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상현이(가명), 초등학교 6학년 인경이(가명)를 남매로 둔 엄마는 1999년 남한에 왔다. 같은 탈북민과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았지만 아빠는 많은 빚을 남기고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아 직장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생활고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고 이 때문에 점점 커 나가는 자녀들의 마음에까지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멘토링을 해주겠다고 했을 때 별로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도움을 주겠다는 분들이 여럿 있었지만 형식적인데 그쳤거든요.”
엄마의 말처럼 남매들도 멘토 자문위원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특히 오빠 상현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있거나 엄마 뒤에 숨어서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난감한 상황에서도 서구협의회 자문위원들은 자주 모여 회의를 했고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갔다. 그리고 그 무렵 멘티 외할머니의 부고를 듣게 됐다.
“마침 행사가 있다며 공영욱 자문위원님이 전화를 하셨는데 상현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씀드렸더니 멘토 자문위원들 모두가 하던 일을 중단하고 가장 먼저 장례식장에 달려와 주셨어요. 그때는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후 멘티 가족들은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멘토 자문위원들은 청소년 통일준비캠프나 멘토-멘티 가족 방학캠프, 문화탐방 등을 계획해 멘티 가족은 물론이고 인근지역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 매달 1~3번씩 여행을 다니거나 문화체험을 했다.
멘토 자문위원들은 상현이와 인경이, 그리고 엄마 등 멘티 가족의 정신적인 상처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빠의 가출과 생활고, 이로 인한 엄마의 불안감이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해치고 있었다. 이에 전문상담가를 데리고 집으로 방문해 멘티 가족 모두와 오랜 시간 상담을 진행했다. 그 결과 상현이에게서 분리불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정서적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상담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기 때문인지 아이들의 표정은 한층 밝아 보였다.
‘북한이탈주민이기에, 그리고 그 자녀이기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편견을 없애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가뜩이나 학교에 잘 가지 않으려던 상현이가 하루는 학교에서 선생님께 욕을 먹고 벌을 섰다는 말을 했고, 상심한 엄마가 최은섭 멘토자문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다.
“저는 남한 학교를 안 다녀봐서 모르잖아요. 아이가 진짜 차별받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학교에 반감을 갖게 되더라고요.”
최 자문위원이 상현이를 만나 상황 설명을 들어보니 아이는 그날 숙제를 해 가지 않아 벌을 받은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빼놓고 엄마에게 말하니까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래서 “상현이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지각을 하거나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설명하며 오해를 풀어줬다.
야구장에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자문위원 중 한 명이 상현이와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또래 자녀를 데려왔고, 엄마가 그 아이에게 말을 걸자 상현이는 엄마를 발로 차면서 ‘북한말 쓰지 말라’고, ‘엄마 때문에 내일 학교 가면 왕따 된다’며 짜증을 냈다. 처음 가보는 야구장이라 아이들은 이후 치킨을 먹고 응원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상현이 엄마는 서운한 마음에 경기 도중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멘토링은 탈북민 가족 모두의 힐링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멘토 자문위원들은 멘토링이 거꾸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지역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어머니의 직업교육도 병행했으며, 일부러 각종 행사에 참가시켜 상장을 안겨줌으로써 자존감을 높였다. 멘토 자문위원들은 상현이네 가족이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문화체험을 계획했다. 특히 지난겨울 하이원 리조트에서 실시한 ‘어깨동무하기 멘토-멘티가족과의 1박 2일 워크숍’에서는 이동운 멘토자문위원의 또래 자녀(중1)와 상현이, 인경이가 함께 어우러져 스키도 가르쳐주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난해 멘토링을 통해 아이들과 많이 가까워져서인지 올해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훨씬 더 즐거운 멘토링이 이어지고 있다. 연극이나 영화도 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야구장도 다시 다녀왔으며 딸기 수확 영농체험, 도자기체험도 했다. 여름캠프에서는 보트를 타고 텐트 체험을 했으며 수영도 배웠다. 게다가 청소년지원상담센터와 연계해 엄마는 물론 두 남매의 심리치료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인 건 상현이였다. 선생님은 상현이가 이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특히 선생님과 대화를 많이 한다고 했다.
“멘토 자문위원들이 친자식처럼 날마다 전화하고 신경을 써 주셔서 둘 다 많이 밝아지고 학교생활도 잘해요. 상현이는 작년만 해도 성적이 젤로 끝이었는데 지금은 중간쯤 올라왔고 인경이는 올해 전교 부회장을 맡았어요. 다른 탈북민들도 제가 제일 복 받았다며 부러워하고요.”
그런데 이날 멘티 엄마는 멘토 자문위원들도 알지 못한 상현이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멘토링활동의 일환으로 지난 8월 상현이가 인근 보육원에 빵나눔 봉사를 다녀온 이후, 가끔 라면 그릇들이 개수대에 쌓여있는 걸 봤는데 알고 보니 상현이가 보육원의 아이를 자주 데려와서 라면을 끓여주고 있었던 것. 이유를 물었더니 상현이는 “친구가 고아원에선 밥 말고는 아무것도 못 먹으니까 배가 고플 것 같았다”며 “우리 집에 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사실 우리 애들도 보육원에 갔다 온 적이 있거든요. 신랑이 남긴 빚을 갚을 길이 없어서 제가 죽으려고 약을 먹었는데 상현이가 보고 119에 신고를 했어요. 제가 병원에 가 있는 동안 아이들은 보육원에 보내졌고요. 그땐 저도 제 자신이 싫었고 애들도 그런 엄마가 싫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멘토 자문위원들을 만나 도움을 받다 보니 정말 아들이 너무 놀랄 정도로 변했어요.”
엄마는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아이들로 성장해 가는 게 기쁘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도 멘토 자문위원들에게 지난해 칫솔과 십자수 쿠션을 선물한데 이어 얼마 전에는 직접 만든 가방과 잠옷을 보내왔다.
“저도 봉사활동을 해봤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자문위원들은 각자 하는 일이 있고 가정이 있으니 시간이 부족할 텐데도 저희 애들을 돌봐주시잖아요. 아이들이 올곧게 성장해가는 걸 보면 뭔들 못 해 드릴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해 초 문화탐방이나 여행지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 그 안에서 상현이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학교에 제출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상현이가 화를 내서 결국 딱 1장, 그것도 온 가족이 침울한 표정을 한 채 딱딱하게 서 있는 사진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현이가 먼저 신나서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 V자를 그려 보이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을 때도 있다고 한다. 이제 상현이 남매가 더이상 상처 받지 않고 밝게 자라면서, 온 가족이 활짝 웃는 사진들로 상현이네 앨범이 가득 차길 기대해 본다.
<글/사진.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