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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농업정책 변화와 남북 농업협력

식량 부족 타개책 없어,
남한과의 협력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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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국 랴오닝성 단둥 맞은 편 신의주항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농수산물을 중국 쪽에 넘기고 있다.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여러 가지 농업개혁 조치를 실시해왔으나 실질적 성공과 획기적 생산 증대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개혁을 위한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고 자본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제사회와 남한과의 협력을 통해 변화를 견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 중심에 ‘복합농촌단지 협력사업’이 있다.

2000년대 들어 북한의 농업 생산이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식량 생산량도 2000년대 초 400만 톤 수준에서 최근 500만 톤을 웃돌고 있다. 여기에 해외 도입량을 더하면 북한의 식량 공급은 연간 530만 톤 수준이다. 국제기구에서 산정한 북한의 연간 최소 소요량이 530만 톤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마치 수급 균형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한 주민이 중국 수준으로 소비하기까지는 300만 톤 이상 부족해 북한의 식량 공급은 정상 소요량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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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농업 생산 증대를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1990년대 식량위기 이후 김정일 정권은 ‘문제 대응형’ 농정 시책을 새롭게 추진했다. 식량 생산을 늘리기 위해 다모작과 감자 재배를 확대했으며, 우량종자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곡물사료 부족에 대응해 초식가축 사육을 촉진하고 농가 부업형 축산을 도입하는 등 가축 사육체계를 개편했다. 에너지 부족에 따라 양수식 관개체계를 자연흐름식 관개체계로 개편하는 노력을 기울여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농업 부문에서 개혁·개방 실험도 수행했다. 1996년에는 협동농장 내 작업분조를 개혁하고 농민의 생산 동기를 고취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2002년에는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폭넓은 경제개혁을 시도했다. 1995년부터는 남한과 국제기구의 농업 지원을 수용하는 등 개방적 조치도 취했다. 특히 1998년에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도움을 받아 ‘농업 복구 및 환경보호 프로그램(AREP Program)’을 추진하면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김정일 시대의 새로운 농정 시책과 개혁·개방 조치는 일부 성과를 거두었으나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농업 생산은 꾸준히 개선돼 식량난을 완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난에 따른 통화팽창으로 식량 가격이 급등하는 등 고도 인플레이션이 초래되는 문제도 있었다.

김정은의 ‘6·28 농업 개혁조치’, 개혁에는 한계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후 북한 경제 및 농업 부문에서 변화의 노력이 있었다. 우선 주목할 만한 것은 2012년의 ‘6·28 방침’이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협동농장과 공장의 생산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국가가 보장한다. 둘째, 국가와 협동농장(공장)이 일정률로 생산물을 분배한다. 셋째, 가격은 시장가격으로 한다. 넷째, 개인 소유 몫의 처분은 자유로 한다. 다섯째, 협동농장 내 작업분조의 규모를 4~6명으로 줄인다.

이 방침은 당시 여러 매체를 통해 개혁적인 조치로 소개된 바 있으나, 그 내용을 ‘개혁’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우선 생산비용의 국가 부담과 생산물의 국가 수매는 북한이 여전히 추구하는 사회주의 경제관리체제의 전형일 뿐 개혁적인 조치가 될 수 없다. 더욱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농업 생산에 필요한 생산요소를 물자가 아닌 화폐(시장가격)로 공급한다는 것은 국가 조달의 책임을 시장으로 떠넘기는 조치로 볼 수 있다. 개인 소유분의 처분을 자유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을 공식화하는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6·28 방침’의 내용 중 개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협동농장 작업분조의 규모 축소다. 이 조치는 농업 부문의 집단적 생산구조를 개별적 생산구조로 근접시킨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작업분조 규모의 축소는 1996년의 ‘새로운 분조관리제’와 2002년의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에서도 제시된 바 있으며, 그 후 실제로 작업분조의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보고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6 · 28 방침’을 개혁적인 조치로 해석하기에는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이 방침은 약화된 국가 수매· 조달·배급체계를 보완해 국가가 농장과 공장기업소의 생산물을 확보하고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 수단으로 보인다. ‘6·28 방침’의 목적대로 단기적으로 재정이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생산자재의 현금 보장을 위해서는 통화 증발이 불가피하며, 그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5·30 농업 개혁조치’, 중국의 농업개혁과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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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신의주의 농촌 풍경. 김정은 체제에 들어와서도 여러 가지 농촌 개발 조치가 취해졌지만 개별 농가에서는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2014년 들어서면서 북한은 한걸음 더 나아간 중요한 개혁조치를 취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것은 김정은의 ‘5·30 노작’이라 일컫는 문건에 담긴 개혁조치다. 중국의 북한 전문가에 따르면 2015년부터 북한 내 협동농장과 기업소에서 자율경영제를 도입하며 협동농장의 작업분조를 폐지하고 가족 단위의 영농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농장 노동력 1인당 농지 1000평을 할당해 영농하게 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생산물은 국가와 개인이 각각 40%와 60%로 나누는 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한다.

