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중국이 자국중심의 질서 구축에 매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다. APEC회의에서 중국은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창설을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비록 타당성여부 조사실시는 미국의 반대로 추진되지 못했지만,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파트너십(TPP)에 대응하는 구상을 내놓음으로써 중국 중심의 경제질서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이미 중국은 미국중심의 아시아개발은행(ADB)에 해당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설립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기존에 제안했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이어 더 폭넓고 가입국 수가 많은 FTAAP를 제안한 것이다.
과거 중국은 2007년 후진타오 2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이미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와 맞물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국의 대외정책이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당시 중국은 미국과의 동등한 관계를 원하기 시작했고,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증대를 위해 노력했다. 또한 중국은 자국을 글로벌파워로 인식하기 시작했는데,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이와 같은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현 시진핑 주석의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우며 미국과의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시 주석의 중국은 후진타오 시기와는 다르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APEC회의에서 나타난 것처럼 현재 중국은 미국의 브레튼우즈 체제에 도전하고 있으며, 자국 중심의 경제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즉, 과거 후진타오 시기 중국이 미국중심의 체제를 인정하는 범위에서 미국과의 동등한 관계를 요구했다면, 현재 시진핑은 자국중심의 체제를 구축하여 룰메이커로써 미국과 진정으로 동등해지겠다는 것이다. 이번 FTAAP제안은 그와 같은 의미에서 중국이 아시아지역에서 패권을 쥐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번 APEC회담에서 주목할 것은 중일 정상회담이었다. 중국은 일본의 과거사문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한국과 공유하고 있었으나, 이번 중일정상회담은 이와 같은 중국의 태도변화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4개항에 합의를 하고 정상회담에 임하였는데, 중요부분은 센카쿠(댜오위다오) 영토문제에 있어 각기 다른 주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즉,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에 대해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일본의 양보를 통해 중일관계가 복원되지 않을까하는 희망 하에 열린 정상회담이었다.
그러나 회담당일과 이후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당일 시진핑 주석의 찌푸린 얼굴과 함께, 회담 이후 중국·일본 각국의 반응은 중일관계 회복이 아직 멀었다는 것을 암시해주었다. 기시다 일본 외무상은 ‘영토문제에 대한 각기 다른 입장’이 센카쿠열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언급을 하여 중국의 부정적 반응을 자아냈다.
이후 한국은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과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한국은 한중일 정상회담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으며, 이번 기회를 통해 2012년 이후 2년여 간 중단되어왔던 3국 정상회담을 재차 제안하였다.
표면적으로 한중일 정상회담은 중일정상회담으로 외교적 고립을 맞이한 한국이 한일정상회담으로 가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한중일 정상회담은 매우 중요한 기회일 수 있다.
현재 한국은 미중 양국 사이에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고 있다. 최근 이와 같은 균형외교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데, 이유는 일본 때문이다. 워싱톤에서 일본은 반한국(反韓國) 로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즉, 한국이 중국 쪽으로 경사되어 있고, 한일관계에 일본은 적극적이나 한국이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일본의 로비로 인해 한미관계가 껄끄러워지고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위치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중국과 공조하여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과의 공조 역시 중요하다. 아시아재균형 정책 추진을 위해 한미일 3각공조를 중시하고 있는 미국에게, 일본의 역사문제에 대한 입장수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역사문제가 합의점에 도달할 경우 한일정상회담 개최가 가능해질 것이다. 한일정상회담 개최는 한국에게 한미관계의 굳건함을 확인할 수 있는 성과가 될 수 있으며, 미중 사이에서 우리의 외교적 지평을 확대시켜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중일 외교장관 및 정상회담을 우리외교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미 간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대한국 정책은 미국을 의식한 것인바,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통해 대중국 레버리지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번에 우리가 제안한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성과를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외교전략은 통일과 무관하지 않다. 한반도는 독일과 같지 않아 패전국 지위의 변경 시 주변국들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즉, 통일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 등과 같은 강대국들의 승인이 필요 없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의 외교적인 협력이 있어야 통일로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정전협정 상에 있는 남북한 양국이 통일을 추진할 경우, 미국이나 중국 등 정전협정 서명국들은 통일이 정전상태의 변경이라는 논리로 한반도 상황에 간섭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미·중 양국과의 통일외교가 필요하다.
<사진제공 : 청와대>