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꿈을 그리면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어요. 그동안 남북분단으로 인해 섬 아닌 섬에 갇혀 있다 보니 철도인으로서 오랫동안 대륙철도를 동경해왔고, 대륙을 지나 유럽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염원이 더 간절했던 것 같아요.”
최연혜 사장은 코레일 역사상 첫 여성 CEO로 철도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관련 서적들도 출간한 철도 전문가다. 최연혜 사장이 그처럼 철도에 천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최연혜 사장은 독일 유학할 당시, 통일 전후 동서독 통합과 유럽대륙간 물류통일을 이뤄낸 ‘철도의 힘’을 지켜봐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대륙은 지금 이른바 ‘철도의 르네상스’기를 구가하고 있어요. 독일 통일로 물리적 국경이 사라졌고 구 소련이 붕괴, 해체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구 동구권 국가들이 EU경제권에 참여함으로써 물류통일이 이뤄진 거죠.”

그중에서도 특히 철도를 통해 통일을 앞당기고, 통일 후 철도로 각 부문의 효율적인 통합을 주도한 독일의 사례에 주목했다.
“독일 철도는 분단기에 동서독 국민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고, 통일 후에는 국토를 하나로 통합하는 혈맥이 되어줬어요. 분단의 극한 상황 속에서도 철도가 단절 없이 운행되면서 이질성을 극복할 수 있었고, 이러한 노력이 통일의 결실로 이어진 거죠. 동독 주민들의 투표에 의해 통일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철도와 통신을 통한 끊임없는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 사회 전반에서 화제가 됐었는데, 통일 대박은 어쩌면 이 철도 연결에서부터 시작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철도는 단절된 남북한 국토를 잇는다는 상징성도 크지만 인적, 물적 교류를 가능하게 해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최연혜 사장은 분단 70년으로 남북이 서로 많이 달라졌지만 거의 유일하게 공유하고 있는 것이 철도이기 때문에 철도연결은 가장 중요하고도 기초적인 통일 준비라고 강조했다.

“철도는 통일비용을 줄이고 효과적으로 남북한을 통합할 수 있게 해줄 겁니다. 북한은 토지 등의 현물을, 우리는 기술이나 자본을 투자해서 철도를 건설하면 굉장히 경제적인 방법으로 북한지역의 재건사업을 이룰 수 있을 테니까요. 북한의 경우 교통체계가 철도 위주로 돼 있는데다 실제로 산악지형이 많아 수송의 효율성은 철도가 가장 높아요. 북한도 경제 부흥에 철도가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철도는 IT, 전기, 시설, 토목에서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종합기술 분야이기 때문에 남북한간 철도가 연결될 경우 북한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매우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최연혜 사장이 통일에 있어 철도의 역할과 가능성을 더 높게 전망하는 이유는 남북간 열차운행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북한 철도는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동일한 시스템으로, 지난 2007년 5월 남북간 열차운행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남북간 열차운행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당장 남북으로 철도가 다니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통일은 단순히 남북만을 통합하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 너머에 있는 ‘새로운 대륙이 열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와 활동범위를 드넓은 대륙으로 무한정 확장할 수 있다.
“오랜 냉전시대를 겪는 동안 주로 미국 등 서구문화를 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러시아 등에 대해서는 낯설어 하면서 굉장히 먼 곳, 우리와 관련이 없는 곳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1930년대 이광수 선생의 소설 ‘유정’만 보더라도 사랑의 상처를 입거나 시련이 찾아오면 미국으로 가지 않고 시베리아나 바이칼 호수로 도피를 하잖아요. 그만큼 대륙은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가까운 곳이었고, 물리적으로도 직접 연결돼 있었던 곳인 거죠.” 이런 맥락에서 남북철도를 연결한다는 것은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연결하는 민족사적 의미 외에도 동북아 안정과 평화정착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연혜 사장은 남북철도를 운행할 경우 북한체제를 개방으로 이끄는 촉진제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대치 상황을 끝내고 긴장을 완화시켜 동북아의 경제통합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가경쟁력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된다. 통상 4주가 소요되는 해상수송에 비해 철도는 15일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연간 수천억 원 대의 물류비 절감효과와 함께 국내제품의 해외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산에서 출발한 우리 기차가 북한을 거쳐 중국, 만주, 러시아를 달리며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하면,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패러다임이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통해 현실로 나타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최연혜 사장은 “이 땅의 청년, 청소년들이라면 대륙열차를 타고 유라시아를 횡단해 통일의 꿈을 이룬 베를린까지 달려가는 경험을 꼭 한번쯤은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통일이라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고, 통일을 통해 남북만이 아니라 새로운 대륙, 우리에게 잊혀졌던 대륙까지 새롭게 열린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레일과 국토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외교부와 함께 오는 7월, 19박 20일 동안 추진하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 이벤트도 그런 차원에서 마련됐다.

최연혜 사장이 생각하는 철도의 힘은 ‘교류와 연결’이다. 그리고 더 한 발짝 나아가면 철도는 ‘소통’이 된다.
“남북한 철도 연결은 단순히 수송량을 늘리고 물류비를 절감해 경제성을 올린다는 목적 때문만은 아니에요. 비행기나 버스나 해운과 달리 철도는 대륙의 모든 면과 선을 다 지나가기 때문에 접촉면이 넓거든요. 기차로 여행을 하다보면 전 세계 모든 사람과 만날 수 있어 새로운 기회와 상상력, 창의력을 얼마든지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우리 청소년, 청년들이 이런 기차여행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의지와 큰 꿈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겁니다. 동시에 통일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게 될 거고, 통일을 가슴 뛰는 일이라 생각하게 될 거라고 믿어요.”

<글/사진.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