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남한처럼 다양하진 않지만 복권이 있다. 6.25전쟁 중인 1951년에는 군수물자 조달과 재원확보를 위해 조국보위위원회 이름으로 된 ‘조국보위복권’을 발행했었다. 북한에 남한과 같은 개념의 복권이 본격적
으로 등장한 것은 1991년 11월이다.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을 흥성하
게 하며 나라의 사회주의 대건설과 통일거리 건설에 보탬을 주자’는 명분으로 발행된 이른바 ‘인민복권’이 그것이다.
남한의 ‘주택복권’과 유사한 이 복권의 액면가는 북한 돈으로 50원이며 1천만 장을 발행했다. 당시 북한 일반근로자 평균 월급이 80원 안팎임을 감안할 때 상당한 고액복권이다. 현재 남한근로자 월평균 소득을 200만 원으로 보면 로또 한 장을 100만 원 넘는 가격으로 구입하는 것과 같다. 당첨금은 1등이 1만 원(2천 장), 2등은 5천 원(4천 장), 3등 1천 원(2천 장), 4등 500원(200만 장), 5등 100원(200만 장) 등이다. 1등에 당첨될 경우 구입금액의 200백 배, 10년분의 월급을 한 번에 받는 셈이다. 총금액으로는 남한의 로또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북한 월급 기준으로는 그야말로 LOTTO(로또, 행운)이다.
복권은 처음에 식당, 상점, 역전, 주요 거리 등 공공장소에서 판매됐다. 각종 구매 안내문과 포스터가 걸렸고, 유선방송으로 홍보하는 등 대대적인 캠페인도 전개됐다. 그러다 판매실적이 저조해지자 각 공장, 기업소, 인민반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할당하는 방법으로 판매됐다.
첫 추첨은 1992년 3월 2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인민복권 전국추첨회’ 주관 아래 TV 생중계로 진행됐고, ‘평양신문’을 비롯한 각 지역 신문에 당첨자 명단을 공개했다. 당첨금은 같은 해 4월부터 각 지역 중앙은행지점과 저금소에서 지급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당첨금 지급이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나 점차 제때에 지급되지 않아 말썽이 빚어졌으며, 이에 불만을 품은 일부 주민들은 복권 당첨금 지급 문제를 노동당 중앙위원회에 진정하기까지 했다. 사실 당시 복권을 발행한 이유는 주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유휴 자금을 흡수해 각종 건설에서 발생하는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당국이 당첨금 지급을 달가워했을 리 없다.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북한은 복권 발행 직후인 1992년 7월 15일 전격적으로 화폐교환조치(제3차 화폐개혁)를 단행해 국가재정부족을 전국적 범위에서 강제적으로 해결한다.
북한에는 ‘체육복권’도 있다. 주로 전국단위 체전인 ‘백두산상 체육대회’ 등 국가적인 체육행사나 외국축구단 초청 등 특별한 행사를 계기로 발행한다. 한 때 액면가로 북한돈 5원, 10원 두 종류가 있었다. 복권은 경기장 주변 매점들에서 판매되는데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추첨은 경기가 끝난 뒤 진행하며, 보통 복권당첨자에게는 돈 대신 상품으로 컬러 TV, 냉장고, 자전거 등을 준다. 남한의 경품추첨권과 유사이다. 추첨방식은 투명함 안에 탁구공만 한 크기의 공을 손으로 끄집어내거나, 원통형의 통을 돌려가며 공을 떨어뜨리는 방법이 있다. 당첨자는 추첨마다 조금씩 다르나 보통 1등은 1명, 2등은 2~3명, 3등은 7~8명이다. 컬러 TV는 1등 당첨자에게, 냉장고는 2등, 자전거는 3등에게 차례로 주어지는데 단돈 5원, 10원으로 장마당에서 1만5천 원(당시 기준) 넘게 거래되던 컬러 TV를 받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횡재’이다.
북한은 2003년에 복권과 공채의 성격이 혼합된 ‘인민생활공채’도 발행
했다. 국가가 발행하는 공채로 10년 만기이며 액면가는 500원, 1천 원, 5천 원 3종류이다. 이 공채에 복권적 성격을 가미해 더 큰 흥미를 유발시켰다. 즉, 이자 없이 정기적인 추첨을 통해 당첨금(+원금)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당첨상환금은 7등급으로 나누었으며, 1등 당첨 시 액면가의 50배를 받도록 했다. 즉 5천 원짜리 1등이면 당첨금 25만 원에 원금 5천 원을 더해 일시불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북한은 당시 판매 개시 이틀째에 하루 동안 수십억 원어치가 팔리는 등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고 홍보했다. 해외동포들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는데 판매액을 높이기 위해 북한은 각 해외공관, 주재원들을 동원해 판매실적 올리기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
‘인민생활공채’는 여러모로 ‘인민복권’이나 ‘체육복권’처럼 로또성격은 아니었다. 당첨액상으로도 그렇고 또 차후 북한당국은 이 공채를 ‘애국 헌납’으로 강요했기 때문이다. 초기에 많이 구매한 사람에게는 ‘강성대국 건설에 이바지한 애국적 소행’으로 평가했고, 100만 원 이상 구매자에게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내각의 공동명의로 된 ‘애국표창장’과 국가수훈도 수여했으며, 신흥부자들에게는 자가용차 구입권한도 부여했다. 그러나 공채판매가 저조해지자 월급에서 강제로 떼는 식으로 조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자금조달은 ‘추첨제 저금’으로도 한다. 이자가 없고 대신 분기별로 일정 예금자를 추첨해 저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상금으로 지급하는 일종의 ‘변형된 복권’이다. 아마 가장 오래된 북한식 자금조달 방식일 것이다. 추첨 때마다 보통 중앙은행 구역지점 기준으로 1등 1명, 2등 2명, 3등 120명 정도 나온다. 가끔 중앙TV로 생중계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남한처럼 은행에서 돈을 마음대로 찾을 수 없다. 국가에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민반장이 정기적으로 가정집 문을 두드리면서 독려하는 형태로 당국이 적금을 강제한다. 때론 자기도 모르게 들어놓은 ‘추첨제 저금’이 당첨되기도 한다. 그러나 적금이든, 당첨금이든 모두 그림의 떡이다. 그리고 북한원화 화폐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설사 그 그림에서 떡을 꺼낸다 해도 별로 먹을 것이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글.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사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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