에서 북·중 관계를 조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2.24)에서 북한 미사일이 매우 위험하다고 평가하면서, 한·미·일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판단된다.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미사일 방어 협력을 중국 봉쇄로 인식하기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한·미·일 미사일 방어 협력의 추진 가능성과 협력의 수준을 중국의 철저한 대북제재 이행을 견인하는 레버리지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은 한국과 함께 북한과 거래하는 3국 기관 및 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의 실행 가능성을 논의함으로써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고려해야하는 중국의 선제적 대북 제재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미·중 관계가 불확실해질수록 북한을 더욱더 전략적 완충지로 유지하고자 한다. 북한 정권의 붕괴를 막고 한반도 안정을 꾀하는 것을 한반도 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중국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정도로 고도화되거나, 미국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기술 또는 기술자가 국제테러 집단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 북한 군사제재를 감행할 가능성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대 북한 군사행동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이 선제적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의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겅솽(耿爽)은 “6자회담 재개 타개책을 찾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관련 당사자와 소통 협력을 강화할 의향이 있다”고 언급하였다(2.22). 또한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 역할론’을 주장해오고 있는 것에 대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결정적인 원인은 북한과 미국 간의 갈등”이라며 ‘미국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김정남 암살 후 3일 만에 북한산 석탄 수입 금지 조치(2.23)를 취한 것이 방증하듯이, 중국은 현시점에서는 압박을 통한 북한 옥죄기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트럼프 행정부는 아시아 정책에 대한 전면 검토를 끝낼 때까지는 중국을 통한 대북 압박이라는 기조를 유지할 것이며, 시진핑 정부는 이에 대응하여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이행에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이면서 정세를 관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양국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information), 역정보(disinformation), 오보(misinformation)를 관련 국가에게 송출(signaling)할 것이다.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불확실한 미·중 관계와 그와 연계되어 더욱 불확실한 북·미, 북·중, 한·미, 한·중 관계에서 단편적 사건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함몰되기 보다는,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큰 그림에서 미국과 중국이 송출하는 한반도 정책 관련 정보를 더욱 더 냉철하게 선별(screening)해내야 한다.
<사진자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