이 조치가 포함하는 개혁적 내용이 사실이라면, ‘5·30 조치’는 1978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중국 농업 부문에서 급속히 추진된 ‘농업생산책임제’ 개혁에 비견될 수 있다. 1978년 시작된 중국 농업의 생산책임제 개혁은 개별농가에 책임농지를 배분하고 목표치(정부 수매)를 초과하는 산출물에 대해 농가에 추가적인 배분을 실시하는 형태였다. 이 생산·분배체계는 불과 4년 만인 1982년에 ‘포산도호(包産到戶)’ 형태로 발전했는데, 이는 목표치(정부 수매)를 초과하는 생산분에 대해 농가의 자유로운 처분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것이었다. ‘포산도호’가 공식화한 후 2년 만에 중국의 농업은 사실상 개인농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이 시기 동안 중국의 농업 생산은 급속하게 성장했다. 그 양상은 <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농업에서 생산책임제 도입 후 개별농으로 전환되던 1980~85년에 중국의 농업 생산액이 48.2%나 상승한 것이다. 이는 그 전후 5년의 생산액 성장률과 비교할 때 매우 큰 것이다. 중국의 농업생산책임제 개혁 사례에 비추어볼 때, 북한의 ‘5·30 조치’가 북한 농촌 현장에서 현실화한다면 북한의 농업 생산이 급속하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농업개혁 성공과 획기적인 생산 증대는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대 말부터 북한의 농업 부문에서 개혁 조치가 여러 번 있어왔지만 법과 제도로 뒷받침되지 않아 지속성과 일관성이 없었다. 북한이 농업개혁에 적극 착수한다 해도 자본이 부족해 성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북한이 농업의 저생산과 식량 부족 상황에서 단번에 탈출할 수 있는 묘책은 없는 것이다. 다만 국제사회와 남한과의 작은 협력을 통해 큰 변화를 견인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 중심에 ‘복합농촌단지 협력사업’이 있다고 생각된다.

북한 농촌 개발 위한 ‘복합농촌단지’ 협력

복합농촌단지는 남북이 함께 북한 농업 발전의 가능성을 보살피고 키워가는 ‘인큐베이터’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우선 농촌 개발 부문의 협력을 통해 북한 농업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둘째 거기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판매되는 시장을 제공해서, 셋째 북한 농촌의 자립을 도와준 후, 나아가 농업 부문에서 남북 공동 이익을 실현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 협력사업은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제1단계는 북한 접경지 농촌에 생산 기반, 생산요소, 농업 기술을 지원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제2단계는 복합농촌단지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반입하고 투자 협력을 추진하는 상업적 교류 단계다. 제3단계에서는 인근 특구와 연계해 ‘남한-특구-복합농촌단지’를 연결하는 3각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마지막 제4단계는 시범사업의 성과를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이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면 국내 여러 주체들이 역할을 분담해 협력해야 한다. 정부는 정책의 입안, 대북 협의, 예산 마련, 공공사업단의 설치와 관리 체계를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다. 사업 시행은 비정부기구(NGO)와 공공사업단이 맡아 할 수 있다. 협력사업의 시행 주체는 여러 지원사업과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민간단체는 대북 농업 협력사업의 중요한 파트너다. 지역주민을 위한 인도적 성격의 프로그램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은 복합농촌단지 조성 후 교역을 추진하고 경협 사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복합농촌단지 협력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북한은 선진 기술과 자본 유입, 생산 증대와 수출로 농촌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또 농업개혁을 진척시킬 수 있고, 농업 발전 모델을 협력사업 현장에서 미리 경험하는 거시적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우리가 얻게 될 이익도 많다. 우리가 외국으로부터 꾸준히 수입하는 농산물을 북한산 신토불이 농산물로 대체할 수 있다. 가격을 낮출 수 있어 우리 소비자들의 호응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복합농촌단지 협력사업 추진 과정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거시적 효과는 더 중요하다. 남북관계 개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북한 농업의 능력이 높아진다면 우리가 장기적으로 부담해야 할 대북 교류협력비용과 통일비용도 줄일 수 있다.

물론 어려움도 예상된다. 북한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고, 남한과의 인적 교류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협력 프로그램과 편익에 관한 정보를 미리 제공해 북한 당국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식량과 비료 지원 등 대북 협상의 지렛대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홍보도 중요하다. 협력사업 추진 과정에서 단계별로 나타날 성과를 국민에게 미리 알리고 지지를 얻는다면 성과는 더 높아질 수 있다. ‘복합농촌단지’ 협력사업을 통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중요한 첫걸음이 내디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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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글로벌협력연구부장
고려대 경제학 박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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