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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IB의 인프라 투자와 북한

중국 주도 금융 지원으로 개혁·개방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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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왼쪽)과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4월 20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정상회담 후 기념식에 참석했다. 시 주석은 파키스탄의 도로·철도·발전소 건설 등 대규모 사업에 차관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 창설이 북한의 개혁·개방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국제사회에서 테러 국가로 지목받아 경제 지원을 제한받아온 북한으로서는 중국 주도 금융 지원을 받기 수월해지고, 이 같은 지원을 받으려고 북한 스스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개방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참가국 규모만도 마지막에 가입 의사를 표명한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대만을 포함할 경우 57개국에 이른다. 홍콩 인터넷 신문 ‘봉황망(鳳凰網)’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중에는 미국을 제외한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4개국이 모두 참가했으며, 주요 20개국(G20) 중에는 13개국이 가입을 신청했다며 글로벌 은행 설립의 의미를 부여했다.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AIIB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10월 처음 제안했다. 자본금 500억 달러(약 56조 원) 규모로 출발한 뒤 1000억 달러로 확대할 예정이다. AIIB는 시 주석이 제창한 글로벌 신(新)경제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금융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육상과 해상을 아울러 연결하는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중국의 동서 경제벨트를 잇는 그랜드 프로젝트다.

중국은 자국 주도의 다자간 금융기구 설립이 크게 ‘흥행’함에 따라 고무된 분위기다. 예상보다 많은 국가가 참여 의사를 밝혔을 뿐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 유럽 등 여러 국가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AIIB는 금융 파워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은 한국이 가입을 발표하자 “한국을 기다려왔다”며 반색하는 분위기다. 그간 한국의 AIIB 가입을 둘러싸고 한국 내부는 물론 미국에서도 관심이 높았다. 미국은 자국 주도의 국제 금융 시스템에 대응하는 중국 주도의 국제 금융기구에 혈맹인 한국이 가입하는 것을 반대해왔다. 그러나 영국 등 서방국가들이 가입키로 하면서 한국의 태도도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한국이 가입을 결정한 핵심 이유는 경제적 실익이다. 부수적인 이유는 북한의 개혁 · 개방을 이끌 촉매제 구실을 기대하는 것이다.

북한, AIIB 가입하면 금융 지원 받을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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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최근 자유무역협정(FTA)까지 타결된 점을 감안할 때 한중 간 경제적 연계성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양국 간에 위안화를 결제통화로 진행하는 무역 거래의 편리성은 지대하다.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데도 유리하고 환율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 위안화의 국제화가 촉진될 경우 한중 교역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AIIB 출범과 관련해 또 하나의 관심을 끄는 사안은 북한의 가입과 향후 경제개발자금의 활용 여부다. 북한은 비핵화 단계에서 6자회담 참여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을 강력하게 요청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이란 핵 협상 타결에서 입증됐듯 특정 국가의 비핵화는 경제 제재 해제와 국제자금 지원으로 순차적으로 연결될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하고 난 이후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행동 대 행동(Action for Action)’ 원칙으로 지원에 나설 것이다.

북한의 경제 회복을 위한 국제사회의 구실은 크게 두 부분이며, 국제 금융기구 가입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비금융 지원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하면 1차적으로 경제 지원에 대한 조사 설계가 진행될 것이다. 비금융 지원에는 경제정책 입안자들에 대한 시장경제 및 국제 상거래에 관한 교육훈련 등 기술적 원조 사업이 포함된다.

둘째, 비핵화가 단계적으로 진행되면 북한은 국제 금융기구 가입을 통한 금융 지원을 받게 된다. 채무불이행 국가인 북한이 국제 금융기구 가입 후 장기 저리자금을 지원받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서 AIIB에 가입할 경우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이는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미 베트남, 미얀마 등 체제 전환 국가들이 국제 금융기구 가입을 통해 개혁·개방과 동시에 급속한 경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 금융기구 자금 지원은 원칙적으로 회원국에 제한돼 있기 때문에 미가입국인 북한이 국제 금융기구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나 일부 예외는 있다. 신탁기금 조성을 통해 비회원국인 팔레스타인, 유고 등에 자금을 지원한 사례가 있다. 동티모르 및 코소보 등 비회원국도 국제 금융기구 가입 이전 단계에서 조건부로 국제 금융기구의 자금을 융자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은 미국과 적대관계가 아니었다는 점 등에서 북한과는 상황이 다르다.

북한이 국제 금융기구의 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일차적으로 금융기구에 가입해야 한다. 북한이 국제 금융기구로부터 자금을 마련하는 단계는 일단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이 국제 금융기구 가입 이전에 국제 금융기구로부터 조건부 자금을 조달하는 단계다. 둘째, 국제 금융기구의 자금 지원을 전제하지 않는 ‘북한 지원 컨소시엄(가칭)’ 구성 단계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국제 금융기구 가입 이후 국제 금융기구로부터 자금을 융자받는 단계다.

북한은 1997년 2월에 아시아개발은행(ADB) 가입을 정식으로 신청했으나 대주주인 미국(13.1%)과 일본(13.1%)의 반대로 무산됐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 후인 2000년 9월에도 정식으로 가입 신청을 냈으나 미사일 문제 등 여타 현안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입이 거부됐다.

