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코리아정책연구원과 함께 지난 11월 14(금)~15일(토) 충북 제천 베니키아호텔청풍에서 ‘2015년 한반도 정세 전망과 우리의 전략적 선택’을 주제로 ‘제13차 남북관계 전문가 초청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27명의 통일·외교·안보·경제·국제관계 전문가 및 언론인들이 참석했으며, 내년도 남북관계 전망과 함께 북한 변화 유도방안, 통일기반 구축방안, 북한인권문제 등에 관해 심도있는 토론을 진행했다.
박찬봉 사무처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현재 한반도 상황과 과거 독립운동과정에서 신간회의 활동을 비교하며 향후 통일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박 사무처장은 “신간회운동 실패가 민족운동사에서 뼈아픈 역사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는 이념적 갈등에 대한 합의된 판단이 없어서였다”면서, “독립운동 못지않게 엄중한 통일이라는 과제에 있어 지식인사회가 하나의 국가와 민족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며,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큰 틀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호열 코리아정책연구원장은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기도 하지만 분단 70주년이기도 하다”며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에 이 행사를 갖게 돼서 의미 있고 영광스럽다”고 밝혔다. 손풍삼 전 순천향대 총장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강조하며 “어떻게 하면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 진영논리를 초월해서 정치교육의 장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기조연설을 맡은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북한의 정세와 북중 관계로 봤을 때 민족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도래했다”고 강조하며, 민족통일을 위해 힘을 한데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 장 원장은 “이 시점에서 북한주민이 빈곤과 억압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남한과의 통일”이라며 “중국이 남한중심의 한반도 통일을 지지·지원할 때 통일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세션은 ‘어떻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주제로 진행됐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북한경제에 있어 시장이라는 제도가 주민들의 생활을 충족시켜주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변화의 핵심은 시장화, 시장의 제도화에서 출발하며, 외부와의 교류, 즉 접촉면을 넓히는 것이 북한 변화의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박 연구위원은 북한사회가 경직성이 강하기 때문에 내부의 자생적 변화가 동반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로 이행할 가능성이 낮다며, 기본적으로 남북간 차원에서 압박, 설득과 접촉 확대의 이중전략을 전면적, 공세적으로 펼치되 우리의 정권교체와는 무관하게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장화 확대 현상이 시장경제의 제도적 차원으로 발전해서 되돌리기 어렵게 되는 것이 민주화의 제반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며, 북한과의 거래관계 확대시에는 일반적인 국제거래 관계의 기준(계약형태, 투명성 보장 등)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고지도자의 몰락이나 정권교체가 당장 민주화를 가져오지는 않기 때문에 북한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발생할 수 있도록 전략을 추진해야 하며, 시장경제화가 바로 사적영역에 대한 인식을 증대시키는 수단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이 변화해야 하고 인권과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데,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경제가 발전해야 하고, 이 과정이 남한의 도움을 통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쟈스민 혁명, 중동의 봄, 그리고 과거 한국과 마찬가지로 민주화는 물질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던 점을 고려해볼 때, 북한의 경제발전을 촉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북한의 변화를 바라고 유도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변화해야 한다며, ‘생각의 전환’을 바탕으로 용어사용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들어 ‘북한민주화’를 공식용어로 자주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통일’은 ‘분단의 극복’으로 표현하며, ‘인권’ 대신 ‘삶의 조건 보장’이라는 북한식 용어를 쓰면 북한 주민들도 금방 알아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 내부문제든 대외관계든 남북관계 요소가 매우 약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경우 남북관계를 푸는 듯 하다가도 대외관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정부의 대화 시도도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정부가 유연하게 남북관계를 푸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오국 민주평통 상임위 간사는 김정은 체제가 존속하는 한 본질적 변화는 없을 것이고, 북한의 변화는 정권의 붕괴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간사는 이 경우 북한주민이 북한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남한체제로 편입할 것인가 선택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전파송출 등을 확대해 외부정보들이 북한에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역사적으로 국가나 왕조들이 모두 최악의 상태일 때 변화한 점으로 미루어보면 과연 대북지원이 이 시점에서 올바른가 생각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직접적인 북한민주화, 정보화가 어려울 경우 중국 내 탈북자들에 대해 우리 정부가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면 북한주민들의 변화를 상당히 많이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변화와 관련, 최근 이슈화된 북한인권 상황의 ICC 회부 관련 문제에 대한 전략적 측면도 함께 논의했다. 박두식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북한정권과 주민들의 문제는 나눠서 고려돼야 한다고 전제한 후, 북한정권을 상대로 하는 정책에서 지금 가장 핵심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사항은 ‘최고존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고 말했다.
