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된 체제나 국가가 생존ㆍ발전하는 방법은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길이 있다. 그 첫 번째는 국제적 기준과 앞선 국가들의 모범사례를 따르고 배워가면서 스스로 체제를 개혁해 나가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 특히 자신들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와 평화ㆍ우호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즉, 협력적 자세로 시대의 추세와 세계적 조류에 순응하는 가운데 자신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위해 노력하는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기보다는 철저히 문제아가 되는 길이다. 선의에 기초한 협력보다는 통제되지 않은 완력과 협박에 의존해 나름의 생존을 모색하는 길이다. 골목의 폭력배가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뜯어내는 일과 그리 다르지 않다. 물론, 이건 현명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방법이다. 강대국들이 즐비한 국제구도에서 그런 일탈을 계속 허용하지도 않겠지만, 무엇보다 개혁의 적기(適期)를 놓친 병든 체제의 증상을 악화시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이것이 독재자나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잠시 유지시켜줄 수는 있으나, 중ㆍ장기적으로는 자기 생명을 갉아먹는 마약과 같다.
북한은 4차 핵실험을 통해 두 번째의 길,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파멸을 불러올 수도 있는 악수(惡手)를 선택했다. 이는 남북한 간에 꾸준히 신뢰를 축적하면서 교류와 협력기반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북한 스스로 변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우리의 대북접근에도 중대한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더욱이 대북제재와 관련된 공조체제 구축과정에서 드러난 주변국들의 상이한 이해관계 역시 우리가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일부 주변국들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해법과 관련하여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보다는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자신들의 전략적 계산과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평시의 외교적 수사(修辭)와 중요한 시기의 결정적 선택이 차이가 나는 이러한 행태는 미래 한반도 통일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에 우리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의 여론도 감안해야 한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북한이 철저히 핵 위협 위주의 길을 선택한 이 마당에 ‘통일준비’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이러한 도전들은 이미 이전부터 잠재하고 있었던 것이 북한 핵실험이라는 계기를 통해 표출된 것일 뿐이다. 주민들의 행복과 체제의 번영보다는 개인의 권력욕과 정권의 안위를 추구해 온 북한의 행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주변국들의 각박할 정도의 자국 이익 중심주의 역시 냉철하게 바라볼 때에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점에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ㆍ번영을 위한 궁극적 처방으로서 통일의 중요성과 통일준비의 당위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16년을 새로운 각오, 긴 심호흡을 통한 인내를 가지고 통일을 준비해 나가는 전환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특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다른 국가의 경험으로부터 평화통일과 원만한 통합을 위한 최적 대안을 이끌어내는 노력이 더욱 구체화되어야 한다. 피상적ㆍ단편적으로만 파악하고 있었던 각종 법적ㆍ제도적 통일 사례들을 이제는 확고한 목표의식 하에서 입체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통일과 관련된 남북한 선언이나 협정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물론, 실제 남북통일 과정이 도래하면 그 내용은 상당 부분 수정될 수밖에 없겠지만, 원활한 논의를 위한 판단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해 나가야 한다.
둘째,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통일준비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통일이 단순한 당위적 명제나 이상적 구호가 아닌, 우리의 또 한 번의 도약과 지속 가능한 번영을 위한 최선책이며, 실제적으로 현재진행형의 성격을 띠는 과제임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 특히 통일준비를 여전히 낯설게 받아들이는 청소년 계층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적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꾸준한 소통과 지혜의 결집을 통해 통일준비가 범정부적 차원을 넘어 정부, 국회, 지자체,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한바탕의 흐드러진 축제와 같은 것이 되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국민적 합의가 전제될 때 통일준비는 행정부의 변화와 관계없이 지속 가능한 성격을 띠게 된다.
셋째, 북한 스스로 변화를 선택할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하는 노력 역시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물론, 이러한 노력에는 대화와 설득만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맞추어 우리의 단호한 의지와 튼튼한 안보태세를 과시하는 것 역시 북한을 핵무장의 덧없는 미망(迷妄)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자세이다.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협력 가능한 분야에 있어서는 유연성을 발휘하는 조화의 미학(美學)이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향후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라 인도주의나 민간 교류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협력계획들이 현시점부터 준비되어야 한다. 이는 북한 주민들과의 소통 강화로 연결되며, 결국 소수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현재의 북한체제를 변화시킬 또 하나의 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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