엘렌 라슨 미국 국무부 경제·기업·농업담당차관은 2002년 4월 9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21세기 위원회’ 오찬 연설에서 “북한이 ADB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북한 경제통계의 공개와 국제통화기금(IMF) 가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북한이 국제 금융기구의 지원을 희망한다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제로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2001년 3월에도 한성렬 외무성 부국장이 북한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해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IBRD) 관계자와 면담 시 가입 의사를 표명했다.

AIIB의 북한 지원, 북·중 양국에 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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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초대 총재로 유력한 진리췬 AIIB 임시 사무국장. 사진 출처 바이두

현재 북한이 국제 금융기구에 가입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에 대한 미 국무부의 테러리스트국 지정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의 IMF, IBRD 가입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중국 주도의 AIIB는 사정이 달리 전개될 수 있다. 전통적인 북·중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은 과거의 문제아 이미지보다는 미래의 모범생을 기대하여 AIIB가 안정되는 대로 북한의 조건부 가입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대규모 차관 지원을 조건으로 북한에 중국식, 홍콩식 개혁·개방의 그림을 요구할 것이다. 양국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북·중 간 합의는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은 육상, 해상 실크로드 구축을 위해 극동에 폐쇄된 북한을 국제사회와 연계된 정상적 국가로 변모시켜야 한다. 중국이 동북 3성에 건설 중인 창지투(창춘-지린-투먼) 개발 선도구의 동해 진출 통로인 북한을 AIIB에 가입시키는 것은 일대일로의 완성이 될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도 경제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주도하는 AIIB 자금을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 북한이 서방의 IBRD 자금을 활용하려면 북·미 간에 심각한 불신이 해소되어야 한다. 반면 AIIB 자금을 북한에 차관으로 지원하는 문제는 미국이 배제된 상태에서 중국을 비롯한 이사회 국가들의 동의만으로 사전 논의가 가능하다.

북한은 AIIB에 가입하려 했으나 중국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중국 외교부는 관련 외신 보도를 “전혀 알지 못한다”며 확인을 거부했다. 중국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2월 특사를 보내 진리췬 AIIB 임시사무국 사무국장에게 AIIB 가입 의사를 전달했지만 ‘가입 불가’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북한의 금융 · 경제 체제가 국제기구에 참여할 수준에 미치지 못해 가입이 거부됐고, 북한은 중국의 ‘단호한 거부’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AIIB의 투명성에 의구심을 표명한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의 가입 요청을 창설 단계부터 수락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AIIB 설립을 둘러싸고 진통을 경험한 중국 처지에서는 핵 및 미사일 발사 등으로 국제사회와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북한을 초기부터 창설 멤버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초기 단계가 지나고 북한이 비핵화에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면 중국이 주도하는 이사회에서 조건부 가입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2001년 11월 19일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최수헌 유럽·국제기구 관계 담당 외교부상과 회담하면서 “북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법을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북한이 국제기구의 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정치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지적한 것이다. 우선 테러리스트 지정 해제를 위해 각종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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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울 눈 덮인 평양~원산고속도로의 풍경. 화물차 한 대가 경사진 산간지대 구간을 올라가고 있다. 북한의 도로 사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플리커닷컴

만약 북한이 AIIB에 가입한다면 동북아 경제협력 구조의 지형도는 매우 달라질 것이다. IBRD 차관은 연금리가 5~7% 선이다. 북한이 AIIB의 엄청난 저리 자금을 종잣돈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경제 회복 가능성이 높다. 특히 폐쇄적인 북한이 AIIB의 자금을 차관 형식으로 지원받으려면 각종 경제통계의 공개 및 제출이 필수적이다. 프로젝트별로는 현장 실사도 불가피하다. 평양은 자연스럽게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경제 관행을 습득해야 한다. 이는 고립된 섬에서 작동되는 로빈슨 크루소 스타일의 북한 경제에 일대 충격을 줄 것이며, 종국적으로 북한 경제의 시장화로 연결될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중앙과 지방급 경제특구 25개를 잇따라 발표했다. 구체적인 투자 희망 금액까지 제시하고 있으나 국제사회는 북핵 문제 등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만약 북한이 이란 핵 협상 모델을 벤치마킹해 비핵화에 나선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AIIB 가입도 이뤄질 것이다.

북한은 경제특구를 집중 개발할 각종 자금을 대출받아 투자에 나설 것이다. 남포와 원산은 최신식 항만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금강산과 묘향산, 백두산, 칠보산 등에는 세계적 수준의 휴양 리조트가 건설될 것이다. 김책제철소는 설비 현대화로 생산성을 회복할 것이다. 평양과 신의주, 개성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개통할 수 있다. 이에 부수적으로 각국 기업의 투자 러시가 일어날 것이며, 이는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된 이후 환호하는 테헤란 시민들의 흥분한 모습을 북한 주민도 보이지 말란 법이 없다.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이해 동북아의 새로운 금융 질서의 탄생이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연결되는 장밋빛 시나리오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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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미주리주립대 응용경제학 박사. 남북경제연구소 소장, 북한연구학회 부회장, 민주평통 사무처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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