반면 김수암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은 북한 인권상황의 ICC회부 이야기가 나온 뒤 전술적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분명한데, 여기에 치중하다보면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소장은 북한인권의 국제화, 질적 변화 과정에서 남한사회의 역할이 위축될 수 있는데, 남북통합을 지향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이 부분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종 중앙일보 외교안보팀장은 북한주민의 인권측면에서 전단살포 문제를 바라봤다. 전단지 살포는 해당지역주민 불안의 문제로 접근해야지, 북한 주민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전단의 가치까지 반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자금출처를 두고 논란이 있는데, 과거 우리나라도 암울했던 시기에 미국조야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북한의 변화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평가들도 있었다. 이응수 KBS 정치외교안보팀장은 3차핵실험에 대한 불안감, 장성택 처형사건 등으로 연변조선족 사회에 대북한 인식이 매우 부정적으로 변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의 시장변화를 추동하는 주요 요인중 하나가 연변조선족 사회인데, 북한이 접경지역 통제를 강화하면서 교류가 잘 안 되고 있다며, 북한정권이 조선족사회의 대북인식 변화, 대중관계 악화를 초래하는 등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형남 동아일보 논설위원도 김정은 정권은 독단적이고 과감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굉장히 큰 실패에 봉착할 위험성이 크다며, 집권 3년차의 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돌파구가 필요하면 남북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고, 그 시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발제를 통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드레스덴선언 등에 대해 북한은 매우 부정적이고 흡수통일책동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며, 어렵더라도 남북한이 함께 지속가능한 통일기반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며,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통일기반을 만들어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통일기반구축을 위해서 임을출 실장은 폭넓은 민간 대북경제활동 허용, 북한의 방송과 출판물개방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민간의 대북경제활동과 관련, 외국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간기업들이 자기책임하에 법적테두리 안에서 보다 자유롭게 대북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실장은 신성장동력으로서의 북한, 통일을 지향하는 공동체로서의 북한을 생각하고 정부차원의 경협을 적극 추진하면 군사적 긴장완화에도 상당히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민간단체 대북사업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정부와 개인이 어느 선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방송 등 매체의 개방문제와 관련, 내부적으로 갈등이 너무 많아 시기상조라며 좀 더 지혜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정권붕괴 등의 용어도 정부 측에서 사용하기엔 적절치 못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종수 새정치민주연합 통일전문위원은 올해 ‘통일대박’이라는 단어가 많이 붐업됐는데, 남북관계를 현실적으로 풀기 어려운 조건에서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측면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이를 통해 국민들이 통일에 관심을 많이 갖게된 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류협력, 화해협력 등이 통일로 가는 과정이자 통일기반구축이라 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 대안은 통일교육이고, 통일교육 등을 적극적으로 하면 나름대로 의미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외적 요인을 근거로 향후 북한체제의 위기를 예상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김중호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위원은 석유가격이 현재 120~150달러에서 75~85달러 수준으로 안착이 되고 적어도 3~5년간 이 가격이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로 인해 이란의 석유생산량 감소 및 물가불안, 실업률 증가 등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런 추세 속에서 보면 이란이 핵 문제를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경우 미국이 핵협상에 성공하는 좋은 사례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게는 압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윤영 중앙대학교 교수는 통일기반구축을 위해서는 상대방입장을 생각하는 세심한 배려부터 시작해서 거시적 측면까지도 포함한 통합적인 통일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즉 통시적이고 항시적으로 통할 수 있는 통일정책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투트랙(압박과 설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국제정치경제연구실장은 현재 대북정책과 관련 앞으로 3년간의 목표설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남북간 관계를 좀 더 진전시키기 위해서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갈 지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밖에 중국식 시장경제가 확대되는 가운데 북한 엘리트들은 주로 중국식 모델에 관심이 있다며 한국이 흡수 통합을 하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 평화공존을 위해 한국은 어떤 정책을 취하고 있는지 국제사회에 명확히 밝힐 것 등을 제안했다.
최보선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은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발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여러 가지 변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대북관계에 유연성있는 정책이 필요했고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대북정책사에서 처음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발진이 안 되고 있는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할 수 있도록 영역별 규모별로 대북 인도적 지원의 가이드라인을 정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까지 20년간 남북교류를 진행해오면서 교류협력이 증대되는 동안 꾸준히 북한의 군사와 비군사위협이 증대됐다며, 남북관계의 교착단계를 타파하기 위해 피스키핑과 피스빌딩을 동시에 생각하면서 액션플랜을 만들어갈 때 한반도의 안전이나 평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통일의 상황이 됐을 때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은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통일이 됐지만 지금 남북한 관계에서는 남한 내부의 북한에 대한 인식, 북한에 형성되고 있는 남한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라면 굉장히 폭력적인 통일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했다.
한편, 장시간에 걸친 토론회를 마치면서, 박찬봉 사무처장은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전략적 접근방법에 대한 답변은 아직 공백으로 남았지만 머지 않은 시간 내에 다시 진지하게 이야기해보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견해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서 같이 소망하는 통일의 기원이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